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의 한토막이다. 1955년 2월 북한은 6·25에 따른 북한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재일교포의 귀환 추진과 귀환 시 이들의 생활을 책임질 것을 대내외에 공식 천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은 잘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은 범죄율이 높고, 생활이 어려워 정부지원이 필요하므로 관련 경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재일교포를 북한에 넘기기로 합의한다. 북한과 일본은 북송사업을 지상낙원으로의 귀환이라고 홍보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짓말로 재일교포들을 호도했다. 9만이 넘는 조총련 재일교포들은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낙원 행 수송선에 탑승했지만, 알려진 대로 그들의 생활은 처참한 인생 그 자체였다. 정치적 이념과 조국이라는 거대한 짐을 들고서 일본을 떠난 가족들은 현재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가족의 나라>는 뇌종양을 치료하기 25년 만에 가족의 나라(일본)로 돌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양영희 감독 본인이 가진 슬픈 가족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념과 정치에 대한 문제에 고개를 숙인다. 애써 모른척하며 읊조리는 태도를 취한다. 그 대신 양영희 감독은 가족이 처한 현실을 덤덤하게 그림으로 해서 이 비극이 가진 정체를 지켜보고자 한다. <가족의 나라>에는 종종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그간 수많은 교육과 영상물을 통해 본 분단의 비극을 또 봐야 하는 고단함이 있다. 가족들은 오랜만의 상봉에도 그저 괜찮냐는 말만 할 뿐 살가운 대화 몇 마디 나누지 않는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비극이 아니기 때문에 원망할 대상도 없고, 감정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북으로 가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감정을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 없는 가족은 그저 조금 아래에 눈길을 둔다. 유독 테이블에서 마주보는 씬이 자주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밥을 먹거나, 창을 보며 하늘에 시선을 보낸다. 남자를 감시하는 북한 요원(양익준 분)의 말대로 그저 그렇게 자신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거기에 어떤 말을 보탠단 말인가. 그저 잘 치료받고, 맛있게 먹고 다시 돌아가는 길 뿐이다. 이 영화가 가진 한 발짝 물러선 시선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이 영화 내내 유지되는 기분이다.
양영희 감독은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억제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고, 그런 태도를 가진 감독의 자의식에 속 깊은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자의식이 가득 찬 영화에 거리감을 둔다는 것은 연출자로서 얼마나 숭고한 가치인가. 양 감독이 말하는 가족의 나라는 재일교포의 정체성처럼 규정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한 나라가 가진 아픔의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는지 기술할 수 없기에 말 없는 정적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양영희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 영화에서 악역을 제거한다. 유력한 악역 후보인 양익준이 연기한 북 파견 감시관조차도 양영희 감독은 자식을 가진 한 남자로 그려내 밀쳐내지 않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시대적 비극 앞에 무력한 가족의 정서일 것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 앞에서 저항할 수도 없는 개인의 가족사를 펼쳐 놓음으로 해서 복수의 쾌감이나 분노의 악다구니가 아닌, 객관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건 아마도 아직도 북한을 조국이라 믿는 아버지를 가진 딸로서, 오빠 셋이 북한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생으로서, 여전히 아들들의 행복을 빌며 슬픔을 억누르는 어미를 바라보는 한 여자로서의 태도일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그래서 말이 없던 성호가 동생 리애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을 때에 있다. 사고가 정지된 나라로 돌아가는 본인의 인생은 이제 된 것이다. 너는 납득이 되는 인생을 살아라. 큰 여행 가방을 들고 여기저기 여행을 가라. 너는 그렇게 살아라. 원망이 아닌 진솔한 충고에 많이 울었다.
양영희 감독은 앞서 연출한 같은 두 편의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 , <굿바이 평양>을 통해 개인의 아픈 가족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객관적일 수 없는 가족사에 정서적으로 멀어지려는 노력은 처절함으로 귀결된다. 그중에서도 <가족의 나라>가 가장 정적이고 차갑다. 아마도 그녀가 이 극영화를 연출하면서 다큐멘터리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훈련된 배우와 정제된 연출을 통해 카메라는 끈기 있는 인내심으로 감독 자신을 대상화한다. 내심 그녀가 앞에 산적한 슬픔에 분노하고, 욕하고, 울며 원망하길 바랐다. 조국과 이념 같은 개소리는 모두 집어치우고, 대상 없는 그에게 안겨 펑펑 울었으면 얼마나 시원했을까. 하지만 그녀는 대신 다큐라는 장르에 갇혀있던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조총련의 입장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가령, 늙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표하는 낯선 아들의 속마음, 용서할 수 없다고 소리치는 동생 리애의 표정과 아들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자책하는 마음과 조국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아비의 마음이 그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