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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8. 2019

인정받는다는 것

 사람은 인정의 욕구가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글을 쓴다는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던 나를 4학년 담임 선생님이 대회에 추천(시베리아 눈 밭에 묻힌 보석을 알아보는 멋진 안목을 두셨습니다)하시면서 본격적인 나의 글쓰기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평소 안면 인식 장애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편인데 그 선생님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난다.

어느 정도냐면 예전 모 예능에서 故신해철 님이 '방송국 엘리베이터에서 손석희를 만났는데 키가 크고 하얗고 안경을 쓴 모습에 성시경인 줄  착각했었다' 하는 것이 단번에 이해될 정도였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저 사람 어디 나왔던 그 사람 아니야? 하면 백발백중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기억 속에 확실히 저장된 선생님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그때의 상황과 함께 지금도 뚜렷하다.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콩과 젓가락을 가져오게 해 콩 짚기 연습을 시킬 만큼 젓가락질과 연필 잡는 법에 엄격하셨다. 나는 연필을 이상하게 잡는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필기를 엄청 집중해서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늘 들고 다니는 작은 북채(aka몽둥이)로 손을 탁 때리시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선생님을 엄청 무서워하고 어른들 말 잘 듣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모와 어른들 말로 이건 아닌 걸로 탄로 났지만)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을 뿐인데 느닷없는 몽둥이질에 억울해져 선생님을 '도대체 왜??'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뭐 이놈아, 연필!"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얼굴이 선명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연필 잡는 법을 못 고쳤다고 한다)


 내가 수업하는 아이들도 연필을 이상하게 잡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 선생님이 뭐라고 해서 똑바로 잡다 보면 글씨가 더 이상하게 써진다고 투덜다.

 그러면 나는 "괜찮아, 선생님도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그런 거 엄청 뭐라 하셨는데 아직 못 고쳤어. 그래도 글씨만 예쁘고 그림도 잘만 그려" 하고 공감해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저도 글씨도 예쁘고 그림도 반에서 제일 잘 그린다고 친구들이 그래요. 근데 젓가락질도 이상하게 해서 맨날 흘려요"

 "훗, 쌤은 그래도 젓가락질은 잘하지"

 "앗! 뭔가 배신감 든다"

 "절대 음식을 흘리지 않겠다는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지, 사실 연필은 이미 그때 익숙해져 있어서 고칠 마음이 없었던 것 같고 젓가락질은 잘 못하고 스스로도 불편하니까 그때 엄청 연습을 많이 했어"


 여하튼 그 선생님의 추천으로 당시 문예창작반 담당이었던 5학년 담임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재수탱이 쌤은 가르쳐주는 게 없었다. 일단 써 오라 하고 "어머 유치해, 다시!" 이 말 뿐이었고 어디가 이상한지 피드백도 없었다. 어릴 때의 일을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인데 처음으로 글을 잘 써봐야지, 인식을 하고 쓴 것이라 그런지 어떤 글이었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다.


 아빠가 산에서 잡아온 산토끼를 토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철장 안에 가둬놓고 키웠는데 당근과 토끼풀을 뜯어다줘도 통 먹지를 않고 매일 쿵쿵 머리를 박아대더니 얼마 못가 죽어버렸다. 집 앞에 토끼를 묻어주면서 뱀이 땅굴속에서 죽은 토토를 먹어버릴까 봐 관처럼 어느 상자에 봉인(?)하듯 넣어 꽃을 뿌려주고 묻은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자유에 목마른 토끼였던 것 같아 너무 불쌍하다.


 그렇게 나의 아픈 추억이 있는 첫 글을 유치하다니! 어쨌든 난 그 뒤로 꾸준히 산문 부문으로 도대회에서 상을 타 왔다. 그때부터 난 대회에 나가는 날이면 수업도 빠질 수 있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어 더 뿌듯하고 좋았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이 갑자기 운문 부문에 애들이 부족하다며 나를 운문으로 갈아타라고 하셨다. 시를 써본 적이 없어서 못쓴다고 개겼다. 사실 개기게 된 더 큰 이유는 나랑 같이 산문 부문으로 대회를 나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꼭 그 아이가 대상을 받으면 난 금상, 그 아이가 금상을 받으면 난 은상 하는 식으로 꼭 그 애보다 한 단계 낮은 상을 받고는 했다. 그래서 그 애보다는 실력이 떨어지 나를 굳이 운문으로 보내려 하는구나 하는 자격지심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뭐든 하나 써와 보라 하는 선생님의 성화에 짜증 난다고 투덜대다 좋은 시상이 떠올랐다며 일필휘지로 적어 내려간 후 아이들과 돌려 보며 깔깔 웃었다.



장미

바람 한 점 없어도
향기로운 꽃
가시 돋쳐 피어나도
아름다운 꽃
혼자 피어 있어도 외롭지 않은
세상 마냥 즐거움에 피는 꽃 장미
정열과 화려함 속에서 살다 갈 거야
장미는 화사함에 피고 순결함에 지네


만화영화 <베르사유의 장미>

 아시겠는가? 그 시절 내가 환장했던 <베르사유의 장미> ost.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부분만 뺐는데 아주 멋진 가사였다. 너무 잘 썼다고 감격하는 선생님이 웃겨서 킥킥대다가 사실 만화영화 주제가라고 실토하고 맞아 죽을 뻔했다.

 하지만 곧 운문에 적응한 나는 운문 역시 상을 받아 왔다. 움하핫!


 그렇게 자신감이 찌르고 있는 와중에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학교 백일장이 열렸다. 뽑히는 글은 시화 액자를 만들어 학교에 높은 분들이 오시는 날 전시를 해 둔다고 했다. 예상대로 잘난 나는 또 뽑혔다. 하지만 전시가 있던 날 나는 또 자존심에 금이 가고 말았다. 


 선생님이 내 시를 난도질 해 다른 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년, 반,  내 이름과 제목을 보니 분명 내 것이 맞는데 내용의 3분의 1은 고쳐버린 것 같았다. 애들이 "우와 이걸 니가 쓴 거야?" 하는데, "아니 뭐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반은 갈아엎으셨네 내 시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물어보는 친구마다 대답을 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들었으면 뽑지를 말지 말이다. 글이 유치하다며 매번 퇴짜를 놓던 그 재수탱이 5학년 담임보다 더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도 난 역시 그 뒤에도 꾸준히 상을 받아왔다. 역시 스스로 해낸 것 그 자체로 인정받았을 때 뿌듯한 법이다.


 인정남과 나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내가 인정하는 것이란 일종의 자기만족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면 좋은 것은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 이란 주제로 5학년 아이가 쓴 글인데 왠지 모르게 가슴을 울리는 글이 있었다.


저작권으로 쌤 신고하면 안돼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

루이스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은 피츠로우 아줌마, 마드루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덕에 루이스는 책임감 있는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들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가 과연 그림을 전공으로 삼는 것이 될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힘들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항상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진짜 진지하게 내 생각엔 네가 충분히 재능 있다고 생각해", "넌 완전 잘 그려" 등의 말을 해주어 힘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더 열심히 노력하여 그림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제게 매우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힘을 주어서 고맙고, 너희들의 칭찬 덕분에 내가 훨씬 성장한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친구들의 칭찬, 또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달라진 제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도 잘 쓰는 아이다. 좋은 친구를 둔 그 아이가 부럽다. 나도 자기만족은 충분하니 남에게도 인정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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