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미학

by 김형하

만남은 자연스럽게 다가서며 마주하는 빈자리 채우는 손님,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라면 그중에서 좋은 만남만 생각하고 싶다. 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연들 거기에 만남이 있다. 가끔 서랍 속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희미한 흔적을 찾아본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문득 생각날 때, 그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 안타까울 때가 있다. 혹시나 실오라기 같은 메모라도 발견할까 싶어서 가느다란 기대를 떠올리며 흔적이 있을 만한 곳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분명, 어디엔가 주민등록번호가 남아 있을 법한 수첩, 아니면 낡은 노트가 있을 법도 한데 이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 후에도 가끔 없어진 줄 뻔히 알면서도 또 흔적을 찾아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나의 순수했던 첫사랑이었다.

바보 같았던 사랑이었기에 아직껏 나의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미련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순수한 사랑, 부끄럽지 않은 사랑, 두고두고 생각나는 그런 사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란 통설이 정답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래도 첫사랑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가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 첫사랑이 떠나간 후에 새로운 인연은 소중했다. 이십칠 년 전 어느 겨울날, 서울 K 'M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후미진 곳에 별도로 마련된 '맞선' 자리는 설렘이었다. 그런 만남이 한평생 동반자가 되어 현재 함께 사는 친구 같은 내 사람이다.

만남의 설렘도 이별의 아쉬움도 세월이 흘러가다 보면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와 섭리가 정해져 있다면 이것은 아름다운 시작과 끝의 조화일 것이다. 만남의 시작과 끝의 조화에 잘 어울리는 이 말이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이라 받아들인다. ,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생의 화두는 인생의 정답처럼 꼭 맞게 요약된 듯하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정한 이치이고, 헤어지면 반드시 만난다는 의미이니 어찌하리오.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연에 고리를 맺고, 끊고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이것은 바로 대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대자연 속에서는 사람은 티끌이나 먼지 같은 하찮은 존재로 남아 있다. 어떤 만남이라도 소홀하거나 가벼이 생각해서는 아니 될 성싶다. 사람과 만남, 사람과 사물의 만남, 사람과 영혼의 만남, 그 어느 하나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만남은 우연이 아님을 생각할 때 이것은 창조의 발견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은 순수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좋은 만남의 결실은 아닐 듯싶다.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서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한국수필』 2006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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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9. 10월호 수필 월평-김형출의<만남의 미학> 작품평

-경험적 사색의 문장-


김홍은(수필가, 충북대 교수)


이번의 9. 10월호의 '특집 1'은 한국수필의 큰 발자국을 남기신 <故 月堂 조경희 선생 추모글>을 읽으며, 삼가 고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고 있다. '특집 2'<물을 만나면 달라지는 인생>으로 12분의 문인들로 하여금 물의 교훈과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이에 얽힌 추억의 눈길을 끌게도 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략)


이번호의 <사색의 뜰>에는 15명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형출의 <만남의 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며 좋은 만남만을 생각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도 어딘가에 메모해 두었던 주민등록번호가 수첩이나 노트에 남아 있을 법하여, 그 흔적을 찾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어떤 심정은 순수한 첫


사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십 칠 년 전 다방에서 맞선을 본 그 만남이 한평생 동반자가 되어 함께 살고 있는 친구 같은 사람과의 인연을 그려놓았음이 기억되게 한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연에 고리를 맺고, 끊고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이것은 바로 대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대자연 속에는 사람도 티끌이나 먼지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어떤 만남이라도 소홀하거나 가벼이 생각해서는 아니 될 성싶다. 사람과 만남, 사람과 사물의 만남, 사람과 영혼의 만남, 그 어느 하나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만남은 우연한 것이 아님을 생각할 때 이것은 창조의 발견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은 순수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좋은 만남의 결실은 아닐 듯싶다.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서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화자는 만남의 시작과 끝의 조화에 잘 어울린다며 불가에서 말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모든 생물은 탄생하면 다시 죽게 되고, 죽게 되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대자연의 법칙을 들려주었다.

사람도 만나면 헤어지게 되고, 헤어지다가는 다시 만나게 됨도 모두가 존재하고 있는 우주자연의 모든 것들에 의한 인연법에 따라 생겼다가 연에 의해 소멸한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존재의 생멸(生滅)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때로는 그 인연마저도 실재성이 부정되므로 모든 존재는 공()'이라고 불가에서는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소중한 인연을 화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은 순수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좋은 만남의 결실은 아닐 듯싶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를 궁금하게 하고 있다.

첫 사람과 헤어지게 됨도 아픈 인연이요, 부부의 연을 맺게 됨도 값진 인연일 것이다. 사람의 만남은 반드시 좋은 인연의 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악연이라 하는 잘못된 만남도 있게 마련이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창조의 발견이라고 화자는 말했듯이 모든 만남의 인연은 꿈과 희망의 아름다움으로 맺어갈 때 그 속에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수필》 2006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