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활약하는 멋진 한국 여성, 유채원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채원 기자는 중국의 유력 테크 미디어인 테크노드에서 영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중국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바로 유채원 기자이다. 유채원 기자는 테크 리포터이기 때문에 중국 스타트업계에 대한 정보의 최전선에 있고 특히, 그녀가 있는 상하이에서만큼은 그녀의 넓은 네트워크를 따라올 자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중국 땅을 처음 밟은 이후 상하이 생활 3년차에 접어든 유채원 기자가 중국에 가게 된 스토리와 중국 땅에서의 경험을 듣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독특한 캐릭터’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다이나믹한 삶이 그런 그녀에게 잘 맞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중국에서의 존재감을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2015년 중순의 테크크런치 상하이 행사에서 디캠프 김광현 센터장, 캡스톤파트너스 송은강대표, 스튜디오씨드 김수 대표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주제로 패널 토크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유채원)
중국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은 중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유학한 ‘반 중국인’이거나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거나 이 두가지 경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유채원 기자는 둘 다 아니다. 그녀가 소속된 테크노드는 한국인이 그녀 뿐인 중국 현지 기업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중국 유학파냐?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테크노드에 입사하기 전까지 중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상하이에서 중국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중국인 창업자들을 만나 중국어로 인터뷰하고 심지어는 종종 중국어로 일기를 써서 위챗 모멘트에 올리기도 한다.
유채원 기자가 위챗 모멘트에 쓰는 일기 사진제공 :유채원
그녀의 영어 실력은 10살 때 아버지의 회사 파견으로 미국에 가족 다같이 이민을 가면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1년 6개월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그녀는 외국에 다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는 대학생이 된 뒤, 어떻게든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나선다.
중국은 그녀가 혼자 맨땅에 헤딩을 한 다섯 번째 나라이다.
중국에 오기 전 그녀는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1년 간 봉사활동을 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창업가 밑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현지 스타트업을 인터뷰했다.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업개발로 파견되어 수없이 피칭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영어로 기사를 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그녀가 중국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과연 무엇인가?
역시나 그녀의 입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왔다.
“10살 때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배우는데, 나의 이름을 한자로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한자로 써주시면서 나의 조상이 유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매체 속에서 보도하는 중국의 모습은 상관 없이, 내 눈으로 직접 중국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말하자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때 부터 시작해서 중국어는 못할지언정 중국에 관심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년 6개월 동안 한국 스타트업 미디어인 비석세스의 외부기고가였던 그녀는 비석세스가 개최하는 비론치라는 행사에서 한번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당시 외국인 연사 22명의 인터뷰를 맡았던 그녀는 행사에 중국인 패널로 참가한 테크노드의 창업자이자 대표였던 강루(Gang Lu) 대표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인터뷰하게 된 중국인 대표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중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2014년 5월 행사에서 강루 대표를 처음 만나 인터뷰한 날(사진 제공: 유채원)
“어떻게 하면 중국에 갈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강루는 그 자리에서 그냥 자기 회사에서 일해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테크노드의 영문 기자로 일할수 있었다. 나도 한번은 그녀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었는데,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정말 관심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게 하는 진정성이 있었다. 중국에 온 뒤, 중국어를 공부하는 한편 독서토론을 통해 중국의 경영, 역사, 철학에 관한 책을 다수 읽었다고 한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책은 장융의 <대륙의 딸> 이라는 장편소설이에요. 삼대에 걸친 필자 (딸), 어머니, 할머니의 인생을 필자가 서술하는데, 중국의 근현대사를 정말 잘 담아냈습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모르면 중국을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는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에요. <대륙의 딸>을 통해 필자의 할머니가 전족을 하고 군벌이 첩이 되었던 것, 필자의 어머니는 잔인한 일본의 만행을 눈앞에서 보고, 이후 공산당에 들어가 힘겨운 행진을 감행하다 유산을 하기도 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고, 문화대혁명 때는 고문을 받은 것. 필자는 초등학생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동급생이 자살을 하고, 선생님에게 돌을 던지며 지식분자들을 고문한 내용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애환이 같은 여성으로서 정말 가까이 다가왔어요. 제 친구들에게도 바로 문화대혁명 때 그들의 부모님이 어땠는지, 다른 도시로 피난을 갔다거나, 한국전쟁에 참전해 청력을 잃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물질적으로 부유한 중국인들의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이를 통해 중국의 문화충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중국 친구들과도 진심으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테크노드의 강루 대표가 유채원 기자를 바로 스카웃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기회를 잡아 상하이로 거처를 옮겼지만, 중국어를 거의 못했고, 중국에 지인도 없던 그녀에게 적응하는 게 그리 호락호락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적응하는 게 뭐 중국어를 배우거나 하는 것일 텐데, 나에게는 중국에서의 적응은 그냥 엔조이(enjoy)였다.”라고 해맑게 말한다. 중국 사회에 동화되어 즐기고 있다보면 그냥 중국어는 따라온다는 것이다. 테크노드에 입사한 직후에 그녀는 직장 동료들을 불러모아 “내가 중국어를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나에게 영어를 하지 말아줘” 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를 때는 다시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거나, 뜻을 물었다. 회사의 대학생 인턴과 단짝 친구가 되었고, 이후 그 친구를 통해 물어보았다.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는 자리는 그녀에게 최고 효율의 공부시간이었다. 중국 동료들이 대화하는 내용 중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인턴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그 친구는 중국어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미국인이나 한국인 룸메이트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중국에 왔으면 중국사회에 융화되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인 룸메이트를 찾았다.
(입사한지 이틀째 되던날 테크노드 단체티를 입고찍은 단체사진 사진제공: 유채원)
그녀가 추천하는 ‘중국 생활 적응 방법’은 중국의 오지에 가는 비행기표를 끊는 것이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없는 곳에 가서 생존하는 것이다. 그녀가 입사한지 1개월 되었을 때, 첫 춘절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항상 가고 싶었던 둔황(중국의 서쪽 ‘모래사막’)으로 떠났다. 여행책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곳을 가려고 했는데, 둔황의 사진을 보고 “중국에 모래사막이 있고, 낙타가 있다니!” 하면서 둔황으로 택했다고 한다. 참고로 둔황은 서유기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10일간의 춘절 휴가동안 둔황, 자위관, 란저우, 시안을 여행하면서 외국인은 중국인이 묵는 여관에 묵을 수 없다고 해서 경찰서도 다녀오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제서야 정말 중국 땅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고 한다. 그 여행 동안 그녀는 중국 경찰과 친구가 되고, 한 베이커리에서 일일 제빵 체험을 하고, 전통옷을 입고 중국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둔황에서 찰칵 사진제공 : 유채원)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제가 여기서 하는 경험을 이해하지 못해요. 중국에 온 것은 나의 선택이고, 여기가 내가 사는 사회야. 내가 고민을 털어놓고, 모든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중국이어야 해 -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국어로 유치원생 같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오늘 경찰서에 갔다. 슬펐다. - 이런 식의 간단한 일기를 쓰고, 이를 위챗모멘트에 공유했어요.”
이런 식으로 중국어 일기를 쓰면서 중국어가 많이 늘었다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중국어 대화는 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중국인과 대화 내용이 그렇게 흐르지 않죠. 회사 친구들이 저에게 물어보는 내용은 대개, “주말에 뭐했니?” 입니다. 제 스스로 중국어 일기를 쓰면, 친구들에게 주말에 한 내용을 설명할 수 있어 좋아요. 최고의 중국어 교과서는 내 생활 자체입니다.”
상해 내의 중국어 학원, 한국의 중국어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사용하던 그녀는, 이제 중국어 인터뷰 자체가 그녀의 교과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어는 어떻게 잘하는 것인가? 라는 두번째 의문이 든다. 국제도시 상해에서는 영어권 사람,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중국어 한마디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중국어가 늘지 않는다.
“언어는 본인이 쓰는 돈만큼, 본인이 다니는 학원이나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가에 따라 느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하는 도전의 크기만큼 언어는 늡니다. 저의 안전지대는 한국인 창업가나 영어권 창업가를 인터뷰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중국어 기사를 영작하면서 기사를 쓸 때, 편집장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영어도 중국어도 모국어가 아닌 제가 하는 영작에는 번역 실수가 많았던 것이죠. 저는 중국어로 된 행사에 갈 때마다 창업가들의 설명이나 피칭을 알아듣지 못할 때 좌절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스트레스나 안전지대를 벗어나 중국인 창업가들을 면대면으로 만나 인터뷰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어가 늘었습니다. 영어로 질문을 짜고, 이를 중국어로 번역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인터뷰 중에는 모든 인터뷰를 녹음한 뒤, 제 인턴 친구와 함께 들으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받아 적었습니다. 아직도 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목표는 중국인 창업가를 면대면으로 100명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와서까지 영어권 외국인처럼 살아서는 안 되잖아요.”
2016년 상하이 테크크런치 행사 이후 단체 사진 (사진 제공: 유채원)
그래서 그녀가 스스로에게 던진 도전은 중국어로 진행되는 패널에서 중국어로 진행을 하는 것이었다. 테크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행사의 패널에 서는 것 아니겠는가. 그녀는 처음에 테크노드의 강루 대표가 먼저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를 기다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강루 대표 입장에서 중국인 직원을 두고 한국인 기자를 중국어 패널에 세울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기회를 찾아 자신을 무대에 올렸다. 상해의 한화 드림 플러스와 테크노드가 주최한 데모데이를 그녀가 직접 기획, 투자자 초청, 행사를 진행하고, 중국인 창업자들과의 패널 토크를 직접 짠 뒤 본인을 패널의 모더레이터로 배정했다.
2016년 한화 드림플러스-테크노드 데모데이에 창업 창업 패널을 진행하고 있는 유채원 기자 (사진 제공: 유채원)
“아무도 나를 무대에 올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서 본인을 그 위에 세우세요. 실패하더라도 괜찮아요. 저는 중국어로 5분간 테크노드 PPT를 사용해 무대에서 소개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배정했습니다. 당시에 너무 떨어서 좌석에서 보는 사람이 안 쓰러울 정도였어요.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저는 그 민망했던 경험을 계기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상하이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가던 중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사건이 있었다. 2016년 알리바바 광군절이다. 때는 테크크런치 베이징 행사의 마지막 날. 알리바바의 PR 디렉터가 그녀에게 위챗을 보내왔다.
“알리바바 광군절 행사에 와서 취재해줄 수 있나요?
심천으로 오는 비행기, 숙박은 모두 알리바바에서 제공하겠습니다.”
회사 규칙상 출장을 떠날 때는 며칠 전에 대표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그런데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심천 가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강루 대표에게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고 왜 꼭 자신이 그 곳에 가야하는지, 어떤 스토리를 얻어올 수 있는지를 피력했다. 유채원 기자의 진심이 통했는데 강루 대표는 승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심천 광군절 행사 장에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600명의 취재진으로 꽉 찼다. 그녀는 초대받은 기자로서 지정석에 앉았다. 마윈을 처음 본 게 그 때였다고 한다. 마윈의 연설을 바로 앞에서 들으며 알리바바가 배를 불릴 뿐만 아니라 그 머리 속에는 어떤 기술이 있는지, 알리바바의 입술인 마윈은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지, 기자들을 대하는 알리바바 직원들의 태도의 진정성을 보며 알리바바 그룹의 미래가 어떨지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보면서 가늠할 수 있었다.
광군절 행사(사진 제공: 유채원 기자)
몇년 전, 플래텀의 조상래 대표와 스타트업 엑스(중국의 엑셀러레이터)의 박재희 대표가 만든 한국인 위챗방이 있다. 중국에서 스타트업 관련 일을 하는 한국인끼리 정보 교류를 위해 만든 ‘Korean Startup inChina’라는 방이다. 특히 상해 지역에서는 마수모(‘마지막 수요일의 모임’의 줄임말,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모인다)이라는 정기 모임이 있다. 유채원 기자는 상하이 지역 모임을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킨 주역이자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녀가 매달 말이 되면 분주해지는 이유다. 중국의 업계 트렌드 발표할 PPT를 만들고, 장소를 정하고,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등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수모에 너도나도 참석하려고 하지만, 이 모임이 항상 이렇게 활성화되었던 건 아니다. 필자가 2016년 여름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마수모에 참석했을 때만해도 많아야 다섯명 정도가 참석했고, 모임의 목적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시기에, 유채원 기자가 발 벗고 나섰다. 마수모 모임을 재정의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모임에는 목적이 있어야한다. 예전엔 목적이 없었다. 그냥 만나는 모임이었다. 참석한 상대방이어떤 직업인지는 알겠지만,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알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줄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내가 이 모임을 맡았을 때 생각은 매우 심플했다. ‘내가 참여하고 싶은 모임”을 만들자. 였다. 그냥 밥 먹고 술 먹고 헤어지는 모임이라면 나부터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친목과 더불어 각자의 전문 영역에 대한 발표를 하고 서로 지식을 공유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참석할 것 같았다.”
마수모에서 발표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유채원)
그렇게 마수모는 ‘10분 세미나’ 형식을 도입했다. 참석하는 사람마다 아주 간단하게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분야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상해에 오기 전 그녀는 실리콘 밸리와 이스라엘에서 각각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취재했었다. 한번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실리콘 밸리나 이스라엘은 누구나 다 가고 싶어하는 곳들인데.. 상해보다 훨씬 좋죠?”
유채원 기자는 실리콘 밸리나 이스라엘보다 상해에서의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그리고 인텔리전스 부대를 중심으로 한 강한 문화로 외국인이 그 울타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실리콘밸리는 이미 매우 성숙한 생태계였고, 나라는 개인이 크게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One of them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무수히 널린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는 커녕, 하루 성과 보고를 하는 것 조차 어려울 정도로 붕뜬 생활이었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의 유채원기자 (사진제공: 유채원)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그녀는 중국이 가장 오픈된 문화를 가진 스타트업 생태계 같다고 말한다.
“중국에 와서는, 어디서든 저를 끼워주었어요. 중국인 모임에도, 영어권 모임에도, 한국인 모임에도 저를 일원으로 끼워주었고, 모든 정보를 위챗이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공유하고 있어요.”
그녀가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한창 성장하고 있는 시기였지만, 이미 모바일 페이먼트는 이스라엘, 실리콘밸리에서도 본 적이 없는 혁신이었다. 중국에 와서 중국인 창업가, 영어권 외국인 창업가, 한국인 창업가 모두를 인터뷰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Only One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의 화두인 90后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 1990년생인 그녀도 포함되고, 이로 인해 더더욱 90호우가 대부분인 테크노드 내의 동료들과 격없는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국에 있는 한국 청년들이나 업계 사람들이 유채원 기자에게 “중국으로 가는 게 좋을까요?”라는 참 많이 물어본다. 그런데 그녀가 최근 2년 간 빠른 속도로 중국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으면서 느낀 것은 딱 한가지이다. 중국은 실리콘밸리 만큼의 괄목할 만한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제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중국에 들어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자신만의 시스템을 완전하게 현지화해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인을 돕기 위해 네오플라이 차이나의 신동원 대표와 유채원 기자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에바와 엘리엇의 대륙에서 헤딩하기’ (사진 제공: 유채원)
유채원 기자는 그동안 이미 완성된 아이템을 가지고 와서, 중국 시장에 끼워넣으려는 한국 창업자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한국에서 성공한 아이템이라고 해서 중국에서도 잘 팔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중국에 오는 것 보다는 중국에 먼저 와서 살아보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뭐가 필요한지 중국 기업이 뭘 원하는지를 파악한 뒤에 아이템을 재구상해야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주어는 나의 아이템이 아니라 중국 소비자, 중국 기업이 되어야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P.s중국 스타트업 생태계나 상해의생활이 궁금한사람은 유채원기자가 매일같이 기록을남기는 그녀의블로그를 구독하길 권한다!(필자는 이미일년 전부터열렬히 구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