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4년을 함께한 운동화, 절대 풀리지 않는 마법
2019. 8
신발끈으로 단단하게 조여진 나이키 운동화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린다. 매무새가 항상 엉성한 막내딸이 못 미더워 아버지는 나이키 운동화의 끈을 대신 묶어줬다.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하고 운동화만이 핀란드에 따라왔다. 아버지가 마법을 부린 걸까. 몇 년이 지나도 운동화는 좀체 끈을 놓을 줄 모른다. 절대 풀리지 않는 리본을 만지며 아버지와 똑 닮은 나의 손을 바라본다. 핏줄이 불거진 마른 손등, 긴 손가락, 양쪽으로 살짝 튀어나온 손마디. 하지만 그와 그렇게도 닮은 그 손은 항상 어설펐다. 아버지는 손이 느리고 굼뜬 딸을 미리 걱정했을랑가.
아버지가 표현하지 못한 말을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며 듣는다. 아마도 아버지는 여러 번이고 투박하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열두 살 난 딸의 방학과제인 고무동력기를 밤새워 만들었을 때에도, 인천공항에서 스물여덟 먹은 딸 대신 캐리어에 벨트를 조일 때에도, 아버지는 사랑을 말했다. 지난주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현재 불안한 마음을 잔뜩 늘어놓았다. 잠을 쿨쿨 자는 것 같았던 아버지는 딸의 걱정거리에 벌떡 일어났다. 대뜸 불호령을 냈다. 서둘러라. 무얼 망설이느냐. 노력해라. 여전히 투박하고 날카로운 우리 아버지. 그 말을 듣고서야 생산적인 한 주를 시작한 나도 지독한 막내딸이다.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는 나는 여전한 어린 딸이다.
RIP 나이키 운동화 (2015. 1 ~ 2020. 12)
이 나이키 운동화는 나의 영화제 시절부터 핀란드 4년까지 함께한 녀석이다. 핀란드의 학생 스포츠센터인 유니스포츠에서 운동을 할 때나, 기숙사가 위치한 오타니에미의 산책로를 친구와 떠들며 걸어갈 때도 나이키 운동화가 있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걸쳐서 5번을 이사하며 나는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달팽이처럼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다녔지만 낡아빠진 나이키 운동화를 버릴 수 없었다. 이 녀석은 결국 핀란드에서 한국행 핀에어까지 타고 왔다. 용케도 미니멀리스트의 선택에 매번 살아남았다. 한국에 와서 보니 구멍이 나고 밑창의 바람이 다 빠진 나이키 운동화는 내가 놓아주어야 할 과거였다. 그는 온몸으로 핀란드에서 4년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만 킬로미터를 함께한 나이키 운동화와 작별했다. 버리는 순간까지도 아버지가 묶어준 리본은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