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쌀 때는 콧노래가 나온다.
사이판에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보자. 허술하지만 나름 계획적인 엄마는 한 달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 여권 (사본 및 여권 사진)
✔️항공권, 여행자 보험 및 리조트 예약증
✔️ 해외 신용카드 및 달러
✔️ 운전면허증
✔️ 여름옷, 긴 옷(한 벌), 수영복, 아쿠아 신발
✔️ 세면도구, 비상약
✔️모자, 선크림, 수딩젤
✔️돗자리, 우산, 물통
✔️ 학습 관련 일체 (책, 문제집, 필기구 등)
여행에 대한 염려가 깊을수록 가방은 무거워진다. 한국에서 꼭 가져가야 하는 것 위주로 최대한 가볍게 짐을 챙겼다.
‘근데 한 달 동안 물놀이만 할 거야?’
NO! 사이판을 결정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지 학교 체험이었다. 사이판 사립학교 중 단기 입학이 가능한 곳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어학원이 아닌 학교 교실에 앉아 또래 친구들과 미국 학교의 정규 수업을 듣는 것이다. 이만큼 리얼한 문화 체험이 또 있을까?
사이판 학교 1~2월 수업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년 7~8월부터는 스쿨링을 알아보아야 한다. 몇몇 학교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봤으나 담당을 미루거나 뒤늦게 입학 불가 통보를 보내왔다. 하는 수 없이 현지 학교 등록을 도와주시는 교민분을 통해 8월 말 가까스로 원하는 학교의 등록을 마쳤다.
같은 분의 도움으로 학교 근처에 있는 숙소 등록도 금세 끝냈다. 학교와의 거리, 리조트 상태 등 정보를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학교와 숙소에 대한 궁금증과 답변이 수도 없이 오갔다. 여행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안부를 챙겨주신 고마운 분의 카톡 아이디를 남긴다.
#Islandguesthouse (스쿨링 대행)
꼭 준비해야 할 것들은 또 있다. 먼저 운전이다. 이건 좀 장기전이 될 것 같다. 기사(남편)가 배가 아프다거나, 홀로 시댁에 방문해야 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자동차의 속도가 무서울 때도 있었다. 장롱면허까지는 아니지만 20년 동안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사이판에서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지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이판은 서해 안면도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고 한다. 뒷좌석에 아이들을 태워 통학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운전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커다란 산, 영어. 독해 위주로 공부한 세대라 영어 회화가 서툴다고 말하기에는 내 또래의 영어 회화 능통자가 꽤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또한 노력하면 될 일이다. 원하는 목적을 100% 달성하지는 못하겠지만 몇 걸음의 전진도 의미가 있다. 4개월간의 노력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몇 단어라도 당당하게 말하는 게 목표였다. 내가 한 달 살기를 위해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한다고 했을 때, 큰아이 친구의 엄마가 응원의 한마디를 했다.
“영어는 기세예요, 기세. 그냥 하면 돼요.”
좋다. 이 또한 해 보기로 한다.
공부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 보는 걸로 정했다.
<50 First Dates>
2004년에 개봉된 로맨스 영화다. 사랑 이야기는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간질간질한 대화는 매번 들어도 즐겁다. 드류 베리모어가 아주 젊고 귀여우며, 아담 샌들러가 꽤 매력 넘치던 옛날 옛적 영화. 이 영화를 무한 반복해 보기로 했다. 마침 영화의 배경도 하와이였다.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영화를 봤고, 설거지하며 영화를 들었다.
뭐든 배움이 느린 엄마지만 중도 포기는 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에 남은 4개월 동안 달려보기로 했다. 꾸준함에는 반드시 열매가 뒤따른다. 달콤하게 익은 열매가 아니어도 좋다. 시고 텁텁한 열매라도 기대하며 조금씩 나아갔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떠나는 여행이라 아이들도 준비할 것들이 있다. 모든 교과서 진도를 자력으로 끝내는 일. 아이들은 디지털교과서와 참고서를 이용해 이 모든 걸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엄마보다 낫다. 친했던 친구들과의 인사도 끝냈다.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작별 인사는 비장했다.
꼭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틈틈이 아이들과 인터넷으로 사이판을 검색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날을 기다리며 몇 달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