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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Aug 28. 2017

'팔월산', 산행 일기 쓰다

무엇을 쓰다

 이런 날에는 누구나 누구에게나 함부로 산에 가자는 말 하지  못한다. 산에 갔다가는 사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팔월의 태양은 눈부시고 유난히 강렬하다. 폭염은 멈출 줄 모르고 연일 지구를 데운다. 재수 없으면 단 하나뿐인 목숨, 염라대왕에게 상납할 수도 있다. 아찔한 순간 등에서 육수가 뜨끈하게 흘러내린다. 산모기가 살냄새를 맡고 군침을 삼키며 접근하고 있다. 보신하러 산에 갔다가 산모기의 먹잇감이라니 이놈들이 산 중턱까지  따라온다. O형의 피 맛이 좋다는 소문을 모기 녀석들이 엿들었나 보다. 고얀 놈들 같으니라고,

 도정봉 등산로는 조용하다. 바짝 마른 등선 가장자리에는 풀잎들이 폭염에 힘겨워한다. 상수리나무에서 참매미가 목청을 높인다. 맴맴 매~엠 소란스러워도 정겹게 들려온다. 쉬엄쉬엄 한 땀 한 땀 산 오르다 보면 어느덧 눈앞에 산꼭대기가  펼쳐진다. 경사진 바위에 붙어 낮잠 즐기고 있는 뱀을 바라보기도 한다. ‘뱀만은 길다’ 뱀을 건드리지 않고 우회로로 올라간다. 뱀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오르다가 일사병에 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뱀 닮은 밧줄이다. 발자국을 옮길 적마다 버겁다. 그늘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눈 앞에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가 싱그럽지만, 그냥 외면하고 푹 쉬고 싶다. 거기까지는 150m쯤 남았다. 소나무가 우거진 너럭바위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아무 생각 없다.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싫어진다. 사람이 삶에 지치면 그냥 현 상태로 머무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머무르고 싶다.
 여름 산행은 봄가을 겨울 산행보다는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날씨 탓으로 탈진하기 쉽고 일사병에 노출되기 쉽다.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무리한 산행은 금물이다. 혼자 하는 산행도 위험하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스쳐 간다. 가족에게 유언장이라도 카톡으로 날릴까 보다.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바위틈에 노랗게 핀 원추리가 예쁘다. 그대는 무슨 사연으로 이 중턱에 혼자 피어 있는고? 꽃에 말을 걸어 본다. 꽃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띠고 있다. 싸리나무와 상수리나무는 목이 탄다. 이럴 때는 소나기라도 한바탕 오면 좋으랴만 태양이 원망스럽다.
 배낭을 바위 위에 내려놓고 생수병을 딴다. 물이 미지근하다. 그래도 물맛은 최고다. 땀 범벅된 얼굴에 염분이 달짝지근하다. 동막봉에서 도정봉 꼭대기를 다시 바라다본다. 나무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잘 설치한 계단을 한 땀 한 땀 오른다. 오를수록 숨소리는 가파르다. 계단에 주저앉아 잠깐 쉰다. 땀으로 흠뻑 젖은 사람이 드문드문 지나간다. 모두 힘겨워한다. 다시 힘을 내어 계단을 오른다. 도정봉 정상에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태극기는 여전히 잘 있더라. 아무도 없는 너럭바위에 앉아 세상을 굽어본다. 의정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에 도봉산과 사패산이 가까이  펼쳐진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하는 운명처럼 아쉽다. 오를 때도 조심해야 하지만, 내려갈 때도 더 조심해야 한다. 긴장이 풀려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러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즐거워야 할 산행이 불행해질 수  있다. 돌너들길 돌부리도 조심해야 한다. 산모기 군락지인지 내 몸 주변에 산모기가 날아다닌다. 모자를 벗어 모기를 쫓으며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이제는 평지다. 잠시 눈을 돌리니 기이한 형상과 마주하게 된다. 조물주의 위대한 예술품이다. 찬찬히 감상하노라면 웃음이 피식 나온다. “고개 숙인 남자를 당당하게 바라보는 여심의 미소”라 이름 붙여도 손색없을 정도로 오묘한 석인의 나신이다.
  산 발자국이란 말 들어보았는가? 물 발자국, 군사력 발자국, 탄소 발자국은 들어봤지만, 이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산에 오르되 산 발자국일랑 남기지 마라, 흔적 남기면 산이 아프다. 흔적은 산에 남기지 말고 가슴에 남기고 종이에 남겨라, 그러면 산 발자국은 지우지 않아도 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산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의정부시 도서관 소식지 《책  읽는 풍경》 2017. 12.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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