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

가재는 이제 보이지 않고, 도시는 병들어간다

by 박민진

난 보고서를 쓰다 진이 빠지면 새 창을 띄운다. 백지 위에서 껌뻑거리는 커서에 뭔갈 적으며 잠시 머리를 식힌다. 대체로 요새 미적거리다 놓친 감정의 찌꺼기가 쏟아진다. 평소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던 고민이 비쭉거리고, 새된 문장들은 무의미한 축제를 벌인다. 시험 기간만 되면 책상 정리에 공을 들이던 문민정부 시절의 나처럼 쓸모없는 짓에 몰두한다. 별의별 대중없는 생각들은 얽매이지 않고 놓여나는 기분을 준다. 규칙과 관습을 벗어던지고 마치 수필이란 말처럼 펜대가 제멋대로 굴러간다.


종종 회사를 관두고 작가로 사는 삶을 떠올린다. 주로 버스 차창에 기대 하염없이 망상에 빠진다. 뭔가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언감생심 꿈도 안 꾼다. 그저 원고료와 인세로 먹고사는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면 족하다. 난 어찌나 소심한지 꿈마저도 계산이 떨어지지 않으면 답을 적지 않는다. 소설가를 향한 동경은 서른이 넘어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장래 희망을 말할 수 있던 시절은 금세 지나갔고, 꿈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애가 그 자리를 꿰찼다. 좋은 사람을 만나 건강한 연애를 할 때 내 1인분을 지킬 수 있었기에 나머지는 그냥저냥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서 연애보다 더 나은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승산 없는 인정투쟁마저 불사할 정도로 때론 절실하다.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할 때면 늘 아침에 조깅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작가랑 조깅이 뭔 상관인지는 몰라도 왠지 아침 공원을 뛰어다니는 게 문학적으로 느껴진다. 흠뻑 땀을 흘리고 집에 들어오면 미지근한 물로 샤워한다. 커피를 한 잔 따르고 곧장 책상에서 글을 쓰는 내가 보인다. 책상은 마호가니 목재에 노트북은 맥북이 좋겠다. 네 시간쯤 썼을까. 슬슬 배가 고프니 생선이나 두부 같은 담백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도록 하자. 식탁엔 며칠 전 사들인 신간 소설들이 놓여있고, 오후의 나른함을 달래주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이 귀를 때린다. 소설가가 되겠다면서 어떤 작품을 쓰겠다는 포부나, 글쓰기를 향한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작가가 누릴만한 일상을 탐한다. 상상은 공짜라서 그런지 정도껏 하지 못한다.

내 바람과 달리 현실은 카메라가 꺼진 트루먼의 일상처럼 시무룩하다. 알람을 몇 번이나 5분씩 연장하고 몸을 일으키면 시간이 촉박해 늘 허겁지겁 출근을 서두른다. 가까스로 지하철에 올라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진이 다 빠져 사무실에 다다를 때쯤엔 할렐루야가 절로 나온다. 날 위한 사치라며 커피는 곧 죽어도 스타벅스고, 회의에서는 고개를 처박고 몰스킨 노트에 호놀룰루 약도를 그린다. 오늘은 뭐라도 쓰겠다며 다짐하지만, 종일 분주한 탓에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저녁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커피집에 앉지만, 인터넷 쇼핑을 하느라 어영부영 시간을 축낸다. 책을 두 권이나 들고 와서는 한 줄도 읽지 않고 만원 버스를 몸을 싣는다. 침대에서도 카페인을 잔뜩 섭취한 탓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우처럼 웅크리고는 애당초 내겐 재능이 없었던 게 아닌가 불안해한다.


어젯밤에 그래도 소설이 재밌어서 꽤 읽었다. 역시 불안할 땐 소설만 한 게 없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델리아 오언스라는 낯선 작가의 책인데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평생 생태학자로 살다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첫 소설을 썼다. 제목답게 아마존을 28주 동안 초토화하고, 금발이 너무한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로까지 만든단다. 여러모로 화젯거리가 많은 책답게 이야기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는다.

델리아 오언스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생태학을 소설에 끌어들여 습지의 신비로움과 늪의 끈적함을 동시에 녹여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가 소설가가 됐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누구나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걸 구체화할 계기나 수단이 없었을 뿐 작화(作話)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안심이 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배경은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습지다. 대지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그곳에 카야라는 소녀가 산다. 카야는 가족들이 자신을 버리고 다 떠나도 홀로 습지에서 생존법을 터득한다. 물론 카야가 좋다며 껄떡거리는 놈들이 기웃거리지만 그건 한때에 불과하고, 그녀는 늘 기꺼이 고립을 택했다. 견디지 못할 만큼 외로우면 습지에 대해 공부를 하며 고요한 밤을 지새웠다.

카야는 작가처럼 학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도시의 무수한 이들처럼 카야 역시 홀로 자신의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 내가 지하철과 커피숍, 대형서점과 극장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카야도 고요함을 품은 습지를 사랑한다. 누구나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통해 제 정체성을 드러내고, 나와 무관해 보이는 날씨에서 구원을 얻기도 한다. 소설은 치정과 살인이 난무하지만, 그 기저엔 고유한 온도와 색감을 가진 한 개인의 내밀한 속내가 있다.


주말 아침 홍대입구역 근처를 걸어가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틀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울리자 새삼스레 뭉클한 기분이 휩싸였다. 쿵쿵거리는 세기말 정서가 아련했고, 옛 기억이 눈치 없이 망막에 틈입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몇 걸음 못 가 눈가가 찡해졌다. 퍼뜩 어제 유튜브로 본 침팬지의 포효가 떠올랐다. 영장류의 우울이란 삶의 조건과 같은 건가 봐. 감정이 올라와 마주 오는 인파를 피해 골목 귀퉁이에서 고개를 처박고 눈물을 훔쳤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카페에 들어서니 사장님이 날 걱정스레 쳐다본다.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졸린 척 하품을 했다. 누군가가 떠오른 건 아니었는데, 행복해 이제 널 보낼 게 너의 그 사람에게라는 노랫말이 서글펐다. 고릴라 같은 박진영은 어쩜 이런 주옥같은 곡을 수도 없이 써냈을까. 내 이십 대 중요한 고비마다 마치 CF 음악처럼 그 시간을 가져갔다. 깨닫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꽤 긴 시간 날 다독여줬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책을 조금 읽다가 친구들과 고기를 먹었다. 2차로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고래고래 떠들었다. 비록 지금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때 마음을 나눈 녀석들이다. 과거의 날 떠올리면 속상하다. 난 틈만 나면 시위하듯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날 보여주는 게 진심이라고 믿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아픈 부분을 알아야만 친해지는 것이라 믿고 매달렸다. 친구의 내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캐물었고, 그래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거라고 착각했다. 지금에야 느끼지만 내 지질한 모습을 받아줬던 녀석들에게 난 부채감을 갖고 있다.

오늘 술자리엔 내가 모르는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평소 독서를 열심히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주식과 신형 차 얘기는 이제 익숙하지만 요즘 뜨는 동네 집값, 정력에 좋은 음식까지 떠들어대니 좀처럼 견디기가 어렵다. 그건 마치 나에게 속하지 않는 먼 세계의 소음처럼 들린다. 난 연신 술잔을 꺾으며 희미해지는 내 존재를 붙들었다. 취기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자리를 파했고, 난 결핍을 남긴 채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이고 조금 못가 번쩍거리는 노들섬이 눈에 들어온다. 녹지와 습지로 가득했던 이 섬도 이제 흔해빠진 도시 계획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카야야 네가 살 곳은 이 서울에 없단다. 집값 싼 파주 정도로 가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