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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정 Jan 29. 2022

남편의 응원 한 마디

이제부터 '무수리' 하지 말고 '공주' 해

아침부터 이게 머선 일이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에 들어오니 아침 9시. 이제부턴 온전히 내 시간이라 조용한 아침 시간을 즐겨야지 생각했었다. 바쁜 아침 시간의 잔해가 남아 있는 식탁부터 정리했고, 바쁘게 식구들 만들어주느라 나는 맛도 못 본 샌드위치를 이제부터 만들어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하며 먹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커피를 내리려다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매실청을 만들어 10리터짜리 큰 유리병에 보관해 두었다가 작은 병 여러 개에 옮겨 담아 먹곤 했는데 마침 작은 병에 담아 둔 매실청들이 똑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생각난 김에 이 일부터 얼른 해야겠다 싶었다.


뒷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 수납장 제일 아래쪽에 있는 매실청 2통. 그중 하나를 꺼내려다 아차.... 손에서 유리병을 놓쳐버렸다. 10리터짜리 유리병은 위쪽 반만 남기고 아래쪽 반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10리터 매실액은 베란다 바닥에 흥건하게 흘렀다.


우짜지??? 대.. 형.. 사.. 고.. 다.

베란다에 있던 물건들을 얼른 부엌으로 옮기고, 큰 유리 조각들부터 비닐봉지에 담고, 걸레를 잔뜩 가져다가 닦고 또 닦고... 그런데 쏟아버린 매실청이 진짜 아까웠다. 매실 사서 씻어 말리고, 설탕 넣어 100일 기다렸다 매실은 건져내고 1년을 넘게 보관한 매실청인데 이렇게 걸레로 닦으려니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수구로 흘려보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미처 버리지 못한 깨진 유리병을 보여주며 아침의 참담했던 사건을 전했다.

"내가 그 병을 꺼내려고 했는데 힘을 제대로 안 주고 대충 잡았나 봐. 그래도 지금까지는 내가 혼자서 다 옮기고 했는데 오늘은 왜 그랬나 몰라..."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남편이 아주 짠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야, 그런 건 있잖아. 남편이 있을 때 하는 거야"   


맞다. 남편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데 나는 그게 참 잘 안된다. 성격도 급하고, 남한테 부탁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마는 성격이다. 코맹맹이 소리 섞어서 애교를 떨며 남편한테 부탁하면 되는데 직접 나서서 해버리고 마는 나는 평생 '무수리' 체질이다.


친정에서 과수원을 하는 교회 자매님이 사과 주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주문한 사과를 주일날 교회 주차장에서 받았다. 사과 15킬로 한 박스를 들고 조금 거리가 있는 우리 차로 내가 옮기는 중이었는데 마침 교회 입구에 서 있던 형제님 몇 분이 깜짝 놀라 나에게 달려왔다.

"아니, 자매님!!! 왜 이러세요? 불만 있으면 말로 하세요!"


사과 15킬로 한 박스 번쩍 들고 옮기는 거쯤이야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는데 형제님들이 다들 호들갑을 떨어서 사실은 내가 더 놀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과 상자를 직접 들고 옮긴 자매님은 나 하나였단다. 다른 분들은 다 남편을 부르고, 남편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고....


'무수리' 기질은 셋째 딸인 나의 과거에서 기인한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니 엄청 귀염 많이 받고 자란 귀한 딸로 다들 생각들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친정어머니는 큰 딸과 하나밖에 없는 막내아들(넷째)에게 온통 에너지를 다 쓰고 둘째 딸과 셋째 딸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필요한 거나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부모님께 편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세심한 챙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했다. 덕분에 큰언니와 남동생에 비해 작은언니와 나는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자랐다.   


저녁 시간, 모아둔 유리 조각과 깨진 유리병을 버리기 위해 혼자 밖으로 나왔다. 분리수거장에 유리병을 두는데 뚜껑은 플라스틱이니 뚜껑을 열어 따로 분리수거를 해야 될 거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뚜껑이 열리지가 않았다. 찜찜했지만 방법이 없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마침 민준이를 방과후센터에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리는 남편이 보였다. 타이밍이 잘 맞았다. 나는 무척 반가워하며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와서 보더니 처음에는 병이 깨져서 열기가 힘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이 힘을 줘서 돌리자 너무 쉽게 뚜껑이 열리는 게 아닌가.

"엉? 너무 쉽게 열리는데? 왜 이걸 못 열었어?"

"그러게... 내가 진짜 나이를 먹었나 봐. 요즘 그렇게 손에 힘이 없어. 딸기잼 병뚜껑도 잘 못 열겠고... 어휴... 마음은 청춘인데 말이지"

남편이 또 짠하게 나를 쳐다봤다.


분리수거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불쑥 말했다.

"자기야, 자기는 글만 써라"

글만 쓸 수 없는 상황인 거 뻔한데도 남편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진짜? 남편이 그렇게 이야기해주니까 억수로 기분이 좋다~"

"'무수리' 그만하고 이제는 '공주'하라고. 알았지?"


22년. 이 남자와 함께 한 집에서 산 햇수다. 마음이 안 맞아 싸우기도 하고, 꼴도 보기 싫어 등 돌리고 잔 적도 있으며 그 흔한 이혼 나도 해야 하나 잠깐이라도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 뒤에 이제 우리는 정말 마음이 잘 맞는 한 팀이자 동료가 되었고,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데 있어서도 진짜 많이 자랐다.


이상하게 나는 '공주' 하고 싶어도 안된다고, 남편한테 부탁해야 되는데 못 기다리고 내가 하고 마는 평생 '무수리'라고 맨날 투덜거렸던 걸 남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자립심 강한 '무수리'의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벅차올랐다. '공주'로 살라는 남편의 응원 한마디에 나는 이미 '공주'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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