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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1. 2021

나는 킬러야

웨이브 <빛과 철>

 주말에 '조던 필' 감독의 <겟아웃>을 다시 봤다. 토요일 밤이면 <그것이 알고싶다>를 즐겨 보는 난 최근에 '정인이 사건'을 다룬 회차를 보고 나서 약간 겁에 질려있었다. 실세계에서 벌어진 잔혹한 범죄가 며칠간 이명처럼 날 괴롭혔다. 하루는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거기엔 어떤 방관자로서의 죄책감도 있었다. 편한 소파에 앉아 누군가의 고통을 구경하는 기분에 무력했다. 그것도 고작 차로 세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으스스하면서도 쫄깃쫄깃하고 서스펜스가 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허구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저 겉만 번지르르한 와스프들의 땅으로 스며들었다. 근데 이건 방관이 아니라 방임 아닌가.

 크리스는 여자 친구의 부모를 뵈러 갔다가, 최면에 걸려 그들의 노예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한다. 뭔가 음산하고 수상한 행동을 일삼는 집안 분위기에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던 크리스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깬다. 모깃소리는 평소엔 '앵앵'거리는 데 불과하지만, 그의 본능적인 위기의식은 모기의 성대에 확성기를 달았다. 생명의 신이 그에게 소리치는 것처럼. '빨리 거기서 탈출해야 해!' 하지만 신들의 언어 따위 알 리 없는 크리스는 모기를 잡은 후에 태평스럽게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잠들지 못하는 여름밤 나 역시 모깃소리에 시달린 적이 있다.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불을 켰다 껐다 하면서 모기 사냥에 나섰던 밤. 에어컨으로 더위 사냥엔 성공했는데 모기는 잘 잡히지 않았다. 뇌도 없는 것들이 어떻게 그렇게 약삭빠른지 역시 생존본능이라는 건 무시못하는 거야. 신문지를 들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 데 불만 끄면 모깃소리가 들렸다. 앵앵. 차라리 모기를 때려잡고 피를 본다면 속 편히 잘 텐데, 정체 모를 모깃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져만 갔다. 오늘 직장 동료가 한 얘기가 귓불에 맴돌았고, 어디선가 수도꼭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공익광고처럼 청명한 소리를 냈다. 꼭지를 잠그러 가려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만 천근만근이다. 새벽 세 시, 진짜 이제는 자야 해. 타이머로 꺼진 팟캐스트를 다시 켜서 김혜리 기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했지만 오늘 그가 내게 보낸 메시지가 생각나 다시 망상에 빠진다. 베개를 뒤집고 돌아누웠다가 이불을 걷어차다가 다시 불을 켜고 물을 한 잔 들이켰다. 그제야 이 모든 잡소리가 모깃소리가 아니라 환청이라는 걸 눈치챘다. 천장에 붙은 야광별이 불가사리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하루를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너른 들판으로 나섰다. 데카르트는 누워서 철학을 했다던데, 나도 이러다가 뭔가 기가 막힌 걸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앤 라모트'처럼 침대 옆에 노트라도 한 권 둘 걸 그랬나. 어쩌면 이건 위험신호일지도 모른다. 내 삶에 닥친 권태와 허무를 이겨내야 한다는 어떤 계시.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를 그만둬야 한다는 신들의 언어.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꿈꿨던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어느 순간부터 읽어버린, 낯간지러워 더는 입에 올리지 않는 꿈이라는 걸 찾아야 한다고.


 며칠 전 본 영화 <빛과 철>에는 이명에 시달리는 희주가 나온다. 시도 때도 없는 이명에 희주는 미칠 지경이다. 증세가 시작된 건 희주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부터다. 그때부터 신경증을 동반한 증세에 잠을 못 이루고, 잠을 못 자니 일터에서 버티기가 어렵다. 일상생활이 망가진 희주는 몸도 천근만근이라 밥도 잘 못 먹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신발에 묻은 먼지만 바라본다. 희주는 나보다 볼륨이 세 배 이상 큰 이명에 시달리는 터라 영화관 스피커가 찢어질뻔 했다. 병원에서는 청력에 문제가 없으니 신경정신과로 가라고 떠밀지만, 그녀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강박적으로 남편이 사망한 교통사고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이다. 희주를 맴도는 이명은 졸피뎀 두 알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걸. 자신을 괴롭혔던 그 날의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는 걸. 그녀의 일상을 앗아간 남편의 죽음 뒤에 숨겨진 사건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교통사고는 남편의 과실이 아니어야 한다. 부부간의 불화로 남편이 평소에도 트렁크에 번개탄을 싣고 다녔다는 걸 부정해야 한다. 남편이 평소에 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는 사실도 잊고 싶다. 희주의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또한 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명은 볼륨을 낮춰, 고작 여름밤을 방해하는 모깃소리처럼 잦아들 것이다.


 이제 날씨가 풀리면서 봄이 오는 모양이다. 뉴스를 틀어놓고 방바닥을 닦았다. 집이 깔끔해지니 눅눅한 기분이 달아났다. 앵커는 코로나 확진자 속보를 전할 때와 달리 힘찬 목소리로 아동학대특례법 개정안 통과 소식을 전한다. 이른바 ‘정인이법 국회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걸레를  방임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곁에 똥파리 일들이 사라지기를. 다행히 최근 이사한  집엔 벌레들이 없다. 생각해보면 모기는  어린 시절에만 날 괴롭혔다. 어느 순간부터 모기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잔뜩 물려도 반나절이면 잊힌다. 심지어 밤새도록 물어도 무시하고  적도 많다. 그만큼 내가 무뎌진 거다. 고운 살이 점점 퉁퉁해지고 무감각해진 것이다. 섬세하고 여렸던 감성이 거의 권일용 프로파일러처럼 냉철해진 것처럼어릴 적에 가요 중에 '콜라'라는 그룹의 <모기야>라는 곡이 있다.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였던 김창완이 제작하고 강원래의 부인인 김송을 주축으로  3인조 댄스그룹이었다. 물론 망했지만,  노래는 여름이  때마다 생각났다. 특히 모기야,  연발하는 후렴구를 흥얼거렸다. 지금은 모기보다는 숙취 같은 회한이  흔든다.  망치러  그는 내가 떨쳐내고 현재에 집중하는  방해한다. 매일 미세하게 옷차림을 달리하고 나타나서는  할퀴고 사라진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모기처럼 들러붙는 그를 떨쳐내려 애쓴다. 인제 그만  현실 세계로 돌아가.  오프!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나는 에프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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