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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04. 2018

갈지자로 비틀거리는

영화 무뢰한 The Shameless, 2014

건들거리는 걸음이 영 수상쩍다. 영화 <무뢰한>은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한쪽에 치우쳤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걷는다. 골목길을 따라 어딘가로 향하는 이 남자는 형사로 보인다. 그의 발걸음은 피로감과 함께 세상에 발을 딛는 걸 주저하는 자 특유의 가벼움이 공존한다. 끝만 살짝 대고는 까치발로 쉬쉬 미끄러져 간다.

나는 무뢰한을 세 번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날 이 영화로 이끌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육체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며 보았다. 첫 장면을 볼 때 늘 무뢰한이라 칭하는 그 남자의 걸음걸이를 떠올린다.


살인자를 추적하기 위해 애인의 집 앞에 차를 세운 형사는 길고 긴 잠복에 대비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산다. 차 안에서 어느 중년 여배우의 이름을 딴 도시락을 무던히 씹는다. 그는 도청기로 그녀가 잠든 소리를 엿듣는다. 어느 순간 되새김질을 멈춘다. 육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한 번 숨을 크게 쉬고는 딱딱한 밥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무뢰한 The Shameless, 2014 (오승욱 감독, 우측)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조직폭력배인 준길은 경찰들이 쫓는 살인 용의자다. 형사 재곤은 준길을 추적하기 위해 그의 애인인 혜경에게 접근한다. 혜경은 술집에서 일하는 마담이다. 그녀는 한 때 잘 나갔지만 애인(준길)에게 배신당하고, 돈까지 모두 탕진한 체 지방 소도시의 작은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치정, 복수, 배신이 난무할 것 같은 이 설정 속에서 인물들은 지극히 조용하다. 영화 속 형사인 재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헤경은 세상사 굴곡진 자의 축 처진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냉소와 염세로 숨쉬기 조차 힘든 이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인간들의 육체는 선명한 냄새를 풍긴다.


영화는 유독 차 안이나 창문 안쪽에서 마치 관객과 같이 훔쳐보는 장면들이 잦다. 재곤이 혜경의 모습을 훔쳐보고, 혜경은 자신 주위를 부유하는 재곤을 의식한다. 인물의 움직임과 육체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영화의 마법이다. 난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언어가 제 기능이 도달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순간, 영화는 걸음걸이와 제스처의 분위기로 모든 걸 다한다. 끈끈한 육체 간의 움직임, 감정의 보폭이 출렁이는 말투. 살을 도려내고, 찌르고 짓이기면서 나아간다. 이 작품엔 술자리 장면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신이 부지런히 걷는 사내들과 놓치지 않고 그를 응시하며 살을 드러내는 여성을 보는 즐거움이다.

준길을 잡기 위해 혜경의 집으로 진입한 재곤은 벌거벗은 두 사람을 마주한다. 그리고 맨몸으로 일어선 준길은 자신의 여자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재곤은 수컷임을 드러내는 준길의 행동에 눈을 찡긋한다. 이어 재곤은 준길을 밖으로 이끈다. 그리고 시작된 격투, 몸과 몸이 부딪치는 두 남자는 방어 대신 서로 한 대를 더 때림으로써 파열한다. 피가 고이고, 육체는 부서질 듯 으깨진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이 격투는 마치 동물의 사냥처럼 비린내가 난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의 낡은 아파트 단지의 눅눅한 공기가 손에 잡힐 듯 끈덕지다. 말이 적은 영화 <무뢰한>에서 인상적인 순간이 만들어내는 느낌들은 오로지 육체 간의 충돌에서 벌어진다. 작부와 살인자의 관계 역시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몸의 관계다. 형사가 여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지점 역시, 그녀의 고단한 발걸음과 뒷모습 그리고 본능처럼 알아 첸 땅을 딛지 못하는 자의 발걸음까지. 유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놓쳐버릴 징후들 뿐이다.

무뢰한The Shameless, 2014

니체는 말했다, 어떠한 심오한 철학보다 더 큰 지혜가 육체에 담겨 있다고.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 뿐이라고. 매일 한 시간 체육관에 가서 학학 소리를 내며 아령을 들고, 철봉에 매달려 애처로운 몸부림을 하는 이유는 내 움직임의 유한함을 보고 싶어서다.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아 물 한잔 마시고, 주변 공기를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 것. 이 시간이 없다면 하루는 부유하는 물처럼 썩은 내만 가득한 곳이 된다. 아득한 형광등 불빛과 샤워를 끝내고, 허겁지겁 밖 공기를 찾아 한 숨 들이마실 저녁 공기를 상상하는 것. 탈진한 상태를 즐기면서, 나 자신의 몸은 물론 상대의 몸과도 완벽하게 호응하는 그 순간이 있다. 난 무한대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 있는 육체의 엄연한 존재감에 괜스레 몸을 떤다.

난 무뢰한을 보며 그런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현실적 정체에 헷갈려하며 서로가 이끄는 몸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순간들을 보며 눈을 꼭 감았다. 그들이 결국 파국이라는 종결로 다가갈 때 왜 서로를 붙잡지 않는지 이해한다. 육체 간의 느낌은 언어로 형언하기 어렵고, 그 느낌을 말하는 순간 소멸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라면, 말로 뭉개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안타까움에 난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애틋함을 글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하루키의 단편 중 내가 사랑하는 작품으로 <침묵>(렉싱턴의 유령 중 한 작품)을 자주 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렉싱턴의 유령>

<침묵>엔 대화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대화를 하던 두 사람 중 한 남자는 커피를 마시며 어색한 순간이 오자 이런 질문을 한다. 살면서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있냐고. 무심히 한 이 질문에 상대는 곤란한 듯 몸을 뒤척이다 결국 털어놓는다. 질문에 답하는 남자는 권투를 20년이나 배웠는데, 상대를 때린 건 그 전에 단 한 번 뿐이었다고 말한다. 권투를 20년이나 했지만 배우는 도중 누군가에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는 이 사건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양이다. 치욕으로 남은 기억인 것이다.

이 사건은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두 사람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때린 남자는 내향적이며 독서도 많이 하는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말은 적었지만 매사에 자신만만했다. 특히 그는 육체를 단련하고 그것에서 오는 기쁨에 심취해있다. 하지만 그가 때린 남자는 외향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같은 반에서 가장 공부도 잘했으며, 융통성이 있고 활발해 친구들과 선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바야흐로 현대사회는 외향적인 남자를 선호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는 리더라 부를 수 있는 자였다.(적어도 맞을만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 하지만 생각이 많았던 남자는 속으로 그를 질투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존경해 마지않는 그의 외향적 장점을 그는 비열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유는 그저 느낌 때문이다. 그는 이 남자에게서 본능적으로 악한 기운을 느꼈다. 그의 몸짓과 말투에서 풍기는 냄새가 이해타산 적이고 스스로 자부심이 강한 것을 오만하게 바라보았다.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그 증오는 결국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이것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이성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은 적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행해 공유한 느낌은 불가해하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소설에서도 적확하게 느낌을 짚어내지 못한다. 그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는 육체의 끌림과 파편에 관한 것이다. 세상사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해하다. 형이상학적인 느낌을 스치듯 서술하는 소설의 분위기 역시 묘하다. 마치 도넛처럼 중심부에 둥근 여백을 남긴 체 주변부를 배회한다.


쳇 베이커의 연주를 종종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공연 실황에서 보이는 쳇 베이커의 모습은 마치 말기 폐병 환자와 같다. 축 처진 몸으로 트럼펫을 불다가 노래를 부를 땐 모든 힘이 소진된 듯 그을린 듯한 목소리가 나온다. 난 육체가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것을 목격한다. 이 노쇠한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육체의 아우라다. 무너져내린 것 같은 시들어버린 몸은 연주하는 곡 외에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쳇 베이커는 평생 스스로의 몸을 훼손하며 살았다. 관객들은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남자의 악행에 경악했다. 난 그럴 때마다 예술에 깃든 육체의 존재감을 상기한다. 말로 가닿지 못하는 곳에 깃든 매혹을 글로 적어본다. 꼴이 이래도 어쩔 수 없다, 그저 육체에 대한 애틋함을 평생 고백하며 사는 수밖에.


https://youtu.be/UOEIQKczRPY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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