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존중의 근원 The Source of Self-Regard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교환되거나, 대체되거나, 쓰고 버려질 수 없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인간도 자기 자리에 늘 존재한다.
폭력은 악, 그 자체이다. 돌이킬 수 없이 망치고, 모두를 슬프게 한다.
폐허와 그곳을 떠도는 유령들을 남길뿐, 그 고통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존재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에,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미래가 있다.
당연하다 믿는 생각들을 스스로 의심하게 될 때, 토니 모리슨이 앞서 지나가며 남긴 확고한 흔적을 읽고 또 읽으며, 습관처럼 일어나는 회의를 거두어 본다.
그리고 오늘은 여전히, 늘, 희망이 있다고 노래하고 싶다.
1. < 손 안의 새 >
1993년 12월 7일.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한 미국 대통령은 묘지가 되어버린 조국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세상은 크게 관심 갖지 않을 것이며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테지만, 저들이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1)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말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데 고무적인 이유는 60만이 사망한 막대한 인종 전쟁의 현실을 간추려 말하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기념하기를 거부하고 '마지막 한마디', 명확한 '요약'을 우습게 여기며 '더하거나 빼는 데 형편없는 우리의 능력'을 인정하는 대통령의 이 말은 추고 하고자 하는 삶을 말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의미심장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2. < 단단하고 진실되고 영원한 것 >
2005년 8월 30일,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로버트 앤드 주디 프로콥 뉴먼 렉처'에서.
내가 수년 동안 흥미롭게 여겼고 아마도 평생 그렇게 여길 사실은 바로 인간을 아무리 금수 취급해도 인간은 금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백인 약탈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로 하여금 걸어서 대륙을 횡단하게 만들어 그들이 파리나 소 떼처럼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기만 원주민들은 소 떼가 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산 채로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지만 금수가 되지 않았다. 흑인들은 대대로 노예로 살았고 쌀, 타르, 테레빈유와 함께 화물 취급을 받았지만 화물이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집단은 하나같이 저들을 억압한 그 참상을 문명화했다. 인간을 금수로 만드는 방법은 없고 만들 수 없다. 결코 가능하지 않다. 왜 가능하지 않은지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3. < 종이 앞에 앉은 작가 >
1983년 6월 25일. 미국 맨해튼빌 대학교에서 열린 '제네로소 포프 작가 회의'에서.
작가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책임은 (시대가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일,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너무 야심에 차 보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일이다.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20억 인구가 한 가지 방법으로만 세상을 이해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나는 북극광을 봤을 만큼 충분히 나이 들었다. (1938년이었던가?) 오하이오주 로레인 하늘에서 벌어졌던 그 몹시도 충격적이고 극히 심오했던 사건을 나는 기억한다. 그걸 보고도 어찌 단 하나의 빛깔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4. < 9월의 망자여 >
2001년 9월 13일,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열린 9.11 테러 희생자 추도식에서 발표한 시 중에서.
......나는 먼저 혀를 새롭게 하리라. 악을 판단하기 위해 빚어진 문장들을 내팽개치리라. 그것이 제멋대로 행한 악이었든 계산한 악이었든, 폭발적이었든 소리 없이 불길했든, 부른 배에서 나왔든 굶주림에서 나왔든, 복수심에서 나왔든 넘어지기 전에 일어서고 싶은 단순한 충동에서 나왔든. 나의 언어에서 과장법을 청산하고, 사악함의 정도를 분석하려는 의욕을, 동종의 것들을 줄 세우고 그 사이에서 지위를 계산하려는 의욕을 청산하리라......
5. 인종을 드러내기 전에
1976년 10월 29~3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열린 미국 건국 200주년 심포지엄 '인도적 사회의 본질'에서 제임스 볼드윈을 글 '상호 이해와 인종 화합의 근거를 찾아서 (In Search of a Basis for Mutual Understanding and Racial Harmony)'에 대한 응답으로 발표한 글 중에서.
우리는 인간이다. 세 살짜리도 알 수 있는 것을 이미 깨달았어야 하는 인간이다. "수십억이 태어나고 죽는 이 모든 일이 얼마나 못마땅하고 서투른지" 깨달았어야 한다. 우리는 쌀이 아니라 인간이다. "뒤집힌 딱정벌레를 제대로 놓아주는 사람만큼 자비로운 신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사마귀처럼 못된 행동을 하는 민족은 세상에 없다." 지구 상의 도덕적인 주민은 바로 우리다. 이 사실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치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물론 잔혹성도 있다. 잔혹성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그러나 세상을 길고 무자비한 게임으로 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수수께끼를 만나게 된다. 아름다움, 빛이라는 수수께끼, 해골에 앉아 노래하는 카나리아라는 수수께끼.......모든 시대와 모든 피부색의 인류가 미혹되지 않는 한......기품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 조화라는 것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냥 가져갈 수 있다.
6. < 신데렐라와 의붓언니들 >
1979년 5월 13일. 미국 바너드 대학 졸업식 연설 중에서.
여러분의 개인 목표 실현을 향한 무지갯빛 여정에서 자신의 안정과 안전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무엇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것은 원래 없습니다. 성취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안전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가치가 높은 것이 안전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상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선례가 없는 일을 택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누군가 여러분을 멈추려 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높은 야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여러분의 의붓자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질 자격이 있는 그 권력을 휘두를 때 의붓자매를 노예로 삼는 것을 허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힘과 권력이 여러분 안에 있는 남을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도록 하십시오.
여성의 권리는 추상 개념이나 대의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와 너의 문제입니다. 우리 둘의 문제입니다.
7. <우리는 최선을 다해 타자를 상상해야 합니다 >
1988년 5월 27일. 미국 세라 로런스 대학교 졸업식 연설 중에서.
이쯤 되면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어쩌라는 거죠? 제가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어요. 제 인생은 어떻게 해요? 제가 원해서 여기 온 게 아니에요.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요. 부탁한 적 없나요? 저는 부탁했다고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뿐만 아니라 살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여기 있지 않는 방법은 아주 쉬웠어요.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울 만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꿈은 부모가 꾼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꾼 거죠. 저는 여러분에게 스스로 꾸기 시작한 꿈을 이어가라고 격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꿈은 무책임하지 않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일입니다. 여흥이 아닙니다. 힘든 일입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진지했습니다. 그가 상상하고 그려보고 머릿속에서 만들어냈을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꿈을 꾸어야 그 꿈에 마땅한 무게와 범위와 수명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세상의 이치가 이러하니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면 절대 듣지 마세요. 세상은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토니 모리슨 저. 이다희 옮김. 2021. 보이지 않는 잉크 The Source of Self-Regard. 바다출판사.
1. p.30
1)*남북전쟁에 대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일부
원문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1993/morrison/lecture/
2. p.47
3. p. 96
4. p.299
5. p.336
6. p. 390-p.391
7. p.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