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fonia Feb 07. 2022

박재범과 유지태 사이

오슬로에서 날 구원한 자, 박재범의 몸매를 듣다가

2017. 10.


오슬로에서 두 번째 학기를 보낼 때, 나는 박재범의 영상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2PM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꼭꼭 챙겨볼 정도로 팬이었으나 어느 순간 나도 현실에 있는 이성에 눈을 뜨면서 브라운관의 멋진 이들과 멀어졌다. 박재범을 다시 만난 건 유튜브 때문이었다. 오슬로에서 유튜브를 끼고 살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박재범이 나오는 '몸매' 무대 영상을 보았다.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관절을 부드럽게 꺾으며 춤을 추는 그를 보며 추워서 나갈 수도 없는 내 처지에 대한 대리만족을 했다.


대략 요런 간지?

그는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무대에선 언제나 반쯤 벗은 모습이다. 타투는 상반신을 뒤덮었고, 매번 늘어난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연예인이 되었다며, 남 눈치를 보고 살지 않는단다. 항상 쿨하다. 적재적소에 농담도 잘한다. 그의 노래엔 아름다운 여성과 섹스와 이를 탐미하는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춤으로 노래로 욕망을 맘껏 드러낸다. 그는 섹시하지만 음흉하지 않고 남성적으로 보이지만 어깨에 힘을 주지 않는다.

빠심이 과했다면 미안하다. 이렇게 박재범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그가 사실은 내 욕망의 원형을 거짓 없이 반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사랑에 충실하고, 욕망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지금 내가 할 일에 전투적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이 그의 장난스러운 언행 뒤로 언뜻 보인다.


실은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현실의 나는 타투 하나도 못한다. 어린 날의 패기로 내 몸에 평생 남을 문신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후회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청난 몸치이다. 몸으로 하는 일엔 어릴 때부터 재능이 없었다. 체력장에선 언제나 5등급이었다. 때때로 나는 솔직하지 않다.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크게 웃는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엔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불만족스러운 얼굴이면 신경이 쓰인다. 설령 그가 나와 크게 관계없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쓸데없이 진지한 편이다. 쿨하게 뭐 어때?라고 하지 못한다. 나는 현실보다 미래와 과거에 산다. 때로 영화나 소설  속 가상의 공간에 숨어 산다.

웃통을 벗은 박재범과 달리 목폴라를 입은 유지태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는다면 나는 박재범 대신 유지태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기품 있다. 절대로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다소 노잼. 진지하기 때문이다. 소방관의 권익을 위해 행사에 앞장서고 기부도 많이 한다. 말도 느릿하다. 예의가 바르고 충직한 인상이 강하다.


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욕망이 박재범이라면 나의 절반의 모습은 유지태에 가깝다. 그 또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기품 있지만 꾸미지 않은 인상. 멋은 있지만 과하지 않고 언제나 자연스럽다.


그들은 내 삶에 아무 영향력이 없는 연예인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을 보며 내 삶의 괴리를 느꼈다. 내 욕망 속 자아는 섹스에 대해서 거침없이 말하는 래퍼가 좋다고 말하고, 현실의 나는 기품 있는 연기파 배우처럼 살고 싶다고 부추긴다. 꿈에 대해서도 나는 두 가지의 길에서 갈등한다. 한쪽 길에선 노마드의 삶이 꿈처럼 그려져 있고, 다른 쪽 길에는 남들이 인정해주는 권위와 사회적인 욕망이 이글거린다. 보헤미안처럼 살기엔 나는 지나치게 모범생이고, 사회가 인정해주는 꼴대로 살기엔 나의 반쪽짜리 욕망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만 반짝거린다.


핀란드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주한 길. 나의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길을 애매하게 가고 있다. 적당히 좋은 대학교를 갔으나 대기업에 매몰되는 삶을 선택하진 않았다. 비교적 자유로운 직장에서 일했지만 공부가 부족하다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공부도 공부지만 실은 조금  그럴듯한 직장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걸까? 공부밖에 모르는 남자를 만나면 답답하고 지나치게 번죽거리고 멋을 잘 부리는 남자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에 헛웃음이 나온다. 박재범과 유지태 사이, 나는 여전히 둘 다 좋다고 말한다. 두 가지 삶 중 어느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박재범도 아닌 유지태도 아닌, 그저 내 삶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모를 땐 애매하게 나가는 게 맞다. 그렇게 가다 보면 애매한 길도 길이 된다. 박재범처럼 폼나지 않아도, 유지태처럼 항상 점잖지 않아도 된다. 음 이건 삶에 대한 이야기일까 남자에 대한 이야기일까. 욕망이 곧 남자이고 삶이라면 나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박재범과 유지태 사이, 애매하게 걸어가 보자.

이전 20화 아담과 이브가 되다 - 핀란드 사우나 체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