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모멘트 Apr 07. 2021

#11 두근두근, 인생 첫 유럽!

콩닥콩닥, 스위스

콩닥콩닥, 스위스


스위스에 도착 후 첫 날,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무심코 바라본 창 밖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당연하다는 듯이 펼쳐져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깊은 남색 하늘에 색색들이 퍼지는 빛.

그 명암에 따라 보이는 시계탑의 실루엣이라뇨. 



문을 열면 유럽이 있었습니다. 미팅을 하러 가는 길조차 가슴이 콩닥 였습니다. 카메라에서 손을 뗄 수 없었고, 비 오는 순간마저 낭만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유럽에 와있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몇 밤이고 잠도 설쳤던 유럽 행이었습니다. 


스위스에 도착 후 첫 날,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무심코 바라본 창 밖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당연하다는 듯이 펼쳐져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팀원들이 일어나기 전 잠시라도 더 둘러볼 요량으로 이른 새벽에 숙소를 몰래 빠져 나왔습니다. 새벽녘 취리히 전경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오밀조밀한 유럽풍 건물과 모던한 빌딩이 조화를 이뤘고, 영화에서 보던 마을 속 시계탑, 부띠끄들이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가 도로에 불과할 아치형 다리조차 고전적이고 아름다워 보였고, 셀카봉을 들자 함께 브이 하는 행인들과 길을 안내해주던 경찰관 등 사람들도 하나같이 친절했습니다. 그저 모든 게 행복하고 기분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이 넘쳤던 탓일까요?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순간을 남기고 싶어 저절로 수첩에 손이 갔습니다. 초등학교 방학숙제 이후 처음으로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길을 오가며, 트램과 버스 안에서 부지런히 보고 느낀 것, 담고 싶은 것들을 펜을 들어 기록했습니다. 작은 남색 수첩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빼곡히 채워질수록, 한 장 한 장 추억거리가 늘어갔습니다. 



한 번은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이틀 간 텐트 빌리지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텐트 빌리지는 큰 텐트 안에 2층 침대를 두고 도미토리처럼 운영하는 텐트가 수십 채 모여 있는 숙소입니다. 냉난방 등 시설이 열악한 만큼 가격이 저렴하고, 덕분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애용하는 숙박시설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묵은 숙소는 스위스에서 유명한 설산 인근 기슭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에는 만년설을 자랑하는 산에서 내려오는 한기로 몸이 오들오들 떨어야 했습니다. 추울 때마다 웃옷을 꺼내 입다 보니 다섯 겹이나 되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옆 벽에 민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환경이었습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대하지 못한 황홀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 이튿날은 스위스 독립 기념일이었다고 하는데, 텐트에서 만난 한국인 동생과 맥주를 사기 위해 라운지로 나갔을 때 카운터에 있던 스텝이 전해줍니다. 


“몇 분 후면 불꽃놀이 시작해요, 알고 있죠?”


말을 듣자 마자 동생과 함께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 잠자기 위해 세수한 민 낯 그대로였습니다. 옷차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뛰어가는 사이 먼 광장에서 폭죽이 하나 둘 피어 올랐습니다. 정말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불꽃이 반짝일 때마다 디즈니 로고 속 성탑 실루엣이 환한 배경에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꾸만 벗겨지는 슬리퍼에도 아랑곳하지 않게 발걸음이 날아갈 듯 했습니다. 깊은 남색 하늘에 색색들이 퍼지는 빛. 그 명암에 따라 보이는 시계탑의 실루엣이라뇨. 


무지개처럼 감탄을 부르는 하늘이 걸음을 잡아 이끌었습니다. 


뛰면 뛸수록 가까워지는 영화같은 광경에 동생과 환호를 지르며 속도를 높였습니다. 폭죽 빛 말고는 가까운 주변조차 선명하지 않았던 깜깜한 밤에, 낯선 골목길을 그렇게 전력질주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속 다섯 살 아이처럼요. 


광장에 도착하자 불꽃 놀이가 머리 위로 수놓아졌고, 온 동네 주민들이 고개를 들어 형형색색 그림을 마음껏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탓에 목에서 피 맛이 올라왔고, 헐떡이는 숨소리가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차가운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풀밭에 쪼그려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널브러지듯 누워 버렸습니다. 돗자리도 없이 축축한 풀밭에 머리를 맞대고 누워서 깔깔 웃으며 불꽃놀이를 구경합니다. 누워서 마을 축제를 바라볼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스위스에서 밤입니다. 꿈 꾸는 듯 했습니다. 


물론, 문제도 있었습니다. 달려올 때는 불꽃만 보고 무작정 뛰어 왔는데, 막상 돌아가려고 보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이 모두 들판인 탓에 지도를 보고도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도통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 종종 들려오는 가까운 들판 위 개 짖는 소리는 무서움을 더했습니다. 너무 많이 뛰고 걸은 탓에 슬리퍼 모양을 따라 발에서 피가 났고, 그 상태로 한 시간쯤 더 흐르자 동생이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들판 한 가운데, 고작 스무 살, 스물 두 살 먹은 두 여자애들이 겁 먹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밤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간 숙소에서, 다음 날 아침 팀원들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한 밤중에 제대로 모르는 타지에서, 불꽃놀이가 있다는 말 한 마디에 무작정 뛰어나갔다고 말입니다. 실제로도 자칫 다치거나 어떤 일을 당할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그러면 안되었던 걸까요? 


그렇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 날 밤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을 달린 기억. 동생과 길을 헤맨 기억. 광장 잔디에 누워 본 광경은 제 인생 곳곳에서 불현듯 나타나 미소 짓게 해줄 평생 추억이 되어주었으니까요. 다만, 발에 옅게 남은 슬리퍼 자국 흉터를 볼 때면 피식 웃음이 납니다. 이만하니 다행이라고 말이에요.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10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