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햅, 에이미 와인하우스
난 하릴없을 때 어딘가에 틀어박혀 생각한다. 과거에 비비적대며 뭐라도 떨어지길 기다린다. 그렇게 겨우 얻어낸 기억은 모디아노의 문장처럼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은 텅 빈 곳간처럼 휑한 소리만 난다. 깨달은 것도 웃었던 순간도 자취 없이 소멸했다. 지금 이 시공간도 분명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불현듯 난 주변 풍경을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박제한다. 그러면 뭐라도 남을 것처럼.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다. 자꾸 문장이 흐물거린다. 난 어떻게든 글에 빠지려고 수를 쓰지만 얼마 못 가 허방에 빠진다. 밑줄도 치고 나지막하게 읊어도 소용없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쓴 마이클 온다치는 훌륭한 작가지만, 난 그걸 소화할 감각을 지니지 못했다. 졸린 눈을 비비는데 폰에 문자가 울린다. 옆 사무실 선배가 보낸 짤막한 메시지. 장례식 장소와 위치 그리고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난 기계적으로 그와 나 사이에 그어진 관계를 그렸다. 난 그와 얼마나 가까운가. 다음 그를 마주할 때 곤란하진 않을까. 그러다 이내 귀찮아져서 화면을 끈다. 소설 한 줄보다 덜한 마음도 함께 사라졌다. 식은 커피를 마시며 친구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송금했다.
추모관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장사 시설 특유의 기름 냄새와 눅진 공기가 팽배하다. 도대체 장례식장은 왜 이리 형광등이 밝을까. 눈이 아파 슬픔에 머물 겨를이 없다. 군데군데 보이는 거짓 슬픔과 왁자지껄한 저질 농담에 혐오를 느낀다. 구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어느새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불현듯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뜻 모를 소외를 떨쳐내려고 밖으로 향했다. 연기를 피우며 담배를 꼬나문 이들 사이에서 아이클라우드를 뒤져 오래전 사진을 바삐 넘겼다. 마치 내가 누구인지 찾아내기라도 하듯 샅샅이 뒤졌다.
관이 화장장에 들이는데 힘을 보탰다. 어렵사리 집에 도착해 몸을 뉘니 오후 한 시. 도통 잠을 이루기 어렵다. 두 시간 정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선잠에 머물렀다. 몸을 일으켜 멜론을 켰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리햅’이 들린다. 그녀의 지옥 같은 삶의 궤적을 생각했다. 에이미는 27살 인기 최정상의 가수였을 때 자살했다. 침대에서 방해 없이 조용히 죽었다. 난 그걸 불행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난 그녀를 모르니까. 그저 그녀를 방을 상상하고, 혼자 보냈을 시간을 구슬려본다. 난 욕실에서 샤워하는 그녀를 살피고, 그녀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슬픔을 느꼈다. 죽음이 도처에 깔린 삶이란 어떤 걸까. 난 가슴 아픈 일이 생기면 더 큰 슬픔을 끌어오는 버릇이 있다. 내 좁쌀 같은 슬픔을 그녀의 비극에 대입시키곤 위안을 얻는다. 난 그런 내가 한심해 부러 욕을 읊조렸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떠올랐다. 우린 처음에 어색했지만 이내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눴다. 공통의 화제는 없었지만 근면한 일꾼처럼 어색하지 않게 연기했다. 난 그와 너무 달라져 버렸음을 실감했다. 서로의 일상에 같은 색으로 처진 빗금이 없다는 게 새삼스럽다. 그래도 지천으로 깔린 시간에 힘입어 이런저런 일들을 꺼냈다. 봄에 내리는 비처럼 시큼한 얘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떠난 사람도 그리워했다. 죽음과 결혼, 직업과 취향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망자의 곁에서 망자를 떠올리지 않고 소주를 마셨다. 아까 스치듯 본 한 친구의 기구한 삶을 걱정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미인을 훔쳐봤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학교 다닐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 친밀함이 생겼다. 어쩌면 매일 붙어 다니던 시절보다 지금 이 친구를 더 알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 한 친구가 아기를 제 몸처럼 품고 나타났다. 난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아이를 넘겨받고 경외를 느꼈다. 아이가 내 가슴에서 숨을 쉰다. 쌕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침묵을 온전히 품은 듯 고요하다. 낯선 내게 안겨서도 잘 자는 걸 보니 감개무량하다. 슬슬 흔들어 보고, 말도 걸어봤다. 난 쌔근쌔근이라는 말이 가진 어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가는 조금 들썩거리다가 다시 잠으로 빠져든다. 아이의 몸이 이렇게 따듯한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안긴 건지, 내게 안긴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다. 종일 그 온기와 감촉을 떠올렸다. 다시 안아보고 싶었다. 표정도 좀 살펴보고, 숨소리는 어떤지 듣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난 아이를 안은 적이 없다. 이런 느낌을 모르고 살면 무척 억울하리라 생각했다. 아직도 내가 느끼지 못한 무수한 감정이 있을 텐데. 난 시린 상실을 느끼고 투스카니 지방을 부유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