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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Oct 20. 2022

엄마의 꿈을 대신 이룬 죄

방랑자 딸이 돌아온 날, 엄마도 딸의 삶도 바뀌었다

돌림자를 쓸 필요 없는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작명소에 찾아갔다. 딸의 인생에 가장 걸맞은 이름을 짓고 싶었다. 한 반에 경숙이만 몇 명이었던가. 엄마는 성만 달랐던 친구들의 얼굴을 헤아려 보았다. 누군가 부르면 단 한 명이 돌아볼 이름을 딸에게 주고 싶었다.


작명가는 그녀에게 다섯 가지의 이름을 제안했다. 그중 엄마는 두 개의 이름을 골랐다. 작명가는 말했다. A를 선택하면 현모양처가 될 것이요, B를 선택하면 교수 등 전문직을 할 것이요. 엄마는 B를 골랐다. 서른 살에 이미 아이를 둘 가진 자신과는 다른 삶을 상상했다.


엄마는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을 딸에게 가르쳤다. 딸은 여덟 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그 무렵부터 딸은 피아노를 사달라는 노래를 불렀다. 딸은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아빠의 월급 사정을 알 리 없었다. 엄마는 아들의 컴퓨터와 딸의 피아노 사이에서 한 가지를 택해야 했다. 결국 딸의 피아노는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모셔졌다. 엄마는 계란판을 사서 사방에 붙이고 두꺼운 카펫을 피아노 밑에 깔았다. 딸은 새벽마다 모두를 깨우며 피아노를 쳤다. 엄마는 음악가 정명화와 정명훈을 키운 어머니의 에세이를 탐독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는 두 아이를 수영장으로 보냈다. 아직은 어린 딸을 데리고 올림픽 수영장으로 향했다. 깊이가 2미터나 되는 올림픽 수영장에서 그녀의 아들은 허우적 댈 틈도 없이 수영을 했다. 그녀는 2층에서 아들을 지켜보았다. 딸에게는 새우깡 한 봉지를 쥐어주었다. 딸은 락스 냄새를 맡으며 새우깡을 오독오독 씹었다.


딸이 제법 컸을 땐 홀로 수영장을 보냈다. 딸은 엄마를 닮아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성화를 냈다. 딸은 항상 툴툴대며 수영장으로 나섰다. 겨울에는 머리가 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감기를 핑계 삼아 수영장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딸은 접영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 수영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엄마는 자유형을 잘하는 아들과 평영을 좋아하는 딸을 양 옆 레인에 놓고 수영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딸은 엄마와 여러 면에서 달랐다. 딸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가장 먼저 먹어버렸다. '뭐 먹고 싶니'라고 딸에게 물으면 냉큼 대답했다. 딸은 조금 쉰 내가 나는 두부 한 조각만 먹어도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는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은 짜장면을 말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어른 앞에만 서면 배시시 웃으며 말 끝을 흐렸다. 딸은 수줍은 웃음 뒤로 고집스럽고 단호한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엄마는 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마지막에 먹었다. 엄마는 '뭐 먹을까'라고 누군가 물으면 '아무거나 좋아'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거나 좋아한 적이 없었다. 고기 냄새가 나거나 간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그녀는 슬며시 젓가락을 놓았다.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에서나 싹싹한 막내딸이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빠들이 시키는 담배 심부름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다녀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이를 다 보이며 웃었다. 엄마는 털털한 웃음 뒤로 예민하고 여린 자신을 감췄다.


작명가의 예언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딸은 전문직종의 커리어 우먼이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이동을 많이 할 것이요. 그것은 맞았다. 그녀는 한국을 두 번 떠났다. 스물두 살 땐 영국으로 도망쳤고 서른 살이 가까워졌을 땐 북유럽의 외딴 시골로 떠나버렸다. 그녀는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한국에서 답답해서 못 살아"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너는 자유롭게 살거라. 너는 남들하고 다르게 살거라."


엄마는 딸이 영어로 대화만 해도 자랑스러웠다. 딸이 파티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찍은 사진만 보아도 엄마는 대신 즐거워했다. 엄마는 캐리어 두 개만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딸이 대견했다. 엄마는 자신이 가본 적 없는 유럽의 수도를 꿰고 있는 딸이 부러웠다.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딸을 항상 지지했다. 딸의 자유로움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 그것이 그녀가 딸을 격려하는 방식이었다. 딸이 수업에서 발표 하나만을 해내도, 아르바이트에서 해본 적 없는 일을 끝내도, 엄마는 박수를 쳤다. 마치 자신이 그 경험을 해내고 만 것처럼, 그 경험이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딸은 엄마에게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은 적이 없었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을 삶에 대해 상상한 적이 없었다. 다만 엄마가 지나가듯이 한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쿠바에 가고 싶어. 쿠바에 가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나오는 음악을 듣고 싶어."


그 순간 딸은 자신이 본 적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영화 에덴의 동쪽의 전단지에서 제임스 딘의 얼굴 옆에 자신의 사진을 오려 넣은 열여섯 살의 엄마. 소설이 좋아서, 대형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보고 싶어서 도서관학과를 간 스무 살의 엄마. 대학 졸업을 앞두고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의 음악을 찾아주는 스물다섯의 엄마. 딸은 그 모습을 모르는 척하였다. 딸이 꿈꾸는 자유로운 삶에서 가족과 엄마를 그려 넣을 공간이 없었다. 딸은 자신만의 꿈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딸이 돌아왔다. 그녀는 여기저기 떠돌면서 자유로움을 모두 시험해보았다. 더 이상 새로운 세계를 탐구할 힘이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었다. 딸은 그토록 꿈꾸던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두고 왔다. 엄마와 현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엄마는 달라졌다. 엄마는 매일 가는 헬스장에 갈 수 없었다. 그녀가 자주 타던 자전거는 베란다에 처박혔다. 냉장고에는 사온 반찬이 가득했고 거실에는 약봉지가 쌓여갔다. 명동에서 친구들과 만나 칼국수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마무리했던 수요일 오후가 없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무슨 영화가 나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미간에는 없던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그토록 싫어했던 고기를 먹어야 했다. 입맛이 없어 싫어하는 음식이 더 많아졌다. 까다로운 입맛을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녀의 팔목에는 주삿바늘이 훑고 간 멍이 가득했다. 더 이상 그녀는 병원과 의사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병을, 딸은 법적으로 명명할 수 없는 죄명을 선고받았다. 그것은 엄마의 꿈을 대신한 죄였다. 딸은 지난 4년을 돌아보았다. 딸이 여행한 도시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딸이 만났던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이 보이고 음성이 들렸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꿈을 대신해서 너의 욕망을 잘도 채웠구나"


그것은 사실 딸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병의 책임을 누구에게라도 지우고 싶었다. 엄마의 잘못이 있다면 엄마가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욕망을,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을 모르는 척하고 살아온 것이라고. 그런 엄마의 희생을 당연시 여긴 대가를 지금 받는 것이라고. 딸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다가온 현실을 수긍하기로 했다.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기엔 그녀의 마음은 넓지 못했다.


엄마는 마음이 넓었다. 병마와 싸우기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작은 화초의 세포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가꾸듯,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 기생하는 이상세포들과도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병마를 이겨내고자 삶을 통째로 바꾸지 않았다. 예전처럼 아침이면 신문을 읽었고 커피를 마셨다. 명동칼국수집이 아닌 집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그렇게 좋아하는 국수를 꼭 먹었다. 엄마는 문제와 정면 대결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여리고 예민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딸에게도 새 삶이 주어졌다. 낡은 아파트에서 가족과 투닥거리는 삶을,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더 넓은 세계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욕망도 내려놓으니 새로운 삶이 보였다.


딸은 자신의 죄명을 자주 까먹는다. 엄마는 왜 이렇게 입맛이 까다롭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더 많은 세계를 여행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해온 엄마의 역할에 너무 익숙해서 그녀는 자신의 죄명을 쉽게 까먹는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녀도 살아간다. 그 책임을 자주 잊어버려서, 자주 응석받이인 막내딸이 되어버려서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새롭지만은 않은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삶은 그대로이다. 아픈 엄마도 패잔병처럼 돌아온 딸도 유난하지 않게 삶을 이어간다.




내가 오기 전 목욕을 마친 인형들


내가 한국에 잠깐 올 때마다 엄마가 하는 일이 있었다. 내 침대 머리맡에 있는 인형을 빨아놓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인형들을 더 이상 토닥이지도 껴안고 자지도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는 항상 인형을 빨아놓았다.


"언니기다리고 있어"


그리고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인형을 빌어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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