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미스틱 리버>
미스틱 리버처럼 찜찜한 영화를 보면 기분이 처진다. 내용 전체에 힘 날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서 비극이라는 낱말에도 다크서클이 생길 지경이다. 사실 그런 맛에 본다. 암흑가를 헤매는 녀석들을 보면 내 조막만 한 불행은 꽤 궁색해진다. 데이브를 연기한 팀 로빈스가 거구의 몸으로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슬픈 등 연기를 하는 통에 좋은 배우는 등으로도 연기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 덩치가 어찌나 작아 보이는지 CG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연기였다. 무섭게 생긴 숀 펜(지미)이랑 케빈 베이컨(숀)이 하도 들볶아 대는 통에 성할 날이 없다. 결국 데이브가 누명을 쓰고 강가에서 울분을 통하는 장면은 일시정지 없이 보기 어려웠다. 굳이 쇼생크를 탈출해서 이런 꼴을 보고 살아야 하나.
내가 미스틱 리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더 단순하다. 우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지나가는 일들이 어쩌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의 착점 때문이다. 내게서 비껴간 비극이 다른 곳에 싹트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 간신히 피한 저 불행이 과연 끝까지 내 것이 아닐 수 있을까. 그저 입을 다물고 어떤 울분이나 슬픔을 내포한 채 살아가면 그뿐인가. 영화가 품은 묵직한 질문은 시종 날 자극해왔다.
그들의 운명이 꼬여버린 사건은 어느 평범한 날에 발생한다. 여느 때처럼 거리에서 공놀이 하던 세 아이는 낯선 차가 자신들 앞에 서는 걸 바라본다. 경찰로 위장한 거구의 남성이 내려 아이들을 윽박지른다. 남성은 세 아이 중 데이브만 차에 태워 떠난다. 데이브는 성도착자들의 손에 며칠간 폭행에 시달리다가 어렵사리 탈출하고, 세 아이는 전과 같아질 수 없어 흩어진다. 각자 무관한 인생을 살아간다.
세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건 시간이 한참 흘러서다. 이제 중년이 된 세 아이는 또 다른 비극을 마주한다. 지미의 딸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지역 강력계 형사인 숀이 수사한다. 어두운 과거가 이성적인 판단을 혼탁하게 하고, 딜레마에 몰린 세 친구는 부정확한 정보에도 휘둘린다. 지미의 딸이 죽어있는 사건 현장을 찾은 숀은 피로한 눈으로 시종 무덤덤하게 현장을 수사한다. 자신도 잘 아는 친구의 딸이 극심하게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자 회의감에 시달린다. 어쩌면 이 피로감은 그때 데이브의 비극을 막지 못했을 때부터 지속하여온 감정은 아닐까.
영화는 서로를 의심하는 친구들과 도통 풀리지 않는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며 답답해진다. 애꿎게도 정황상 용의자로 몰리는 건 그날 지미의 딸과 같은 술집에 있었던 데이브고, 지미는 형사들을 무시하고 자경단처럼 범인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돌아다닌다.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하는데 피해자 아버지인 지미가 데이브의 고통에 이입한다는 점이다. 지미는 데이브에게 손을 내민다. 영문을 몰라 당황한 데이브는 자리를 급히 떠난다. 지미는 과연 데이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가 딸을 잃지 않았다면 평생 데이브의 고통을 헤아려 보려고 시도나 해봤을까. 이런 생각은 짓궂지만, 다시금 그들의 운명이 엇갈린 날을 떠올리게 한다. 차 뒷좌석에 탄 채로 멀어지는 데이브의 눈빛과 두 아이의 무력한 시선. 이 장면은 고여있는 그늘처럼 사라지지 않고 어느샌가 드리운다. 과연 저 차에 탄 사람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회한이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애써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히틀러의 모친은 마지막 순간에 유산을 포기했다지…. 그때 데이브가 아니라 우리가 그 차를 탔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십중팔구 미쳤을 테고, 결혼도 못 했을 거고, 아이도 없었을 거고, 그럼 내 딸이 죽지도 않았을 텐데….” 지미의 이런 읊조림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운명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나약한 인간을 상기한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내일 어떤 비극이 생길지 모른 채 희희낙락하는 인간 삶의 애처로움. 영화는 범죄의 상흔이 세 친구의 삶을 망가뜨리는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카메라를 불쑥 허공에 띄워 전지자의 시점으로 이들을 굽어본다. 실제 보스턴에 자리한 미스틱 리버와 군집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정경은 인상적이다. 이 도시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우린 진실이라는 걸 거머쥘 수 있을까. 애초에 그런 희망 자체가 모순에 직면한 착각 아닐까. 내가 신이라도 저 빽빽한 집들, 저 컴컴한 강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일일이 들여다보기 힘들 텐데. 강은 모든 진실을 품어내지만 어떤 말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암묵적인 세 사람의 관계와 유사하다.
지미는 결국 데이브에게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살해한다. 경찰의 손을 빌리지 않고 미스틱 리버의 검검한 어둠에 데이브를 유폐한다. 데이브의 죽음은 친구도 아내도 그 누구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기에 더 참담하다. 평생을 누추한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그는 지미의 추궁에 거짓 실토를 한다. 데이브의 표정은 유예된 죽음을 이제야 실현했다는 듯 짐짓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데이브를 죽이고 돌아온 지미는 자신이 범인을 오인했음을 깨닫는다. 비관한 그에게 아내는 속삭인다. “어젯밤 아이들에게 말해주었지, 아빠가 가족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든 잘못된 건 없다고, 결코 비난해선 안 된다고.” “당신은 왕이고 왕은 단호하게 행동하는 거야. 힘들더라도 가족을 위해 뭐든 하는 거야.”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격렬한 섹스를 나누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밖에 나선다. 데이브의 죽음은 응당 그래야 했던 일이었다는 듯 잊히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기폭제로 합리화한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발설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폭력의 여파는 사라지지 않고 잠복했다가 잊을만하면 삐쭉 솟아올라 더 강력하게 일상을 뒤흔든다. 비극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마지막은 화려한 거리 퍼레이드 장면이다. 데이브는 죽었고 숀과 지미는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잘해보자는 식이다. 숀은 지미에게 손가락 권총을 쏜다. 그때 지미는 선글라스를 쓰며 겸연쩍은 손짓을 한다. 두 사람은 미스틱 리버에 묻어버린 그 날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