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Dec 23. 2022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

 올 한 해는 거짓말이 좀 줄어든 해였다. 이 말이 얼마나 진실성이 있으며 믿을만한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낀다. 더 많이 줄여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렵지만 돌려 말하거나 말에 완충을 주면서 거짓말을 진공포장하는데 그쳤다. 내년에는 쇼핑백에 들어갈 크기만큼 거짓말 사이즈를 줄여볼 생각이다. 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약소하게. 종이백이 찢어지지 않도록 뭉툭하게.


 어릴 적부터 거짓말하지 말라는 얘길 듣고 살았다. 거짓말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잘 들켜서 그런 것 같다. 난 허술하니까. 좋은 거짓말쟁이는 들키지 않는 솜씨가 비결이다. 펜티엄 이상이 되는 머리는 기본이다. 눈빛이 흔들리면 안 되고 말이 꼬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난 간 치수가 쪼매나다 보니 태연하게 구라를 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기본 소양도 안 되어 있으니 사기나 치고 다니는 놈팡이가 될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거짓말이 서툴면 삶이 고달파진다.


 학교 다닐 때는 섣부르게 고1 담임을 속이려다가 눈 밖에 났다. 인자한 팔자 주름에 눈매가 선해 보여서 안심하고 학기 초부터 구라를 펐다. 학교를 빠져도 적당히 아프다고 하면 넘어갈 줄 알았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이실직고했다가 된통 당했다. 나는 부러 흐리멍덩한 눈을 만들고 목소리를 갈아서 어설픈 연기를 했는데, 그는 MBC아카데미 원장처럼 내 연기에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실팍한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십자인대를 바짝 세운 채 내 발바닥을 후려쳤다. '내가 너 같은 놈을 한둘 본 줄 알아. 내가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고 만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을 가면처럼 벗어던지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입을 앙다물고 매질에 몰두했다. 사드 후작 같은 작자 같으니. 솔직하게 말하면 봐주겠다고 해놓고는 보란 듯이 더 때렸다. 새빨간 거짓말에 되치기 당한 것이다. 그 선생에 그 제자 아닌가.


 스무 살 초입, 처음 일을 시작하고 만난 과장님도 떠오른다. 저녁에 야근한다고 뻥치고 헬스장에 갔다가 걸렸을 때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난 들킨 줄도 모르고 모니터로 채팅하다가 그의 코웃음 소리를 들었다. '저 인간이 미쳤나. 왜 쳐 웃고 지랄이래.' 그는 다음날부터 날 대차게 까기 시작했다.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다느니, 주변머리는커녕 채신머리까지 없다느니 밥상머리 앞에서까지 날 갈궜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는데 내가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일을 등한시한다고 헬스장 출입을 제한시켰다. 몸을 키우는 게 나이트 삐끼멘키로 날라리나 하는 짓이라며 천만 헬스인을 모독했다. 내 근육이 쓸모없는 파우더 근육이라고 깎아내렸다. 내가 데드리프트로 키운 척주기립근으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지도 모르고. 내가 얼라도 아닌데 그는 나를 얼라보다 더 잡으려고 들었다. 제 자식한테는 한없이 다정다감하면서 내가 남의 자식이라 그런지 가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쁜 자식. 난 핍박받을수록 쇳덩이에 더 집착했다 나이트 삐끼멘키로.


 여자친구도 거짓말만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예의상 하는 거짓말도 싫다고 했다. 웃기기 위한 거짓말조차 싫다고 했다. 두 눈에 핏대를 세우고 하얀 거짓말은 집어치우고 무조건 진실만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속은 새카매졌다. 내 유머는 과장과 왜곡이 기본이라고 말해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난 재치와 유머를 겸비한 화법을 구사하려고 대화에 소고기 미원을 조금 쳐봤지만, 그것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난 진실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지시였다.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내내 거짓말로 고생을 한 나는 요즘 확실히 거짓말이 줄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만들어낸 약소한 변화다. 하지만 본능처럼 불쑥 닭살처럼 솟아오르는 거짓말은 여전하다. 나는 상황이 좀 곤란하면 카드지갑에서 거짓말 카드를 꺼내 들곤 한다. 프리패스! 민망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을 피해서 거짓말로 테를 두른다. 좀 더 예쁜 상황으로 바꿔내는 양식 미술이다. 잘 나온 사진을 골라서 쓰면 되는 상황에서 욕심을 부린다고 포토샵으로 몽달귀신을 만들어놓는 꼴이지만, 실물보다는 확실히 더 나으니까. 가령 오늘도 상황 모면용 거짓말이 날 구해냈다. '오늘 기분 괜찮았어?' '어 좋았어.' 난 사실 오늘 기분이 별로였는데 그렇게 말해버렸다.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기분 나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말하기를 포기했다. 아마 오늘 나를 불쾌하게 한 사유가 명백하고 납득할만한했다면 내 기꺼이 사실대로 털어놨겠지. 하지만 삶은 국면 국면 말로 하기는 어려운 갈등과 번민이 뒤섞인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매캐한 기분은 몸 밖이 아니라 내 콩팥으로 걸러내는 수밖에 없다. 기분이 그냥 안 좋은 게 아닌데 그냥 좋다고 해야만 좋지 않은 이유를 조금이나마 멀리할 수 있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늘은 헬스장에서 나랑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형님이 끝나고 밥을 사준다고 했는데, 따라가기 싫어서 선약이 있다고 뻥 쳤다. 그분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찍 퇴근하고 싶었다. 꼴에 상대를 향한 배려랍시고 둘러댔다. 그냥 쉬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할 수 없었다. 그분이 좋은 사람이라서 거절보다는 피치 못할 사정을 대고 싶었다. 그렇게 구라를 날렸더니 어럽쇼, 매일 가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기가 어려워졌다. 형님이 구내식당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다 드시기를 기다린다고 괜히 어물쩍거리다가 마주쳐서 민망해지기 싫었다. 그래서 난 결국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고 김밥을 먹었다는 멍청한 얘기다. 솔직히 얘기했으면 될 것을. 내 배려 아닌 배려는 이처럼 과녁을 빗나가기 일쑤다. 여기서 왜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난 뾰족한 진실보다는 예쁘게 장식한 거짓말을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상황을 보면 피하고 싶어지는 게 내가 가진 인지상정이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난 무엇보다 징징거리기 싫다. 다들 힘겹게 사는데 나만 아프다는듯 불평하는 건 질색이다. 날 동정하거나 위로해주는 말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다정함이 시대의 화두가 된 요즘도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잘 알면서도, 내가 피위로인이 되기는 또 싫다는게 아이러니다. 오직 다정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데 쉽지가 않다. 난 글에서 온갖 죽는소리를 다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마패를 든 암행어사처럼 '맨박스'에 갇혀 있다. 아마도 이건 내 '센 척 증후군'의 병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자주 구사하는 거짓말이 '괜찮은 척', '별거 아닌 척'이다. 주윤발 못지않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초연함을 연기할 때 난 확실히 메서드 배우에 가깝다. KF94보다 더 치밀하고 꽉 짜인 허세가 날 지탱해 낸다. 싸구려 자존심일지라도 나는 늘 타인에게 별 심각할 게 없는 웃긴 사람이고 싶다. 나사 하나 빠진 가벼운 사람이라도 좋다. 이렇게 적고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난 글을 쓸 때 확실히 더 나은 거짓말쟁이다. 일상의 거짓말이 번번이 미끄러질 때 내 숱한 퇴고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는 단단하고 냄새도 좋은 원목마루를 제공했다. 연기 거장 말론 브랜도는 <삶을 위한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거짓말을 잘하면 연기도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문학부터 영화 그리고 희곡, 드라마는 결국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거짓말 안에서 약속이라는 것이다. 글 속에서는 거짓말을 뱉어도 확실히 안전했다. 이야기에 테두리를 잘 두르면 누구에게도 해가 가지 않았다. 글이 실제와 너무 밀접해지면 리얼함을 넘어서서 날카로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지칭한 개그는 조롱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내 의도가 어쨌든 슬픔과 원망은 누군가를 조준하기 마련이었다. 비단 칭찬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써도 그 안에 뾰족한 모서리가 없을 수는 없다. 글이 가진 개방성과 직설적인 면이 한 사람을 곤란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둔다. 픽션은 자유롭다고 공인된 세계다. 세기의 대문호들이 픽션 안에서 감히 삶 속에서도 엄두도 못 낼 짓을 벌였다. 새빨간 거짓말이 문학이라는 당의정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니 언젠가 내 세상은 공들여 쓴 거짓말로 가득 찰 것이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슬프게 하는 서툰 글이 아니라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문학이 오겠지. 어디 문학뿐이랴. 누군가의 기분을 고려해서 예술적으로 말을 지어내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아닌가. 나도 <타짜>의 '평경장'처럼 누가 그 작가라는 양반 잘 계시냐고 물었을 때, 내 지인이 나 대신 그 양반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갔다는 말을 해줬으면 싶다.


 준규네 부부는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 부부다. 정확히 말하면 순수문학을 꿈꾸다가 실패한 작가들이다. 요즘 사이가 별로인 그들은 나랑 만나면 서로 질세라 결혼 전에 당한 사기행각을 고발한다. 준규는 신문사 기자 출신이고 제수씨는 앙케트 회사에 다니는데 둘 다 글을 쓰고 살아서인지 혀 놀림이 호날두다. 하지만 수비는 안 하고 골만 넣으려는 호날두처럼 둘 다 약점이 명확한 공격수다. 준규는 결혼 전에 제2금융권까지 동원해서 산 아파트가 다 자기 집이라고 속였고, 제수씨는 5년 넘게 동거했던 남자를 밝히지 않았다가 살림을 합칠 때 박스에서 남자 속옷이 튀어나와서 곤욕을 치렀다. 상대의 위선을 까발리는 열기가 국회 인사청문회 못지않았다. 둘은 나를 증인처럼 앉혀 두고 커피를 소주처럼 마시면서 과거를 들먹였다. 연애할 때는 서로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속아주었다면, 이제는 이혼 전문변호사처럼 깎아내리기 바빴다. 매일 살을 부대껴야 하는 부부가 백해무익한 싸움을 벌이는 걸 보면서 난 정파 논리에 휩싸여서 사리 분간을 못하는 여당 초선의원이 떠올랐다. 난 국회의장처럼 중간 자리에 앉아서 양쪽을 번갈아 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사라진 낭만, 사라진 사랑, 사라진 배려, 사라진 위엄. 유일하게 남은 미련과 회한.'


 난 두 사람이 벌이는 싸움을 지켜보다가 부부의 사연을 글로 써보기를 권했다. 연이어 얼마 전에 본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영화 속에서는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였는데, 그들의 모습은 신구선생님이 4주 후에 보자고 약속하는 <사랑과 전쟁>를 떠올리게 했다. 난 그들의 다툼을 지켜보다가 양 손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사각형을 만들어서 보니 두 사람의 쌈질은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밌어 보였다. 대사가 찰지고 시츄에이션이 상당했다. 준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이 말했다. '야 남사스럽게 그걸 왜 남한테 얘기를 해. 우리 맨날 싸운다고 광고할 일 있냐. 창피한 줄 모르고.' 수정이는 준규와 달리 관심을 보였다. '왜 난 좋을 것 같은데. 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 난 내심 두 사람이 글로 쓴 걸 얻어내서 내 새 책 원고로 쓰면 어떨까 상상했다. 기획서 초안이 술술 나왔다. 막장 부부생활을 다룬 생활밀착형 에세이. 어느 눈 밝은 출판사가 내 기획 의도를 보고 책을 내줄지도 모른다. 난 두 사람의 거짓말 경연을 내 잇속으로 삼으려 했다. '소설 제목은 속이고 속이는 결혼 이야기. 표지는 같은 지하철에 타서 반대편을 보고 선 두 남녀. 상상만 해도 매우 좋다.' 부제는 대판 싸우다가도 같은 침대에서 살을 비비고 사는 부부의 세계. 내 말을 듣다 못 한 준규는 콜라를 마저 비우고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이혼 빼고는 모든 걸 할 기세로 다투다가도, 자정쯤에 4호선을 타고 같은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최근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준규랑 통화를 했는데 두 사람이 진짜 글을 쓰기 시작했다나. 내 제안이 처음에는 얼토당토않게 여겨졌지만, 계속 듣다 보니까 책으로 내면 확실히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나. 녀석은 아마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이 깔리는 걸 기대하는 눈치였다. '세속적인 새끼. 잠잠했던 작가의 야망이 깨어나나 보지?' '야 너처럼 브런치에 올려서 연재하면 출판사가 공짜로 책도 내줄 거 아니냐.' '그게 그렇게 쉬워 보이냐?' 정확히는 수정이가 먼저 글을 쓰기 시작했다나. 안 되는 임신일랑 집어치우고 글을 수태한다나. 브런치 작가 신청에 떨어지면 가명으로 블로그라도 만들어서 끌 거란다. 준규는 내심 경쟁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야 말발로는 내가 못 이기잖아. 근데 팩트체크로 들어가면 확실히 내가 더 낫지. 고작 앙케트 조사원이 사실검증과 탐사보도에서 나를 따라올 순 없지. 모로 보나 글발도 내가 한 수 위고.' '마누라 이겨 먹어서 좋겠다. 병신아.' 준규는 요즘 밤마다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는 아내의 키보드 소리에 잠을 설친단다. 타타타타타타타타. 거짓말과 거짓말을 향한 비난이 맞부딪히는 소리다. 제 억울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손아귀는 단단할 수밖에 없다. 빅뱅의 거짓말과 지오디의 거짓말처럼 누구 거짓말이 더 큰지는 쉽게 판가름 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준규는 싫지 않은 눈치다. 수정이가 되살아나는 게 느껴진다나. 어쩌면 내 기대대로 둘의 결혼생활은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쌈질이 근사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면 어떤 의미가 생길지 모른다. 어쩌면 두 사람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 후기에 날 언급할지도 모르지. '제가 아는 무명작가가 글로 쓰라고 해서 글로 써보기 시작했어요. 지 글이나 잘 쓸 것이지 오지랖도 넓어요. 그래도 덕분에 이 책이 나왔어요.' 아마 두 사람은 같은 색 니트를 맞춰 입고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뽀송뽀송한 톤으로 사진을 찍어 작가 소개란에 띄워놓겠지. 부디 그러기를. 글이 당신을 구해내기를.

작가의 이전글 불을 보듯 뻔한 불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