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아, 날 잡아가지 않고

by 김형하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오던 남동생이 1년여 동안 위암과 싸우다가 요절했다. 예로부터 아들 잃은 부모 마음을 천붕지괴(天崩地壞)라 한다더니, 어머니는 하루도 동생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고 계신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오늘도 불효막심한 막내아들 생각에 밤낮으로 혼자 울고 있겠지요. 동생이 죽기 1여 년 전 교통사고로 입원 해있던 병원에 동생 문병 다녀오던 아버지는 아랫마을 상갓집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다가 말 한마디 못 하고 돌아가셨다. 그때도 어머니는 얼마나 방황하셨는지 모른다.

졸지에 남편 잃고 자식 잃은 어머니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어머니는 서울 형님 집에 모셨지만, 어머니는 시골 데려다 달라고 떼쓰신다. “야야, 봐라! 언제 시골 데려다 줄 건데? 일곱 달째 방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걸음도 못 걷는 병신 만들라 카노?” “어머니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시능교?” “시골 가면 금방 올라오게 될 텐데요?” 야야, 안다 이번이 마지막 소원이니 소원 한번 들어달라신다.

지금 어머니는 잠자리 걱정, 음식 걱정, 허리 다리 통증 걱정이 아니라 오로지 시골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머니요, 시골 가시려면 많이 드시고 다리 통증 없으면 그때 모셔다드릴 테니 많이 잡수고 기운 차리세요!”

화창한 사월이다. 당신이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고향 가는 아침이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그리도 좋으실까? 시골 가시면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걱정이 태산 같다. 서울 생활이 감옥살이하는 것 같다는 어머니, 얼마나 울고 계실까? 가슴이 아파진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들려온다. “영감! 영감아! 날 잡아가지 않고 뭐하고 있노!” 내가 자식 놈을 먼저 보낸 것은 지은 죄가 커서 그런 거라 영감아! 오늘 밤이라도 당장 날 잡아가거라.”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졌는데 또 뭐가 못마땅하여 죽은 영감만 원망하십니까?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서 손자 녀석 장가 갈 때 오셔야지요?” “알았다, 알았다!” 어머니는 고향 가시고 몇 개월 지나 별안간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았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신 대로 혼자 당신 집, 당신 방에서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모든 인연 내려놓으시고 울긋불긋 꽃상여 타고 떠나실 때 동네 사람들과 친인척은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명복을 빌었다. 천생 농사꾼이셨던 우리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다.


수필집《세상 속에서 낚아 올린 이야기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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