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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20. 2023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명약

 마음은 이미 창밖에 있다. 몸은 사무실에 앉아있다. 눈동자와 손가락만 분주히 움직인다. 꼰 다리가 흔들거리고 묘하게 마음이 일렁거린다. 어제는 눈이 내렸는데 오늘은 꽤 푹하다. 코트는 괜히 입고 와서 번거로워졌다. 이제 곧 퇴근이다. 여느 때와 다를 거 없는 평일 저녁이고, 수도 없이 퇴근을 해왔지만, 여전히 해방감과 후련함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다. YTN에서는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이제는 건강 관리에 여념이 없다는 어느 노신사의 인터뷰가 나왔다. 사무실이라 소리는 묵음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자막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보랏빛 조명이 강렬한 스튜디오에서 두꺼운 화장을 한 그는 몇 년 전 평생 몸담아온 병원을 그만두고 꾸준히 하던 방송도 정리하던 시점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지방 소도시 요양원에서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사정도 덧붙였다. 들리진 않았지만 익숙한 BGM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난 모르는 영감님이었지만 아나운서는 회사 대표직을 내려놓고 사라졌다가 몇 년 만에 나타나서 활동을 재개한 그의 사연을 다들 궁금해한다며 이유를 물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어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저는 오랜 지병이 악화하면서 암에 걸렸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회복했고요.' 그는 두문불출하다가 재작년 이맘때쯤부터 건강이 나아졌단다. 건강을 되찾자 다시 소중한 삶이 찾아왔다. 지루한 요양원 생활과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식단을 버텨낸 덕이었다. 관련 영상으로 토마토와 닭가슴살, 현미밥과 블랙커피가 보였다.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뭐야 나랑 비슷하잖아.' 난 요즘같이 헬스장을 다니고 식단을 하는 옆자리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딱 우리가 하는 식단이네요.' 녀석은 자기가 가져온 도시락 통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도 장수하겠다 야.'


 그는 아나운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건강을 회복하면서 스무 살 나이 차가 나는 부인과 만나 잘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뿔테 안경을 낀 인터뷰어는 장난스럽게 그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고, 그는 마치 대본에라도 써놓은 듯 또박또박 얘기했다. "중량 스쿼트입니다." 그는 매일 헬스장에 가서 스쿼트를 하고 식단을 단백질 위주로 바꾸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마치 독실한 신자의 열정적인 간증처럼 매일 스쿼트를 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했다. 관련 영상으로 어린 아내와 손대고 마주 본 채 허리를 굽히며 팔을 뻗는 스트레칭을 하며 껄껄껄 웃는 영상이 나왔다. 이어 그는 복압 벨트를 차고 SBD 로고가 적힌 흰 양말을 신고 몸을 풀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아내를 어깨 위에 무동을 태우고는 스쿼트를 시작했다. 족히 65킬로는 넘어 보이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 감탄할만한 근력이었다. 아내는 아마도 촬영 감독이 시켰을 게 분명한 기쁨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노인의 대퇴부를 비췄다. 그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제 나이에 이 정도 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행복한 그 표정은 앞으로 백 살은 거뜬하게 살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 어떤 헬스 트레이너의 호통보다 더 많은 자를 체육관으로 끌어올 수 있을 만한 호소력이었다. 난 이상하게 죽어가던 소에게 낙지를 먹이고 되살리는 어떤 영화가 생각났다. 낙지를 먹고 극적으로 벌떡 일어선 소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노인의 몸은 낙지를 먹은 소처럼 강인해 보였다. 그가 어떻게 그 흔한 건강관리 회사를 차려서 그 흔한 강연과 교육 영상 콘텐츠로 연 매출 80억을 올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잠시 공상에 빠져 바벨이 끼워진 스미스머신 앞에서 기도하는 어느 목자의 경건한 의식을 떠올렸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목자는 헬스장 앞에서 할렐루야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치는 어린양을 향해 두 손을 번쩍 쳐들어 내지르는 고함이 귀에 선연히 들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걸어 다니는 송장 시절. 음메 하며 울지는 않았지만 소처럼 과묵하게 일만 하던 시절. 막 취업하고 삶의 성취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느낌. 그때 그 무렵 나는 내가 진정으로 뭘 하고 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삶이 무료하고 시무룩했다. 한편으로는 평생 내가 원했던 일상이 지금이 아니냐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어떻게 이룬 평화로운 일상인데 배부른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글도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써도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보이질 않았다. 열심히 써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글을 쓴다는 게 어불성설로 느껴졌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난 방에 우두커니 서서 어질러진 이불과 널브러진 빨랫감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책을 보면서 그게 지금 내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건 마치 콘돔, 담뱃값, 속옷 등을 인위적으로 어질러 놓은 영국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침대 작품처럼 삶을 방치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어디로든 흘러가겠거니 하며 두 발자국 정도 뒤에 선 방조자의 마음이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몸을 부딪쳐대며 이렇게 끌려다니다가는 그냥 평범한 아무개로 사는 게 두려웠다. 여차저차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 신나서 떠드는데도 나 혼자 텅 빈 방에 몰린 기분이었다. 아마 지금 내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면 전문가에게 상담받아보라고 할 테지만, 난 이런 공허함을 고통이 아닌 분수에 넘치는 권태라고 단정했다. 나 스스로 징징거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게 가장 편했다. 처음 내 문제가 심각하고 느낀 건 내가 쓴 글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 때였다. 그건 자신감이 떨어졌다거나 글솜씨가 모자라니 더 연습해야 한다는 자의식이 아니었다. 글을 쓸 때마다 모든 문장이 피상적으로 보였다. 주변 친구는 내가 블로그 구독자도 많다면서 추켜세웠지만 좀처럼 믿음이 가질 않았다. 이런 글을 쓰다가는 결국 아무런 성취도 없이 그만두리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우울감과 자기혐오가 뒤섞여서 회사 생활을 하니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을까.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관계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삶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삶 전체에 만족도가 떨어지니 외모 자신감도 하락했다. 꾸밈에 도통 관심이 없이 살다가 자존감이 취약해지니 외모가 신경 쓰였다. 난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서 외출을 꺼렸다.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도 못생겨 보일까 봐 불안했다. 정확하게는 평범한 ''남자1''로 살아가기가 싫었다. 내 감정과 성격이 평이하게 여겨졌고 볼품없는 육체의 너저분함이 옷 밖으로 삐져나올까 봐 두려웠다. 이러니 늘 외출 전에 몸단장하다가 한 시간을 훌쩍 허비했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고 빡빡 깎은 머리에 손댈 데가 어디 있다고 뭉쳤다 헝클어뜨리기를 반복하며 꼴값을 떨었다. 나는 옷을 바꿔 입고 신발을 바꿔 신으며 우울해졌다. 난생처음으로 옷이 없다는 흔한 말의 참뜻을 실감했다. 옷은 옷장에 가득 걸려 있지만, 그건 입고 나갈 수 없는 천 쪼가리였다. 입고 나갈 수는 있겠지만, 입고 나갔다가는 그날 하루를 망칠 의복이었다. 옷 따위로 하루를 망치는 내 모습이 싫었다. 거울 속 나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인상이 칙칙했다. 그때 난 왜 그랬는지 내가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뒤늦은 사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춘기를 제때 제대로 관통하지 못해서 뒤늦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내가 특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특별할 도량이 없으니 늘 조급하고 갈급했다. 지금은 나이 탓인지 특별함과 담을 쌓고도 잘 살지만, 스무 살 초입의 나는 젊음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삶에 기대가 컸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데 뭐라도 보답해야 한다고 용을 쓰는 꼴이었다.


 이렇게 외출에 힘겨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포멀한 흰 셔츠에 진 청바지를 입고 신경을 안 쓴 척하지만, 꽤 힘을 준 머리를 하고 나갔다. 가방에 소설책과 노트북을 챙겨 넣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널 본다고 그래. 신경 쓸 거 없어. 누가 뭐라든 다 개소리야.'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았겠지만, 버스 정류장에 서면 다시 자신감이 하락했다. 정류장 뒤편 돈가스집 까만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절망에 빠졌다. 광고 전단에서 환히 웃는 젊은 남자 모델이 아비꼬 정식을 먹으면서 날 놀려대고 있었다. 153번에 올라타면 여의도로 가는 단정한 셔츠 차림의 텍타이 부대 앞에서 주눅이 들어 힐끔거렸다. 그저 편하기만 한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운동복에 씻지도 않고 나가서도 신경 하나 안 쓰였는데 도무지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태가 심해졌을 땐 친구들이 오랜만에 술자리로 불러내도 거절 놓기 바빴다. 나는 몇 시간을 망설이다가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내뺐다. 걔들 인스타그램에서 본 화려한 지인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 가꾸는 법을 배운 것처럼 능숙했다. 한 마디로 조기 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녀석들은 기가 막히게 트렌드에 민감했고 늘 바뀌어 있었다. 키도 작고 왜소한 나는 녀석들이 교만한 태도로 나를 관찰하는 게 싫었다. 밤이 늦어 자리가 끝나고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집으로 가면, 녀석들이 포장마차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순두부찌개에 소주를 하면서 잔혹하리만치 집요하게 내 외모를 까대진 않을까 불안했다. 그때 난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는데 정말 없을까 봐 조바심을 냈고, 누가 관심이라도 보이면 그게 날 놀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당시 나는 이런저런 패션 잡지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스타일을 공부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옷을 잘 입는 것과는 하등 무관한 <패션의 탄생>이라는 책이었다. 20세기부터 패션 역사를 정리한 책인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탄생과 변천 과정을 담고 있었다. 난 그걸 보면서 스타일의 기본부터 공부하려고 했지만 그건 스타일이 아닌 패션 인문학 교양과목에 불과했다. 평생 유니클로 기본 템으로 살아온 자에겐 스타일이랄 게 없었다. 과거에는 옷 사러 다닌다고 하는 애들이 한심해 보였다. 밀레오레니 두타니 하면서 돈 쓰고 다니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동대문은 내게 지짐이와 두부찌개를 먹는 곳이었지 옷을 사는 동네는 아니었다. 유럽 여행을 할 때도 동행한 친구가 나라마다 싸고 유명한 브랜드를 찾아서 그 소중한 여행 시간을 허비하는 게 못나 보였다. 그 시간에 유명한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런던에서 버버리 아웃렛에 간다고 아예 하루를 뺀 친구와 더는 일정을 함께하지 않았다. 난 그냥 자라나 유니클로에 가서 가장 싸고 평범한 옷을 골라 나오는 사람이었으니까. '손님 뭘 찾으세요?' '날이 춥네요. 치수 95로 주세요.' '네? 어떤 옷이요?' '그냥 싸고 잘 팔리는 걸로요.' 그게 다였다. 근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자 옷 쇼핑도 능력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게 헬스를 처음 권유한 직장 선배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대뜸 사내 메신저 단체 쪽지로 권상우 몸매를 만들고 싶은 자는 퇴근 후에 남으라고 올렸다. 보니까 후배들에게만 보낸 메시지 같았다. 난 그 무례하고 무뚝뚝한 말투가 싫어서 피했다. 운동이 싫다기보다는 배우 권상우를 별로 안 좋아했다. 천국의 계단을 한창 볼 때라... 한 마디로 나와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어이없게도 사무실에서 잔업을 하다가 그에게 붙들려서 처음 헬스장에 갔다. 평소 그의 무쇠와 같은 팔과 터질듯한 셔츠를 눈여겨 살폈지만 그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저런 파우더 근육을 어디 쓰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권상우보다는 마동석처럼 보였고, 여자가 좋아하기보다는 수군대는 남자들이 몰려와서 운동법을 물어볼 만한 두께였다. 그리고 업무를 고압적인 스타일로 하며, 평소에 과묵하기로 유명해서 나와 같은 수다쟁이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헬스장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옆구리가 잔뜩 파인 나시를 입고 나선 그는 그날부터 헬스가 얼마나 숭고한 운동인지 보여줬다. 목소리가 컸고 긍정을 씹어 먹는 말투로 변모했다. 그는 모든 힘을 죽이고 살다가 헬스장만 오면 살아나는 작자였다. 이른바 요즘 말로 좋은 뜻은 아니지만 '헬창'이었다. 말 그대로 그는 헬스에 미쳐있었다. 난 그와 어울리면서 도무지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익혔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면 그가 좋아하는 얘기를 해라. 그가 뭐로 시간을 보내며 평소에 뭘 생각하고 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늘 운동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점심때 짬뽕을 먹을 때도 편의점에서 닭가슴살을 사 와서 넣어 먹었다. 왜 그리 유난을 떠냐는 동료의 놀림도 기분 좋게 받아넘겼다. 미소를 지으면서 따봉을 하는 그의 팔뚝이 모든 유난을 머금고 있었다. 난 그와 헬스 얘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지금도 가끔 연락할 만큼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선배는 최근에도 내가 여전히 운동에 푹 빠져서 사는 바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얘기한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와 만난 그날부터 절로 잠이 오고 절로 정신이 번쩍 들며 절로 밥맛이 도는 데다가 절로 살이 빠지면서 절로 몸이 두껍고 넓어지기까지 하는 그 세계로 진입했다. 텔레비전 속 노신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알게 된 중량 운동의 위대함을 난 선배 덕에 갓 스무 살 넘어 알아버렸다. 선배는 내가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낼 때마다 고함치는 걸 좋아했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면서 "민진아 지금 너무 좋아. 등에 완전히 먹고 있어. 자 세 개만 더해보자. 오 완전 터프해!" 그는 이런 식으로 오그라드는 추임새로 내 운동능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혀가 짧아서 '민진아'를 항상 '밍깅아'라고 외쳐댔다. '좋아'를 '됴아'라고 했다. 그래도 열정 하나만큼은 만수르였다. 그러다가 내가 간혹 운동에 빠지기라도 하면 혹독할 만치 비난했다. 어느 날 몸이 좀 안 좋아서 집으로 가는데 지하철에서 카톡을 열었더니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긴 카톡이 와 있었다. 여자친구가 날 찰 때도 이렇게 긴 카톡은 아니었다. 요지는 이거였다. 뭐든지 정신력 싸움인데, 너는 나약하게 굴고 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지만, 고비를 넘기면 분명히 아파도 운동을 해야 다 괜찮아지는 시기가 올 거다. 그러니 빼먹지 말라는 얘기다. 위인전이나 인생극장에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대사였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이처럼 때론 무섭고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그를 계속 따라다닌 건 확실히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죽을 듯이 힘들고 욕을 먹으면서도 몸무게가 늘고 등이 탄탄해졌다. 남들은 돈 주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는다는데 도무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코칭은 물로 단백질 파우더까지 나눠주고 가끔가다 저녁까지 사주면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던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갑자기 왜 선배 생각이 났을까. 저녁 여섯 시는 불안한 시간이다. 일에 녹초가 되어 생각은 많아지고 판단이 잘 안 서는 시간이다. 이제 헬스장에 가서 있는 힘껏 들어 올려야 하는데 정신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멍을 때리면서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것을 생각해 내고, 도무지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일을 마치 소개팅하듯이 애쓰며 몰두한다. 무슨 조화인지 언제였는지도 누구의 얘기인지도 불분명한 얘기가 불쑥 떠올랐다. 이건 분명히 내가 운동을 처음 할 때의 사연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불쑥 떠오른 상상에 불과하다. 유니폼을 벗고 늘 입은 흰색 라코스테 피케 셔츠를 입고 회사 밖을 나섰다. 헬스장으로 갈 시간이다. 월급은 안주지만 내겐 재출근 시간이다.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시간이다. 관계나 금전 부분에서 상당 부분을 포기해도 꼭 내야만 하는 시간이다. 삶이 운동과 밀접해지면서 모든 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났다가 헤어졌고 누군가와 가까웠다가 멀어졌으며, 소속도 이리 갔다 저리 가고 어느 모임에 몸 담았다가 훌훌 털고 나왔지만 운동만큼은 고스란했다. 출장을 가서도 헬스장에서 회복했고, 기분이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장님 일일권 하나 주세요. 목욕탕은 빼고요.' 이제 헬스장에서 그 과묵하던 선배가 왜 그렇게 벙벙 뛰었는지 잘 아는 바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으나 인터뷰를 하는 노신사가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외모 콤플렉스도 여전하지만 이제 운동으로 그 기분을 감쇠시킬 줄 안다. 여전히 옷은 딱 정해진 것만 사는 '옷못알' 혹은 패션 테러리스트지만 뭘 입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맵시가 날 거라고 믿으며 산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다 지당한 말씀이다. 운동은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다. 운동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 좀처럼 보기 드물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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