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미유키 저
2008년 일본 번화가 중 하나인 아키하바라 도로에 트럭 한 대가 날뛰듯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고꾸라진다. 주말을 맞아 차 없는 거리 행사 중이었기에 이 도로엔 수많은 인파가 관광과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트럭은 군중 속에 나타난 맹수처럼 맹렬하게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몇 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에야 멈춰 선 트럭은 마치 괴물처럼 포효한 후에야 문이 열렸다. 트럭이 토해낸 것은 한 평범한 남성이었다. 이 남자는 트럭에서 내린 후에도 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난도질한다. 범인의 이름은 가토 도모히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 용역회사에서 단순 노무를 하다가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 하루에 천 건도 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억울함을 표했다고 한다. 처지를 비관하던 그의 글은 어느새 공격적인 어조를 띄기 시작했고, 사건 당일에는 자신의 범행을 예고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도 묻지 마 범죄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논픽션 소설에서 이를 다루었고,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소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건의 단면을 알리게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이름 없는 독>이 바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편의점의 종이팩 음료에 청산가리가 주입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재벌집 사위인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 사건을 알게 된 후 개별 수사를 진행한다. 소설 속 사건의 범인은 아키하바라 사건과 마찬가지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청년이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범죄를 분석하는 칼럼을 작성하듯 이 소설을 써 내려간다. 결국 그녀가 진단한 범죄의 원인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독'이라는 모호한 말이다. 인간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면 스멀스멀 피어올라오는 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소외계층에서 피어나는 이름 없는 인간의 독이 비극을 만들어내는 씨앗이 된다. 이 '독'이라는 단어엔 당연하게도 미미 여사가 가진 사회의 구조(시스템)를 대하는 방식이 스며있다. 그건 시스템이 낳은 기형을 마치 한 인간의 태생에서 찾으려는 언론과 대중의 게으른 태도를 향한 비판이다. "저 새끼는 죽어 마땅한 새끼야, 사형시켜야 해"라는 쉽고 편한 비판 안에 녹아있는 이 사회가 한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은 과정을 미미 여사는 소설을 통해 파헤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름 없는 독>을 읽고 나서 내심 실망했던 이유는 작가의 태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이유>, <화차>, <모방범>에서 보여주었던 인류학 보고서와 같은 세밀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인간이란 동물이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 '묻지마 범죄'를 사용하는 안이함이 그녀 답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녀 자신이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서 특정한 이유를 짚어내고 싶었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소설 <이름 없는 독>과 비슷한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는 텍스트가 영화 <플라이트 플랜>이다. 항공기 테러를 다룬 영화 <플라이트 플랜>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남편이 죽어 괴로움을 겪던 한 여자가 어느 날 딸과 비행기를 타게 된다. 딸과 친정이 있는 뉴욕에서 새로운 인생을 계획한 그녀는 피곤했던 일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깜빡 비행기에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깬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딸에 당황한다. 비행기라는 밀실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그녀는 실성해 미친 듯이 기내를 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를 제외한 다른 승객 및 승무원들은 그녀를 믿지 않는다. 그저 남편과 딸이 죽어 정신적 충격으로 비행기에 타지도 않은 딸을 찾는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
플라이트 플랜이 허점이 많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성취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에서 딸이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녀와 정체를 숨긴 범인 그리고 지켜보는 관객뿐이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타인은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시선을 보낸다. 딸의 존재와 상관없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의 시선이 이 영화가 가진 심리적 고통 그 자체다. 내 생각에 미미 여사의 <이름 없는 독>이 놓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주는 폭력은 '묻지마 살인'의 핵심적인 정서다. 무관심에서 오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대상 없는 살인을 부른다. <이름 없는 독>의 주인공은 재벌집 사위인 데다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지극히 관대한 시선을 가진 성인군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의 특징들을 짚어낼 수 있는 디테일을 작가가 가지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성정이 착하고 바르기로 유명한 미미 여사의 개인적 특성에 기인할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또한, 섣부르게 사건을 진단하려 들고, 이후 지극히 낙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덮으려 하는 그녀의 인류애적 태도 역시 묻지마 범죄의 경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플라이트 플랜>은 미국인들이 가진 911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와 현대인들의 냉소적인 무관심이라는 문제의식에 집중해 일정 부분의 성취를 이뤄낸다. 결국 딸의 존재와 상관없이 기내라는 밀실에서 피어나는 완전한 개인주의가 근원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영화엔 이런 장면도 있다.
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낙담하던 엄마 조디 포스터의 눈에 잡힌 용의자는 다름 아닌 중동 사람들이다. 그녀가 중동 승객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영화 속 무관심하던 승객과 승무원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던 911 테러와 중동인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하나의 복선으로 관객과의 게임을 흥미롭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그녀의 고통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들자 반응하는 모습들이 흥미롭다. 나와 상관조차 없던 타인의 고통이 이제 내 안의 고통으로 되살아난다. 그건 이미지가 가진 힘이자, 언론과 대중이 세상의 거짓말에 휘둘리는 현상에 관한 강력한 트라우마로 자리한다.
몇 년 전 배우 정유미가 열연했던 드라마 <직장의 신>을 기억하는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취업을 위해 면접장에서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처절하게 추며 취준생을 실감 나게 연기했던 정유미는 직장의 신에서도 비정규직 취업자로 그 이상의 처절함을 연기한다. 같은 회사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지는 명백한 계급과 경제력 차이 그리고 사회적 박탈감 등은 이 드라마를 맘 놓고 즐길 수 없게 만든다. 정유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사회적 약자가 이 사회에서 굴림당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의 범행 동기가 추측될만한 자극적인 고통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적 부적응자,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청년, 고시원의 학생들. 결국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결국 엄연한 패배자임이 명백해진 인생에 대한 비관이다. 회사 내의 동료에게 스스로 비굴함을 자인해야 하는 이런 구조속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불특정 대상에게 풀어낸다. 타인이 나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어떤 공포일까. 그들은 왜 칼을 치켜들고 어떤 마음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일까. 관심받고픈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조리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독을 품고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