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Apr 28. 2018

누군가는 읽고 있으니까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평일 저녁 노트북을 켜면 Jtbc 뉴스룸만 본다. 어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런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날까. 뉴스만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현생이 바로 이 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세계에서 아이들이 온전히 자랄 수 있을까. 얼마 전 본 선배의 작은 아가들이 생각났다. 맑은 눈으로 섬기듯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세상은 어떤 것일까. 4년 만에 한 번씩 찾아오는 정치인들의 쇼는 예능 버라이어티를 초라하게 만들고, 기업이 권력과 결탁한 사건은 영화에서 보던 대로 한결같다. 마치 삼류 소설가의 각본처럼 세상은 틀려먹길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매일 똑같은 뉴스를 보며 난 왜 재미를 느끼고 있을까. 난 세상의 클리셰가 만들어진 비결을 깨달았다.


나이가 드니 운동을 많이 해도 몸의 변화가 느리다. 그렇게 낑낑대며 쇠와 싸움을 해서 내가 얻는 것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발버둥 치는 도살장의 소처럼 난 오만상을 찡그리고 헬스장에서 버텨낸다. 녹초가 돼서 집에 들어오면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글을 쓰는 건 더 요원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프로틴 가루를 날리며 얼른 소파 안으로 파고든다. 사료를 먹듯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며 손석희와 마주한다. 뉴스와 프로틴의 조합, 누가 그랬던가 행복은 반복에서 나온다고, 겨우 이 정도가 내가 믿는 행복의 적정량이다.

영화 그 후, 전원사 제공

피곤하더라도 최근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몇 마디 정도 기록해두자. 자리를 털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기록? 무엇을 위한 기록? 블로그 운영을 위한 기록인가. 가끔 2000명이 넘어간 내 구독자들이 과연 내 글을 읽는지 의문스럽다. 그들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 보이지 않기에 의식할 수 없다. 한 줄을 읽고는 ‘이 새끼 무슨 이런 걸 글이라고 써놨어’ 이럴까 봐 두렵다. 그래도 다 읽고는 ‘이 녀석도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네’ 생각하기를 바라본다. 수 십 권의 소설을 쓴 ‘스티븐 킹’에 의하면 글쓰기란 정신 감응이며, 문학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신 감응이라고 말한다.(유혹하는 글쓰기 중) 그가 말하는 감응이라는 건 뭘까. 아마도 독자와 주고받는 작용과 반작용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에 반해 내가 블로그에 뭔가를 적으며 생각한 감응은 전적으로 혼잣말에 가깝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정처 없이 떠도는 잡념과 망상들이 글쓰기를 통해 구체적 형상으로 자리한다. 형체를 알 수 없었던 상상이 문장으로 드러나면 스스로 초라해진다. 그래 난 이 정도의 생각밖에 못하는 놈이지. 그래서 대부분 생각들은 망각의 수렁으로 빠지고 만다. 가끔 보면 맘에 들 때도 있다. 이 정도면 꽤 근사한 생각 아닌가. 이럴 땐 생각이 바뀌기 전에 업로드 버튼을 누른다. 감명 깊게 읽은 소설과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일말의 계몽의식을 핑계 삼아 올린다. 슬펐다, 좋았다, 지렸다, 오지다 같은 의심스런 말로 치부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문장들이 안쓰럽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2018)

매년 사는 소설집 중에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10년 전부터 매년 책으로 편찬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젊은 작가들이 짧은 이야기를 써냈고, 난 이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작품집 홍보를 좀 하자면(문학동네 보고 있나?) 우선 값이 싸다. 요즘 책값 어마 무시하다, 얇은 책도 만원이 훌쩍 넘는다. 근데 이 소설집은 엄선한 작품들만 추려놓고도 단돈 5,500원이면 살 수 있다. 2017년 가장 인기 많은 소설집이었던 <쇼코의 미소>, <너무 한낮의 연애>가 바로 이 수상 작품집 속에 있다. 이 시리즈로 만났던 작가들은 이제 한국 문단에서 중요한 이들이 되었다.(즉 이제 젊지는 않다.) 검색해보기 귀찮으니 내가 기억하는 몇 명만 적어본다. 김중혁, 김성중, 김애란, 황정은, 최은영, 김금희, 편혜영, 박솔뫼, 손보미, 김이설. 모두가 믿고 살 수 있는 작가들이다. 나 정말 잘 파는 것 같아.     

이 작품집의 진짜 매력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소설들을 통해 곧 스타 작가가 될 은둔 고수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들의 작품만 꼽다 보니 다른 수상집과 다르게 새로운 얼굴들과 면을 튼다. 말 그대로 요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직업으로서의 작가를 온전히 쟁취하지 못한 자들이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출퇴근을 하면서, 혹은 몇 년간 되지도 않는 집필의 교착에 빠진 이들의 일상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 신예의 참신함이란 프로 작가가 가진 관성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자아가 작품 속에 스며있다는 것에 있다. 누구나 한 가지 이야기쯤은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나. 경력이 일천한 작가일수록 본인 인생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엿보인다. 난 그런 점들을 의식하며 이 책을 읽었고, 작품의 끝에 작가들이 남긴 소감을 읽으며 그들의 인생을 떠올렸다.      


올해 수상작들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가만한 나날>이다. 사실 박민정 작가의 <세실, 주희>가 가장 좋았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부유하는 건 가만한 나날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직업적 블로거가 화자로 등장한다. 첫 직장을 구한 주인공은 블로그를 통한 홍보업체에 들어가 가짜 게시물을 올린다. 그녀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가짜 라이프를 구축하고, 블로그를 통해 과장광고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만든 캐릭터는 30대의 채털리 부인이다. 채털리 부인은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동년배의 주부들을 현혹한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블로그에 올리며 구독자를 늘리고, 삶의 양태를 판매한다. 사진 위주로 제품을 찍어 상품에 대한 감상을 올리면 구독자들은 반응한다. 엄지 척과 좋아요로 대표되는 그들의 반응은 곧 제품의 판매고로 증명된다.      

작가가 되길 희망했지만 잘 되지 않아 직장인을 택한 화자는 채털리 부인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문학적 갈증을 푼다. 그녀는 이 직업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믿었다.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일상을 적는 작가처럼 그녀는 채털리 부인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을 찾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타인에게 채털리 부인의 삶이 현실세상의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어느 날 채털리 부인은 자신이 홍보한 살균제가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유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혼란에 빠진다.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비극에 엮여 들어간 그녀는 복잡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일이 가닿는 여파가 윤리적으로 바닥을 보이게 되자 파열한다.      

영화 그 후, 전원사 제공

가끔 블로그를 적다 보면 내가 지금 적는 글들이 누군가의 인생에 가닿는 상상을 한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일상을 뒤틀고, 의도치 않게 부정적 생각으로 몰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건 나를 과대평가하는 거라며 웃어넘기지만, 아주 가끔은 불길한 상상에 젖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글을 읽는 이름 모를 그들을 상상하길 멈추지 않는다. 아니 더욱더 치열하게 그들의 존재를 의식한다.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 보려는 마음 상태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상상은 문학이 실제하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기만적 위로가 아닌 자기 삶의 가치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안도다.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나를 살피고 다듬어서 최대한 자족할 수 있기를. 이 삭막하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누군가의 불행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작가의 이전글 의식하지 않고 말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