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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02. 2018

좋아하면 다 그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아침 7시 알람이 울린다.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내 몸은 기계처럼 출근 준비를 마칠 것이다. 10년을 넘게 해온 일이 아닌가.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난 알람을 세 번씩 끄고 다시 잠든다. 눈꺼풀이 무겁고 사지는 이불속으로 녹아든다. 굳어버린 몸뚱이는 다음 알람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대체 어젯밤엔 왜 그리 늦게 잤는지.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 돼서야 가까스로 눈을 떴다. 더듬더듬 알람을 끄고, 어제 듣던 팟 캐스트를 켠다. 언제부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벗 삼아 여분의 시간을 지탱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도 이동진은 친구 김중혁과 쉴 새 없이 떠든다. 이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뭐가 좋은지 난 무한반복을 반긴다. 그가 추천한 책을 읽고, 그가 쓴 글들을 빠짐없이 찾아 구입한다.

이동진 독서법, 표지가 맘에 들어

최근에는 독서모임에 처음으로 가입했다. 혼자 읽고 블로그에 몇 줄 적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독서라는 행위를 타인과 함께하려고 한다. 독서는 가장 사적인 일이다. 내가 흥미를 가지는 지점은 책을 말한다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다. 난 이동진이 하는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기만 했을 뿐, 그 어느 곳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문득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책에 관해 나도 말하고 싶어졌다.


여러 모임들 중에서 어떤 곳에 가입할지 유심히 살펴봤다. 이것저것 살펴볼 것도 없이 이동진의 책을 주제로 정한 클럽에 가입 신청을 하는 나의 모습. 당혹스럽게도 난 이동진 손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다. 그 증거로 지난 주말엔 300석이 넘는 극장의 귀퉁이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진행하는 시네마 토크를 들었다. 이동진이라는 사람이 내 삶의 영역에 끼치는 영향은 따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책과 영화뿐만이 아니다. 그가 하는 여러 가지 작업들을 통해 이동진식 생활양태와 사고방식까지 흡수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읽고 아침마다 조깅을 하다 삼일만에 포기한 사람이라면 이 기분을 알까.


이동진의 방송을 듣다보면 참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또한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좋아하진 않는다.(특히 여행서적은 지루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포용하는 삶의 다른 지점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마치 나와 다른 곳에 밑줄을 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의 다름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동진은 여러 자리에서 밝힌 것처럼 취향의 비무장지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손쉬운 단언을 불신하고 매사에 사려 깊은 사유를 펼친다. 그가 펼쳐놓는 사유의 틀은 나와 다르기에 욕심이 난다. 원래 좋아하면 다 그런 것처럼 나와 다르기에 사랑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 극 중 테레자를 연기한 쥴리엣 비노쉬. 이 영화 덕분에 늘 테레자를 떠올릴 때면 그녀의 얼굴을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테레자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시골에서 식당 일을 하며 고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휴식처는 동네 도서관이다. 그녀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릴 적 상처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녀에게 두려움과 자신의 공간에 대한 강박을 유발한다. 때문에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집 주위만 배회하는 것이다. 그녀가 식당 한 구석에서 책을 읽는 토마시를 본 건 우연이었다. 그녀는 신통하게도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던 용기를 가지고 그의 집을 찾아간다. 밀란 쿤데라의 설명에 의하면 테레자는 독서를 통해 웬만한 지식인들보다 뛰어난 지식과 직관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토마시에 대해, 그의 여성편력과 방탕한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도 그가 자신을 이곳에서 탈출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라고 확신한다.

이 지점에서 밀란 쿤데라가 말하려는 것은 짐짓 단순해 보인다. 세상은 온통 거친 의미부여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결국에 우리를 바꾸는 건 그깟 우연에 불과하다. 그 우연의 자장 안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난 것이다. 테레자는 책을 읽는 토마시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꼈고, 토마시 역시 안나 카레니나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난 여인에게 그 못지않은 열병을 얻는다. 그건 마치 책을 읽는 사람 간의 유대처럼 보인다. 저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악한 남자일 리 없다는 지극히 무모한 믿음 같은 것이다. 문학이 사랑과 이어지는 우연의 순간에 작가가 가진 책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지식과 책에 대한 숭배는 그 목적 없음에 위력적이고, 그 정처 없음에 낭만적이다. 내가 이동진에게 가지는 동경은 지식인에 대한 나의 지적 허영이자, 측정 불가능한 책에 대한 애정이다. 독서가 우연을 운명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이라면, 난 별풍선을 쏘는 오타쿠를 자처한다.

"강물에 흘러 떠내려가던 '양초를 바른 갈대 바구니에 담긴 아기'는 토마스의 침대 끄트머리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이런 독서를 상상한다. 이동진 역시 욕조에서 책을 읽는다지.

이번에 이동진이 쓴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내가 이동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왜 독서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동진은 한 권의 책으로 답을 했고, 난 책의 내용보다 독서에 애정을 표하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꼈다. 누구나 저마다의 독서 방법이 있다. 난 굳이 이동진의 방법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나도 나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난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너 책을 좋아하는 거 맞아? 강박은 없는 거야? 있어 보이려고 퇴근 후 졸음을 참으면서 책을 붙들고 있는 건 아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책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들은 대부분 소설을 읽을 때다. 이야기라는 연료를 통해 극 중 인물에 몰입한다. 마치 삼겹살처럼 질리지도 않고 불판을 간다. 하지만 몸매 관리를 위해 순수문학을 읽기도 한다. 원활한 장운동을 위해 이름 바 인문서적으로 불리는 비문학도 읽는다. 내가 <총, 균, 쇠>와 <사피엔스>를 읽을 수 있었던 건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런 두꺼운 책들을 내가 더 나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한다. 그야말로 이런 책도 읽는 내가 좋을 뿐이다. 어디 가서 한 마디 정도는 거들 수 있고, 아는 척할 수 있는 지식이 있기에 읽을 뿐이다. 이것 역시 내 독서비결이다.

러브레터는 도서대출카드로 이어지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90년대 후반의 추억 돋는 정취.

종종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을 하곤 한다. 2호선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처박고 스마트폰을 한다. 가끔 나처럼 멍 때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 서둘러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2호선의 한강은 다른 세상처럼 눈이 부시다. 이내 찡긋거리다 사람 구경을 멈추지 않는다. 예쁜 여성을 훔쳐보는 것도 좋고, 구겨진 셔츠를 입은 남자의 어젯밤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다. 그러다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난 호기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누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책 제목을 알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주저앉아 신발 끈을 매는 척하면서 표지를 보기도 하고, 문장을 읽어보며 내가 아는 책인지 가늠한다. 이상한 동조 의식이 생기는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말없이 신호를 보낸다. 여자라면 구애의 눈빛.

이동진의 독서법이 세상의 책들을 자기만의 공간에 가둬두고 즐기는 것이라면, 난 어려운 책을 읽고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독서를 한다. 이동진의 독서법이 책이 자아내는 물성, 그 냄새에 관한 변태적 취향이라면, 난 어디선가 퇴근길의 쏟아지는 졸음을 견뎌내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것이 독서에 대한 나의 영역표시다. 옆구리에 <안나 카레니나> 양장본을 끼고 토마시의 집 앞에 나타난 그녀를 찾으려는 걸지도. 뭐가 됐든 난 독서를 향한 절제 없는 애정을 표한다.


* 상단노출 사진은 영화 <애니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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