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에 오래 웅크리고 있다보면 다른 자리로 몸을 옮기기가 힘들다. 마음을 움직이긴 더욱 힘들다. moving한번 하려면 특정 계기가 있어야 한다. 작년 1월 이후, 인생의 turning에 대해 골몰했다. 터닝을 위해 무빙하기까지 내 머리에 떠오른 그 특정 계기는 책이었다. 책으로 시작해보자. 나의 터닝이여.
책을 혼자 읽고 되새기거나 치워놓기만 해선 아무 터닝도 무빙도 안 된다. 세상 뭇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은 책을 많이 읽고 있을까? 그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 사람들의 일상이나 그들의 취향은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일은 계속하는 중이었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의 진로가 더 중요했다. 부모의 소임도 소임이지만, 자녀가 앞가림을 잘 해줘야 부모가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내가 뭇사람들에게 스스로 소외되고 도태당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삼삼오오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다. 내 또래 여인네들이 각종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재미나게 노는 모양새도 너무나 부러웠다. 자자, 이제 깨어날 때가 왔다. 어디로 갈까? 내 취향과 가장 걸맞는 책 놀이터를 찾아가 보자.
평일책방. 평일에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 토요일 오전 8시에 만나는 모임이라니, 구미가 확 당겼다. 뭐가 안 맞는다. 그 삐뚤빼뚤한 느낌이 좋았다. 캘리 작가 리더님은 다정하고 친절했다. 1명 모자란 9명이 오랫동안 함께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오호, 바싹 들이밀고 끼어들고 싶었다. 마지막 퍼즐 하나가 되어 기꺼이 낑겨 맞춰지리라.
평일에 만나지 않는 평일책방 사람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잔잔하게 스며들고 있다. 독서의 쓸모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한 사람들이다. 책은 주로 최신 인문사회 교양서나 자기계발서를 같이 보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몇 개의 북클럽, 여왕의 서재를 손수 만들었다. 주제와 인물 행동을 주요 골자로 하는 논제 중심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지적허영을 채우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평일책방은 다르다. 리더님이 말아주는 생활밀착형 질문이 심신 안정제마냥 편안하다. 이런 잔잔함이 원래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평일 회원님들도 조용조용 나긋나긋 대화를 나누시니 거기에도 중독돼 버린 것 같다. 어떤 인연의 붉은 실로 이어진 건지 정체를 알 순 없으나, 최면에 걸린 듯 어느새 주말 아침 댓바람에는 그들과 마주앉아 있다.
책 한 권에 거창한 일은 기대하지 않는다. 평일책방의 나른한 미스터리함이 지속되는 한, 나의 정서 또한 찰랑거릴 뿐 넘치지 않을 것이다. 평일에 만나지 않는 평일책방에는 훨씬 더 많이 남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나 홀로 책방에서 평일책방으로 무빙한 결과, 사람 속에 섞여 사는 터닝의 맛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을 즐기는 게 인생의 참맛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