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국민 여동생'에서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사라 폴리는 어린 시절부터 캐나다의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아역 배우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라는 11살 무렵 암으로 엄마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최고조의 인기를 구가했다. 성인이 된 사라 폴리는 인디신에서 큰 화제를 모은 아톰 에고이안의 <엑조티카>를 비롯한 히트작에 출연하면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나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라 폴리가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 더 큰 빛을 발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만든 영화 <어웨이 프롬 허>가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고, 차기작 <우리도 사랑일까>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다졌다. 사라 폴리의 영화는 대체로 평온한 삶을 다루지만, 그 잔잔한 삶 속에 출렁이는 격정을 포착하는 데 능통하다. 사건의 파급력보다는 그 힘에 내쳐진 감정을 다루는 데 관심이 많고, 시간이 다 지나간 후에 허공을 응시하며 떠올리는 회한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현재는 영화보다는 TV 드라마 연출에 주력하고 있는 사라 폴리의 대표작 세 편을 소개한다.
우리도 사랑일까(2011)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 남 부러울 게 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마고는 어느 날부터 자꾸 옆집 남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가난하고 행색도 볼품없는데 자꾸만 아른거려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새로운 사랑은 마고를 잠식하고, 착하고 순한 남편 루를 떠올리며 자책하는 마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든다. 그렇게 마고는 그간 일궈온 삶을 다 버리고 밖을 나선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것처럼 불륜은 수순을 밟는다. 흘러간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남편과 잘 살아가던 한 여인이 외도로 가출하는 그야말로 흔해 빠진 이야기다. 얼핏 보면 불륜 통속극이지만 그냥 그렇게 뻔한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take this waltz'라는 영화의 원제가 의미심장하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왈츠곡에 잠시 올라타 보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것 같은 어감이다. 아니 조금 더 단호하게 연주가 다 끝나기 전에 낯선 남자가 내민 손을 맞잡으라고 권하는 기분도 든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사랑의 동력은 불안이라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곳에 새로운 사랑이 깃든다. 평탄한 가정은 시종 미지근할 뿐이다. 잘 차려진 식탁을 마주하고도 갈증이 나고, 낙엽 진 거리를 걷다가도 한숨이 베어진다. 마고는 그렇게 권태로운 삶을 떠나 이웃집 남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내는 착한 남편을 떠나면 나중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를 버린다. 장대한 왈츠가 흐르는 시간만큼은 걱정 없이 몸을 맡길 수 있을 테니 앞날의 불안일랑 우선 덮어두고 몸을 맡긴다. 마고는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몸을 흔든다. 그러는 사이 영화는 집에 홀로 남겨진 남편 루의 절망을 비춘다. 외면하고 싶은 루의 고통이 화면 바깥까지 엄습한다. 루가 혼자 머문 집에는 아무런 음악도 흐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려진 남편 역을 지질한 배역에 익숙한 코미디 배우 세스 로건이 맡아 연기했다. 휑뎅그렁한 방에서 텅 빈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하는 연기에는 웃음기가 없다. 루는 사랑에 빠진 연인에 밀려 더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난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그의 웅크린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왈츠에 올라타지 못한 자의 방에는 적막만이 고요함을 시위한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2012)
몇 해 전 혼자 광화문의 '스폰지하우스'에서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전국에서 딱 한 곳 개봉하는 '사라 폴리' 감독의 영화였다. 그때 내가 영화관을 찾은 이유는 '사라 폴리' 감독이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근사한 멜로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서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오직 예고편에서 본 내레이션 문구 때문이었다.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혼돈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적확한 이야기다. 난 사라 폴리가 자신이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도 담담하게 자신의 자의식을 통제하는 예술가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사라 폴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마이클과 별로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형제들은 귀여운 늦둥이 막냇동생이 귀여워서 자신들과는 유별나게 다른 외모를 놀려댔다. 그 과정에서 사라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에 시달렸다. 성공적인 아역 배우의 커리어를 거쳐 세계적인 감독이 된 사라 폴리는 자신이 어릴 때 죽은 어머니 다이앤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어머니에 관한 기억을 캐물으면서 사라는 점차 젊은 한 여인에게서 자신의 근원을 발견한다.
다이앤은 딸 사라의 바람처럼 밝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의식이 강하고 저만의 개성을 지닌 배우였다. 그런 다이앤이 몇 번의 결혼을 거쳐 만난 마이클은 점잖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물과 불처럼 정반대인 두 사람은 마흔 살이 넘는 나이에 딸 사라를 갖는다. 사라 폴리는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이 태어날 때까지 어떤 이야기의 공백이 있음을 발견한다. 의도적인 누락과 가족들의 모른 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결국 집요한 취재 끝에 그간 의심만 무성했던 제 출생의 비밀을 밝혀낸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지극히 자의식에서 출발한 영화다. 나라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고, 결국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려는 욕심이다. 그렇게 사라 폴리는 영화의 말미에 친부를 찾아 나서면서 뿌리까지 들어낸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비밀을 밝혀내고 친부를 찾아가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영화가 너무나도 침착하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극적인 이야기를 취급해 온 예술가 집안이라서 그런지 출생의 비밀을 앞에 두고도 따사롭게 냉정하다. 이야기가 제대로 풀렸고, 우린 그걸 받아들인 채 자세를 고쳐 잡고 계속 펜대를 쥐어야 한다는 마음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아버지 마이클의 몫이다. 톱스타 사라의 아버지이자 재능 넘치고 개성은 독특한 다이앤의 남편으로 살아온 마이클은 자신의 딸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작가로서의 꿈을 실현하고자 노트를 편다.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을 뽐냈던 가족들의 틈바구니에 가려졌던 마이클의 창작 능력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창문에서 윙윙거리는 파리를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적어내리라고 다짐하는 마이클의 표정에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가 지닌 태도가 고스란히 응축해있다.
그레이스(2017)
사라 폴리는 무려 17살의 나이에 위대한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저 팬레터가 아니라 소설 <그레이스>의 판권을 구입하고 싶다는 당찬 요구였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사라는 포기하지 않고 넷플릭스를 통해 각본과 프로듀서로 참여한 드라마 시리즈 <그레이스>를 공개했다.
<그레이스>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여성 범죄자인 그레이스 막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살인자이면서 희생자이기도 했던 막막한 삶을 산 그레이스(사라 가돈)는 집주인과 그의 정부인 하녀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는다. 이 사건을 지켜보던 의사 사이먼(에드워드 홀크로프트)은 그레이스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그의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운 태도에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던 그레이스는 서서히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직 자극적인 신문 헤드라인과 무성하게 번진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그레이스의 삶에 얽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라 폴리의 각본은 잔혹한 범행에도 다양한 사실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단순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길고 긴 이야기로 풀어냈다. 문학과 영화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쩌면 피곤하고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에도 가치판단을 재고할 수 있는 여력을 주는 게 아닐까. 시대의 범죄는 그 사회의 가치관과 수준, 정신적인 가치와 숨기고 싶은 추악한 얼굴까지 모두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린 17살의 사라 폴리가 왜 이 가혹한 소설을 손에 쥐려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