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기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축하해, 밥만 할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밥 짓기에 처음 성공했을 때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 말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부엌에는 물만 마시러 들어가던 내가 겁 없이 아무 요리에나 도전하게 했으니까. 요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먹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었고, 끊임없이 실패했다. 소스가 떡진 파스타, 만백성을 먹일 법한 미역국, 조선간장을 들이부은 찜닭.... 망하면 혼자 먹어 치우면 되었고 그 뒤로 두 번은 실수하지 않았다. 음식은 점차 먹을 만 해졌다. 요리에 자신이 붙자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의 생일상엔 슈바인 학센을 올렸고, 친구들에게 호두 타르트를 구워다 선물했다.
요리의 시작이 밥 짓기라면,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였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느낀 감정들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수많은 문장의 자간 속에서 부풀려진 상상력은 동시로, 시로, 그리고 소설로 흘러갔다. 10살 무렵 8칸 공책에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보석 삼총사>라는 제목의 판타지 소설이었다(당시 표지에는 ‘환타지 소설’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표지를 디자인하고 삽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얇은 공책은 200자 원고지로, 다시 1000자 원고지와 아래아 한글로 바뀌었다.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점차 조회 수가 올라가고 댓글이 늘어났으며 성적은 떨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새벽 세 시까지 소설을 쓰다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수험생이 되어 글쓰기를 중단하면서 대학에 가서는 마음껏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문학회에 가입했다. 밤이 늦도록 같이 글을 쓰고 합평을 하다 술을 마시면서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얘기했다. 모두의 글을 엮어 문집을 만들고, 그림 동아리와 합작해 전시회를 열었다. 신선하고 짜릿한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해도 내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봄날 새싹처럼 솟아오르던 생각들은 죄다 보잘것없어 보였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을 때마다 입 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 열등감이 고이기 시작하자 글쓰기가 재미없어졌다. 나는 문학회를 그만두었다.
그 무렵 자취를 시작했다. 마주한 첫 난관은 밥이었다. 매번 학생 식당에서 먹자니 비슷비슷한 맛에 물리고, 외식하자니 돈이 부족할 것 같았다. 라면도 끓여본 적 없는 나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처음으로 밥을 지었을 때, 나는 전기밥솥이라는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이 처참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꼬들꼬들하긴 해도 탄내는 나지 않는 밥을 지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방 청소를 하다가 몇 년 전에 썼던 문집을 다시 펼쳐 보았다. 덜 다듬어졌지만 번뜩이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글이 실려 있었다. 다시 쓰라면 결코 쓰지 못할 글이었다. 소설의 얼개를 짜는 것조차 낯설어진 지금이었으므로. 어쩌면, 키보드조차 보기 거북해지던 그때 단 몇 개의 문장이라도 건지고, 기우고, 지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의 부족함이 느껴지더라도 끊임없이 글을 썼다면, 지금의 내 요리 실력처럼 글쓰기 실력도 조금쯤은 늘어났을 텐데. 무엇보다 글쓰기는 여전히 내게 즐거움일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시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주 기본적인 에세이부터.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내 글은 한동안 꽤 엉망일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움켜쥐려 끙끙거릴 것이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다듬으려 밤을 새울 것이다. 내 글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끔찍한 악평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미슐랭 정찬을 만들기 위해 요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온 것이 아니듯, 글도 그런 마음으로 쓰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고, 꾸준하기 위해서는 행복해야 한다. 언젠가 나는 예전처럼 시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밥만 할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