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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Oct 25. 2022

오슬로에서 5개월, 내가 사랑한 장면과 공간들

포토에세이 - 2017년 오슬로의 봄

북유럽에서 최악의 시기는 11월부터 3월, 아니 4월까지이다. 4월로 정정한 까닭은 4월에도 가끔 눈이 펑펑 내리기 때문이다. 두꺼운 패딩을 4월에도 벗을 수 없었다. 봄이 되면 입으려고 했던 옷들은 빛을 보지도 못하고 다시 헬싱키로 돌아왔다. 이상 기온 현상으로 4월에 20도를 웃도는 단 며칠을 제외하고 내 기억 속 오슬로는 여전히 하얗다.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에 하얗게 또는 다른 색깔로 빛나던 장면과 공간을 소개하겠다. 


1월 초순, 오슬로의 센터인 내셔널시어터역 앞.


비정상회담에서 핀란드 패널이 게스트로 나와 핀란드인의 줄 서는 법을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줄을 서는 사람 사이 간격이 거짓말 보태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사진이었다. 노르웨이도 마찬가지이다. 북유럽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 사이의 일정한 간격이 있다. 핀란드 친구가 말하길, 핀란드 사람들은 외딴 시골에 집을 지어도 이웃집과 멀찍이 간격을 둔단다. 모여 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경악할 노릇이다. 나라 전체 인구가 서울의 반 밖에 되지 않는 이 동네에서 붐빈다는 건 그다지 경험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오슬로에서 썰매장은 숲 속이었다


스무 살 파릇한 스페인 아가씨가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다. 눈썰매를 타러 교외로 나가자고 하길래, 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눈썰매장을 상상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자 스키복을 야무지게 차려입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에버랜드나 어린이대공원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려가도 보이는 것은 나무요 눈이요, 기숙사 앞과 다를 바가 하나 없었다. 스페인 친구가 '여기서 눈썰매를 탄대'라고 말을 하자마자, 그녀의 에라스무스 교환학생 친구들이 썰매를 끌고 나타났다. 스무 살에 갓 입성한 그들은 이미 눈밭 여기저기서 뒹군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서 눈썰매장은 숲 속에서 '요이땅!' 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위 사진 속 아이도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행인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행인과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뒤섞인 풍경이었다.



오슬로에는 헬싱키와 달리 고층 빌딩이 유난히 밀집한 곳이 있었다. 일명 바코드(Barcode) 지역이다. 얼마 전에 본 노르웨이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이 바코드 지역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이 만나는 남자 중 하나가 일하는 빵집이 바코드 지역에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 의견이 분분했듯이 바코드 지역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 것 같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에서 바코드 지역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곳처럼 묘사된다. 고층 건물에 익숙한 나로선 서울에서 볼 수 없는 고층 건물 양식에 감탄했다. 



오슬로 지하철에서 스키 장비를 완비한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다들 시외 숲 속 어딘가로 스키를 타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스키란 크로스컨트리다. 평평한 헬싱키와 달리 오슬로에는 산과 구릉이 많았다. 날씨가 조금 풀리면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저녁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운동복을 완벽하게 입은 중년 아저씨들이 추운 숲 속을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퇴근시간이 오후 4시에서 5시 정도니 가능한 이야기겠다. 


무라카미 다케시 전시회 내부의 사람들
오슬로의 현대미술관 Astrup Fearnley Museet. 제프쿤스, 데미언 허스트, 신디 셔먼 등 유명작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북유럽에서 줄을 서고 인파를 뚫고 가는 일은 아주 희소한 경험이다. 그런데 줄을 그것도 약 20분 넘게 선 적이 있다. 무라카미 다케시 전시회 파티 날이었다. 저녁 7시부터 디제잉과 함께 할인된 가격에 전시회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할인된 가격 때문인지, 무라카미 다케시가 인기 많은 작가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 문화가 여전히 '힙함'을 상징하기 때문인지, 오슬로에서 멋을 부린다 하는 젊은이들이 긴 줄을 감내하고 서있었다. 당시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실물로 본 적이 없기에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가보니 특별히 유럽인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았다. 일본 아니메, 불교의 철학, 오타쿠 문화 등 그들이 일본 영화나 다큐에서나 봤을 이국적인 요소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내가 유럽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불교를 믿어'라고 말하자마자, 약간의 동경과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는 상황이랄까.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미술관에서도 일어난다. 런던 테이트 미술관 전, 인상파 미술전 등 런던과 파리라는 이름을 붙이면 티켓이 날개 돋치게 팔린다. 


오슬로의 빈티지샵에서 파는 상품들 대부분 상태나 질이 좋았다. 
그륀네뤼까(Grünerløkka) 어딘가


나는 어느 도시를 가든 후미진 지역을 좋아한다. 그런 곳일수록 젊은이와 예술가가 모여 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나라마다 각자 다르게 양산되는 하위문화도 엿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서울은 프랜차이즈의 도시이다. 인디문화의 고장이었던 홍대에 유니클로와 에이치앤엠이 들어섰다. 인디밴드 공연을 열던 클럽도 적자에 문을 닫아버린 지 오래다. 물론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유명 클럽들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인디밴드, 록 음악은 여전히 하위 중의 하위문화이다. 힙합에 비해선 간지가 나지 않기 때문이지. 오슬로의 홍대라 할 수 있는 곳은 그륀네뤼까(Grünerløkka)라는 동네다. 작은 카페, 공연을 하는 클럽, 빈티지 숍, 술집 등 다양한 숍들이 있다. 비교적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많다. 헬싱키의 깔리오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둘을 비교했을 때, 나는 그륀네뤼까에 마음이 더 간다.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라피티가 이렇게 깨끗한 도시에 침입하듯 자리했기 때문이다. 



같은 프로젝트를 했던 한나가 집에서 조모임을 했을 때 직접 빵을 구워줬다. 노르웨이 빵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빵인데 안에는 커스터드 크림이 있고 위에 코코넛 가루가 뿌려져 있다. 이 추운 나라에서 코코넛을 어찌 활용해서 빵을 만들었을까 의문이지만, 이 빵은 편의점에서도 팔 정도로 대중적이다. 맛은 북유럽에서 언제나 그렇듯 평타였다. 북유럽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주머니가 빈곤한 학생이라 그런지 몰라도. 북유럽에서 이탈리아에서나 할 수 있는 식도락 여행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얼어붙은 송스반(Sognsvann) 호수
눈이 다 녹은 모습


나는 시내에서 약 7km 떨어진 크링샤(Kringsja)에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나는 학교 가까이 못 사는 운명인가 보다 하고 한탄했는데, 이게 웬걸. 기숙사 바로 앞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아주 춥지 않은 날엔 송스반 호수로 산책을 갔다. 4월에도 숲 속에선 여전히 냉장고 바람이 불었다.  


해를 보고 앉아있는 사람들


해변 아님 주의


역시나 해변 아님. 나도 나중에 20도만 넘어도 여름 옷을 꺼내 입곤 했다. 이럴 때 아님 못 입으니까.


북유럽에 살다 보면 햇빛이 그리워진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이번 주도 망했네'라고 욕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혹 해라도 빼꼼 보이기 시작하면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이렇다 보니 오슬로가 이상 기온 현상으로 24도에 육박한 날은 도시 전체가 파티 분위기였다. 우리 과 친구들도 신이 났는지 노르웨이 버디까지 불러 피크닉을 하자고 했다. 연락을 받고 공원으로 가자 반은 헐벗은 여인네들이 해를 향해 누워있었다. 24도의 날씨를 믿지 못해서 검정 니트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온 나는 그날 처음으로 더위를 느꼈다. 


그륀네뤼까에 위치한 카페 미르


첫 학기에 핀란드에서 적응하느라 학교와 집 이외에 가본 곳이 거의 없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조모임이 많아서 유흥은커녕 대낮에 한가롭게 여유를 즐길 틈도 없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정신없는 1학기를 보내고 오슬로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위 사진 속 카페 미르(Cafe Mir)는 갤러리 69(Galleri 69)과 공동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나는 수업 프로젝트로 갤러리 69에서 한 달 동안 일을 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카페 미르에 거의 매일 출근하게 되었다. 


카페 미르의 점심 메뉴인 렌틸콩 스프, 50크로네


오슬로의 악명 높은 물가는 하루만 돌아다녀도 느낄 수 있다. 10 크로네가 1400원 정도(당시 2017년 봄 기준)인데 아무리 싼 슈퍼마켓에 가도 10 크로네에 살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 먹을 수 있는 핫도그가 우리나라 환율로 계산하면 5000원 정도, 노르웨이 국민 초콜릿인 프레이야(Freia) 밀크 초콜릿 200그램짜리가 슈퍼마켓에서 약 35 크로네였으니, 역시 4500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카페 미르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50 크로네! 이것은 혁명이었다. 따뜻한 렌틸콩 수프, 빵 두 조각, 버터가 나온다. 커피도 20 크로네 미만이었으니 이디야 커피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갤러리69의 디렉터인 크리스틴과 함께


카페 미르는 밤에 펍으로 변신한다. 작은 무대에서 인디밴드 공연도 자주 한다. 저녁에 파는 맥주는 병맥주를 제외하고 최소 90 크로네. 100 크로네는 줘야 맛있는 것으로 먹을 수 있다. 미친 물가 덕분에 나는 오슬로에서 술에 취한 적이 없었다. 돈 좀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 간신히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00원을 말똥한 정신으로 내야 했다.


노르웨이의 스타벅스, 카페브레네리에


오슬로에 눈에 띄게 많은 카페 체인이 있다. 카페브레네리에인데 어딜 가도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커피 맛은 평범하다. 추천 메뉴는 사발에 한가득 나오는 카페오레이다. 손잡이도 없는 사발의 양 옆 주둥이를 드는 순간 사약 마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푸글렌에서 찍은 사진이 이거 밖에 없다. 과동기들하고 갔을 때. 


나의 추천 넘버원은 푸글렌(Fuglen)이다. 이곳 역시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칵테일 바로 변신한다. 나는 좋은 카페를 이러한 기준으로 정한다. 첫째는 음악, 둘째는 커피 맛, 셋째는 분위기이다. 아무리 커피 맛이 좋아도 음악이 구린 카페에 절대 가지 않는다. 푸글렌에 다양한 시간대에 자주 가봤는데, 그때 있는 바리스타와 분위기에 따라 음악이 천차만별이었다. 어스름한 시간이 되면 북유럽 스타일의 재즈가 나오고, 낮에는 Mac de Marco와 같은 최신 인디음악이 나온다. 분위기는 작업하는 청년들이 홀로 오는 편이라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저녁 여섯 시가 되면 어두운 조명이 짙게 깔린다. 그때에는 다른 작업을 하는 젊은 남녀들을 볼 수 있다. 


푸글렌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마음이 잘 맞는 한국인 친구와 몇 시간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잘 차려입고 밤에 오자고 약속을 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다. 오슬로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푸글렌에서 칵테일 한 잔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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