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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Dec 14. 2022

거기어때

02. 베를린 

멋대로 보낼 수 있는 6개월이라는 텅 빈 시간이 생겼다. 안식월이 생긴 나를 사람들은 참 많이 부러워했다. 부럽다는 말에는 당연한 수순으로 “이제 뭐 할 거야?” “어디 여행 갈 거야?” “멀리 다녀올 거야?”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내가 어서 빨리 조국 땅을 떠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서른넷의 나이에 등 떠밀리듯 타국 땅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비행기에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 소매치기가 많으니 작은 주머니가 달린 팬티를 사서 입어야 한다 등 별 얘기를 다 들었다. 그런 말이 농담인 건 알았으니까, 앞에선 가볍게 웃었지만 혼자가 되면 무겁게 심각해지곤 했다. 이제와 말하지만 주머니가 달린 팬티는 정말 살뻔했다. 사십 일가량을 멀고 먼 유럽으로 갈 생각을 하니 별게 다 걱정이 되고 그랬다. 하필 여행을 며칠 앞두고 지독한 감기까지 걸리고 마는데. 누가 머리 꼭대기에서 주전자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콧물이 흘렀다. 기침이 한번 터지면 구역질이 날 때까지 계속됐고 목에서는 손톱으로 유리창 긁는 소리가 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걸리는 병도 여독에 포함되는 걸까, 아니면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애를 썼다.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아 캐리어 귀퉁이에 챙겨 넣었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어”, “아프면 거기 병원 가면 돼.”, “꼭 필요한 물건만 간단히 챙겨서 가.”라는 친구들의 말은 캐리어에 좀처럼 담기지 않았다. 대신 약봉지 옆에 혹시 모르니까 생리대도 챙겨 넣고, 혹시 모르니까 라면도 챙겨 넣고, 혹시 모르니까 수면 양말도 챙기고, 그렇게 혹시 몰라서로 이름 붙인 것들을 챙겨 넣으니 가방이 금세 불룩했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로 채워진 가방은 든든했다. 혹시 모르니 캐리어도 두 개를 싸야 할까 라는 생각이 밀려들 즈음 비행기에 올랐다.   




유럽의 첫인상은 크다는 거였다. 큰 사람들 사이에서 가뜩이나 작은 나는 더 작아지는(실제로도 더 작아 보였으리라) 기분이었다. 헬싱키를 경유할 때 화장실에 가니 변기마저 좀 높은 것 같았고 그걸 보면서 자일리톨 껌이 된 것 같다는, 그 당시 유행하던 북유럽 감성을 경험했다. 자일리톨 껌과 북유럽 감성을 연결하면서 이거 꽤 재밌다고 생각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걸 보고 있을 조국의 사람들이라도 내가 되게 재미있는 여행을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며. 비록 나는 그 글을 2시간이 넘게 남은 환승 시간을 자리 한번 비우지 않고 내가 타야 할 비행기를 노려볼 때 올린 거였지만.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야 그 비행기가 나를 여기 남겨두고 가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혼자 하는 유럽여행을 앞두고 로맨틱한 ‘비포 선라이즈’류의 스토리를 아주 조금은 기대했지만(나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현실은 상영시간 내내 별일이 일어나지 않던 이란 영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에 가까웠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 아이를 멀리서도 그리고 길게도 찍어놨던 그 영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끝까지 봤지만 끝내 별일이 일어나지 않던 그 영화 말이다. 내가 뭘 하지 않는 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까치발을 들고 낑낑거리며 선반에 짐을 올려도 다정한 말을 건네는 에단 호크 같은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 뭐, 나도, 줄리 델피는 아니니까. 오히려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여행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낯선 장소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은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암스테르담에서였다. 아침 10시, 밤이 빛나는 도시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시간에 별일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때까지 비포 선라이즈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탓일까. 친절하게 말을 받았더니 그 남자가 나를 향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두 유 원트 섹스?”라고 말했다. ‘하우 아 유 두잉’ 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하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몇 초간 제대로 된 대꾸도 못했다.(신명 나게 한국 욕이라도 들려줄걸) 욕을 내뱉는 대신 머리를 흔들며 “노”라는 말을 빠르게 반복해서 외치면서 뒤로 걸었다. 그런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외국인 특유의 어깨 으쓱을 시전 하며 멀어져 가는 사람아. 이게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건넨 첫 유럽인 에단 호크 아니고 영화에서 이름 모를 행인 1 역할을 받을까 말까 한 그런 사람. 그 앞에 서 있는 나 역시 줄리 델피 아니고 영화에서 행인 2 동양 외국인 정도의 역할을 받을까 말까 한 그런 사람,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걸 경험한 후에는 가뜩이나 없던 말수가 더 줄었다. 서툰 영어를 뱉는 게 부끄러웠고, 그마저도 한번 이야기하려면 머릿속으로 오래 생각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내뱉어야 하니, 말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고단했다. 더듬더듬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빨을 꽉 깨물며 그랬다. ‘야, 니들. 나 원래 되게 재밌는 사람이거든?’ 누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나한테 관심이 없는데.  


그날도 그랬다. 나는 이제 막 베를린에 도착했고, 낯선 곳에서 헤맬까 싶어 역 바로 앞에 있는 호스텔에 들어섰다. 멋대가리 없는 장식과 그저 그런 분위기의 흔한 숙소는 키가 조금 큰, 아주 큰, 엄청나게 큰 외국인들로 차 있었다. 문을 밀고 데스크를 향해 걸었다. 그 앞으로 다가가며 ‘웃지도 않아 얘들은 왜’라는 혼잣말을 마음속으로만 뱉었다. 나를 흘끗 보더니 직원이 물었다. “언제까지 있을 거야?” 이 정도 얘기는 뭐 쉽게 할 수 있지 하며 내 입에서 나간 한마디 “예스터 데이” 

그렇다 예스터 데이. 어제를 일컫는 그 말, 예스터데이. 언제까지 있을 거야라는 질문에는 당찮은 그 말, 바로 어제라는 말. 직원은 여전히, 또, 웃지도 않고 나를 빤히 보고만 있다. 이걸 제발 나의 조크로 오해하길 바라지만 그러기에 직원은 피곤한가 봐. 그냥 나를 빨리 자기 앞에서 치우고 싶은가 봐.

‘에단 호크 아니야, 에단 호크 그런 거 없어. 이제는 받아들여 그냥.’ 

‘내일이 뭐였더라? 내일이 뭐냐고! 빨리 생각해내자, 생각해내자.’ 

일 년 같던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간신히 답을 찾아 말했다. 

“노. 노. 투마로.. 투마로..” 

나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할 걸 그랬다. 하필 왜 얼굴까지 빨개지고 그런담. 4인 1실의 방  카드를 받아 들고 올라가서 가방을 내려 두니 그래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미 혼자이지만 더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남은 3개의 침대 곁의 가방을 보니 그것도 어렵게 된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서 욱여넣은 약봉지, 생리대가 여전히 남아있는(라면은 진즉 먹어치움) 가방을 한쪽에 두고 나에게 배정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창피함은 시래기가 잔뜩 올라가 있는 뼈해장국이나 씹을 때마다 기름이 쭉쭉 나오는 곱창구이나 자리에 앉자마자 서너 개의 반찬이 착착착 놓이고 물도 마음껏 더 달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음식 먹으면 눈 녹듯 사라질 것만 같다. 한쪽 팔을 베고 누워 머리로는 한국 음식을 떠올리며 이렇게 된 거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비틀스의 ‘예스터 데이’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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