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앞에선 한없이 움츠려드는 아들, 딸들에게 건네는 위로
4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특별히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다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지?”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엄마 친구 아들은 이번에 또 승진했다더라, 누구 딸은 투자로 돈을 벌었다더라, 어느 집 애는 좋은 회사로 옮겼다더라. 그냥 안부를 전하는 말일 뿐인데, 듣고 있는 사람 마음은 괜스레 작아진다. 나만 그대로인 것 같고, 세상은 나만 빼고 앞으로 잘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정말로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가는 엄친아와 엄친딸만 존재하는 걸까?
그런데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감정은 의외로 경제학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전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일부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좋은 소식만 이야기한다. 승진이나 연봉 상승, 투자 성공 같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유되지만, 힘들었던 순간이나 실패한 경험은 조용히 사라진다. 누군가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대화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 귀에 들어오는 것은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뿐이다. 마치 긴 영화 중 하이라이트 장면만 계속 보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그 몇 장면을 보고 전체를 상상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안다. 월급이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 사소한 소비 습관, 불안한 미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고민까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결과만 듣는다. “요즘 잘된대”라는 한마디가 전부다. 비교는 언제나 불공평하게 시작된다. 내 현실의 전체와, 남의 가장 좋은 순간을 나란히 놓고 있으니까.
SNS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다. 잘 나온 사진, 의미 있어 보이는 소비, 기분 좋은 장면들등... 그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좋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 장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세상 전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삶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로 느끼게 된다. 내 상황이 나빠진 것은 아닌데, 누군가 더 나아 보이면 괜히 초라해진다. 비교의 기준이 조금씩 올라가고,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스스로에게는 부족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엄친아, 엄친딸들이 늘 완벽할 리는 없다. 그들도 각자의 속도와 고민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전체가 아니라,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우연히 듣고 이를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끝이 없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과 오히려 작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는지, 예전보다 불안에 덜 흔들리는지,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나아졌는지를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의 소식이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날이면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금 들은 건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아니라, 아주 짧은 하이라이트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이라이트보다 훨씬 긴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꿈을꾸고 가슴뛰게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삶의 가치를 누군가와 비교할수 없다고 말이다.
*관련 경제학 이론 : 생존자편향, 정보의 비대칭성, 시그널링, 행동경제학적 기준점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