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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Mar 21. 2023

17  마라맛 엄마 손절하기

쌍둥이맘 19년 차 입시탈출기


이놈의 인간관계



A 엄마를 안지, 아이들 6살에 만났으니까 근 10년이 넘었다.

이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라고,

동갑에다 의뭉스러운 구석도 없고

참 고맙고 맘 넓은 여자였다.



사설영재원 같은 반 5명의 엄마들의 이 모임은 꽤 신선했다. 강남맘에 대한 선입견도 깨질 만큼 사적인 얘기도 나누고 누구 하나 감출 생각보다는 공유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아들도 나도 재미있게 다닐 수 있었다. 엄마들의 이런 분위기가 한몫했는지 아이들도 다른 반과 다르게 비경쟁적이었고 사이도 좋았다. 보이지 않는 알력과 경쟁심리가 팽배한 이곳이야말로 사교육의 정점이요, 부모의 욕망으로 가득 찬 곳 아닌가. 아이의 지적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에 딱 좋은 곳, 외국인 메이드, 운전기사를 대동하거나 바쁜 부모를 대신해 엘리트 출신 할머니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곳.



나처럼 평범한 부모가 자존감을 지키고 굴하지 않는 유일한 무기는 아이의 능력뿐이었다. 우리 반 5명의 엄마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 꿀릴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상부상조하는 마음이 더 크고 이 모임이 재미있다 보니 자랑거리가 있어도 서로를 먼저 배려했다. 남자아이 3명, 여자아이 2명, 각자 잘하거나 관심분야가 달랐으나 이곳에도 커리큘럼이라는 게 있고 미션 클리어가 지상의 과제였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나오면 엄마들은 재밌었어? 잘했어? 를 남발했다. 특히 A 엄마는 딸이 강의실에서 나오면 복도에 서있다가 가장 빨리 푼 거 맞지? 이런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 집 딸이 똑똑하기도 했고 다른 악의는 없으니 크게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내 아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인 게, 누가 뭘 하든 자기 할 것만 하고 아무 관심이 없었다. 스트레스 없이 마이웨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만 A 엄마의 관심 그물에 걸려든 어린양이 있었으니, 한 남자아이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버렸다. 조금이라도 문제풀이가 늦어지는 듯하면 초조해하며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편 A 엄마와 나는 따로 밥도 먹고 속 깊은 얘기도 나눌 정도로 친분을 쌓아갔다. 멤버 중에서 가장 친했다. 그런데 점점 이 관계는 꼬여갔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녀와 손절하기로 결심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그냥 만나지만 말고 전화 정도만 슬슬 받으면 안 되냐?

B 엄마가 나를 말렸다. B는 우리 중 연장자였고 사춘기 아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A와 손절한다는 건 이 모임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표면적으로 A가 내게 잘못한 일이 없으니 누구라도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통화가 끝나면 항상 뒤따라오는 묘한 찜찜함이란. 7년간의 해묵은 감정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A는 한 달에 두어 번 따로 전화를 했다. 주말마다 수업 때문에 만나는데도, 기본 1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 통화는 거의 자식 자랑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나는 그녀가 이런저런 가정사로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금쪽같은 딸을 잘 키우겠다는 일념에서 딸 얘기를 하는 것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존경하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어떤 여자아이 엄마다, 그녀는 정말 24시간 깨어는 것 같다. 내가 지인들에게 가끔 했던 말이다. 진심이었다. 누워있고 싶어도 그녀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이가 둘이니까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전업주부보다 시간을 못 내니까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 세상은 엄마라는 사람이 직장에 다닌다고 봐주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나를 독려하는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손절했다.

우리가 친해지고 말수가 늘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긴 통화, 딸 자랑을 퍼붓는 날에는 진이 빠졌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의 자존심이자 자랑인 아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선입견은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녀는 어느 날부터 모임의 다른 남자아이와 내 아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생이 되고 각각 대학부설, 교육청 영재원에 들어갈 때도 아들이 스타트를 끊었고, 그들이 수학선행에 목메는 그 시간에도 수준 높은 프로젝트와 굵직한 대회에 참가하여 언제나 최연소로 주목받았다. 대체 뭘까? 나는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대치동 입성을 뒤늦게 했지만 제때 성과를 냈고, 비교당한 남자아이와는 최상위 그룹에서 영재고 준비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A는 계속 자기 아들도 아니면서 그 아이를 추켜세우고, 참으로 희한하게 내 아들의 실력을 돌려 깎았다. 그래, 7년 세월이다.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 아들을 입에 올리게 놔둘 이유가 없었다.



B는 나의 결심을 듣고 많이 놀라워했다. 나의 결심은 단단했고 이유도 확실했다. 아이들을 서열화시키는 게 싫다, A는 아이들을 염려하는 척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머릿속으로 누가 1등인지 점수를 매기고 있을 거다. 그 도마 위에서 놀아나느니 나는 관계를 끊겠다. B는 그제야 수긍했다. 오히려 B가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손절 과정은 간단했다. 안 보고 말 안 하면 되는 것. 자존심 강한 그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관계를 단념하고 말았다. 아무튼 어쩔 수 없이 맺는 인간관계는 사절이다. 그 당시 그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쌍둥이들은 그녀의 도마 위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손절 이후 한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 인연을 단박에 끊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한동안이 조금 지나자 해방감에 마음이 개운해졌다. 3년이 지났다. 간간히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아직도 딸에 도취되어 강력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긴 인생에서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자식이 뭔지. 다만 자식도 좋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그녀도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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