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막걸리 빚었다는 소문을 듣고 옆 마을 정 선생이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분홍빛이 도는 오미자 막걸리는 곱다 못해 호사스럽다.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가 돌고 보니 불콰한 것이 기분이 참 좋다. 내 고향은 45여 호가 도로를 따라 늘어선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동네가 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고 있다. 개중에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이라곤 ‘점방’을 하는 순희네와 영수네뿐인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었다. 불알친구인 영수가 부모 몰래 눈깔사탕이라도 내게 건네줄라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돌 사탕은 단단하고 잘 녹지 않아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가장 호사스런 먹을거리였다. 나는 영수에게 외상 빵값으로 쌀로 건넸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면 영수네로만 갔다. 갈 때마다 늘 똑같은 자리에 놓여 먼지를 뒤집어쓴 사탕이나 빵, 혹은 국수였지만, 내게는 먼지 속에서 빛나는 보석 같았다. 읍내 술도가에서 빚은 막걸리가 마을마다 공급되고 있었지만, 농번기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몰래 술을 담그는 집들이 있었다. 밀주를 담그다가 발각되면 파출소에 불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모두 조심스러웠다. 읍내 도가에서 빚은 막걸리는 밀가루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고두밥을 누룩과 함께 잘 발효시켜 담갔다. 아키바레 쌀을 잘 씻어 무쇠솥에 넣고 알맞게 불을 지피면 꼬들꼬들한 고두밥이 된다. 우리 동네 막걸리는 기백산과 황석산 계곡에서 나는 더덕 등의 약초 섞은 물과 오염이 전혀 없는 땅에서 얻은 밀로 빚은 술이어서인지 맛이 희한하다고 인근 읍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벼 타작을 보름 남짓 앞둔 가을 햇볕이 좋은 어느 날, 어머니가 ‘정제’에서 고두밥을 찌고 있었다. 술독을 깨끗한 물로 헹궈놓고 아궁이에 장작불도 잘 살핀다. 무쇠 솥뚜껑 틈에서 김 빠져나오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시 이이~, 치 이익~, 퐁퐁! 아궁이에서는 벌건 장작불이 토닥토닥 타고 있다. 매캐한 연기가 입으로 눈으로 마구 들어온다. 눈을 찡그리며 어머니 얼굴을 힐긋 쳐다보니 말도 없이 손놀림만 분주하다. 흰 고두밥에서 나온 희뿌연 수증기가 실오라기처럼 곰실곰실 하늘로 올라가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구수한 쌀밥 냄새에 벌써 군침이 돈다. 코를 킁킁대던 나는 어머니를 도와 알맞게 찐 고두밥을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햇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손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까닭 모를 미소를 짓더니, 고두밥을 고루고루 펼쳐 놓고서는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얼른 고두밥을 한 움큼 집어 입 속에 쑤셔 넣고 꼭꼭 씹는다. 달콤새큼한 눈깔사탕도 좋지만, 꼬들꼬들한 술밥 역시 그 못지않다. 다시 한주먹 입에 넣는다.
“쌀밥 맛이 희한하네. 에라, 딱 한 줌만 더 묵자!”
안방 아랫목에는 설익은 술독이 너저분한 담요로 둘둘 말려 있다. 술독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릴라 말라 술 방울이 솟았다 가라앉아 다를 반복하고 있다. 오래된 누룩과 고두밥이 익어가는 음악 속에 술이 익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큰누나, 작은누나도 있었지만 주로 내가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 한 되짜리 누런 양은 주전자를 짤래짤래 흔들며 단숨에 점방까지 뛰어갔다. 집에서 점방까지는 약 팔백 미터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영수 어머니를 부르면 영수 어머니는 안채에서 점방으로 건너왔다. “막걸리나 퍼뜩 주이소. 늦으면 아부지가 고래고래 소리 지릅니더.”
영수 어머니가 막걸리를 퍼 담아 주며 말했다. “아버지 도로 밀린 술값 좀 달란다고 전하 거라.” 덤벙대는 바람에 자갈길 돌부리에 차여 고무신은 벗겨지고 주전자 뚜껑이 철컥! 땅바닥에 떨어졌다. 다행히 주전자 안에 든 막걸리는 멀쩡했고, 주둥아리로 흘러나온 술 몇 방울이 자갈길에 스며들었다. 검정 고무신으로 쓱쓱 문지르고는 다시 뛰었다. 술 심부름할 때면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물고서 막걸리 몇 모금씩 마시기도 한다. 술맛은 모르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저놈 봐라!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술을 묵었다고?” 그렇게 몰래 술을 먹다 아버지한테 들켜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며 도망쳤던 적도 있다. 아버지는 벌써 밥상 앞에서 막걸리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눈치였다. 다녀왔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칭찬도 없이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정제 가서 찬물 한 사발 가지고 오너라.”
약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우리 아버지뿐일까. 하루 밥 세 끼에 약주는 여섯 끼였다. 집 아니면 주막에서 마셨다. 장날이면 어머니와 함께 장에 가서는 어머니만 먼저 돌아오고 아버지는 장터 주막에서 종일 막걸리를 마시고 캄캄한 밤중에서야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동네 큰소리란 대개 술과 노름 때문에 나기 마련이다. 우리 집 역시 아버지가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잔뜩 벼르고 있던 어머니가 평소 쌓인 감정을 풀었다. 아버지가 무어라 해도 반항 한번 못하던 어머니였는데 아버지가 약주를 드시는 날은 완전히 역전이 되었다.
어느 날, 장에 갔던 아버지가 한밤중이 되어도 귀가하지 않아 온 식구가 잠도 못 자고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 걱정을 가장 많이 했다. 호롱불을 켜두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술만 마신다고 그렇게 불평하던 어머니였지만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도 누나도 동생도 이불 속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침에 어떤 아저씨가 아버지를 업고 왔다. 연방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어머니의 눈은 인사불성인 아버지에게 가 있었다. 두루마기가 온통 젖었고 이마와 목, 손등에 피가 말라붙은 상처가 나 있었다. 장에 갈 때 신었던 흰 고무신은 어디로 갔는지 맨발이었다.
어머니 말씀은 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카시아밭 옆 자갈길에서 도깨비를 만나셨대. 깊고 시퍼런 귀신 소(召)까지 끌려가 밤새도록 씨름하다가 수탉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도깨비는 아버지를 놓아주었고, 다음에 또 한판 붙어보자며 산속으로 사라졌단다. “너희 아버지, 도깨비와 씨름하다 바지에 생 똥을 다 싸서, 나 바지 빤다고 혼났다.” 믿기지 않았지만, 어머니 말씀에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에 널려 있는 아버지의 흰 두루마기와 속바지를 보니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아랫목에 알맞게 익은 술독을 들고서 아버지를 찾고 있다. 술은 허기진 아버지 삶의 배를 채우는 식량 같은 것이었다. 나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어릴 적 생각에 잠겨 있다.
테마 수필집 전자책 《씨앗냄새》(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