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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l 13. 2020

불안은 일상을 잠식한다

왓챠 <테이크 쉘터>

 고흐가 귀를 면도칼로 자른 이유에 대해 뚜렷이 밝혀진 바는 없다. 여러 설들이 난무하지만, 당시 고흐의 마음을 읽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고흐가 죽은 후에 절친했던  고갱마저도 영문을 몰라 괴로워했다고 전한다. 평생 자신의 그림   팔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은 고흐는  음울한 얼굴을 숱한 자화상에 남겼다. 귀가 잘린  얼굴을 그려낼 만큼 자신을 스스로 가늠하지 못해 긍긍했다.  제프 니콜스 감독의 미국 독립영화 <테이크 쉘터> 보고 나서 문득 고흐의 마음을 떠올려봤다. 누구나 하루에  번쯤은 귀찮아도 해내는 그런 시간마저 너무 버거운, 그런 삶을 견디는  남자의 자그마한 집을 상상했다. 창문으로는 목가적인 풍경이 보이고, 캔버스엔 그리다  그림이 놓여있다. 인간의 불안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뭘까. <테이크 쉘터> 어느 날부터 시작된 악몽이 현실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커티스(마이클 섀넌)라는 남자를 비춘다. 우선 영화는 그의 침대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뜬 커티스는 어렵사리 몸을 일으켜 약을 집어삼킨다. 그는 고되지만 분명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커티스는 건설 현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35살의 성실한 가장이다. 집에는 사랑스러운 아내 사만다(제시카 체스테인)가 있고, 청각장애를 앓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싱긋 웃을 줄 아는 딸 한나도 있다. 커티스는 그간 회사에 헌신했기에 딸의 청각 치료를 무상으로 받는 기회를 얻는다. 모든 게 잘 풀려가던 이 가정에 뜬금없이 위기가 찾아온다.


 조현병이란 100이라는 정보에서 10이라는 신호와 90이라는 잡음을 구분해내지 못하고, 30 정도의 잡음을 신호로 받아들여 의식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물론 의학적인 정의다. 그래서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되고, 나만 느끼는 돌출된 신호에 불안을 느낀다.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면 망상으로 이어지는 수순이다. 그런데 커티스는 맥락 없는 망상이 되려 불안을 야기하는 증세를 보인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이 일상으로 침범한다. 가족이 죽는 꿈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펼쳐지고, 길을 가다가 있지도 않은 새 떼의 위협을 받는다. 커티스는 어느 날 꿈속 사건이 육체적 통증으로 발현하자 더는 악몽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거대한 폭풍이 이 도시를 덮쳐,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거라는 선연한 신호를 잡아내기 시작한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계시와 같은 망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우선 집을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참이다.


 <테이크 쉘터>가 독특한 점은 조현병과 과대망상을 앓는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비슷한 문제로 여전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노모의 존재를 의식한다. 그는 이 모든 불안과 망상이 병력에 의한 대물림이 아닌지 점검한다. 그와 동시에 불안의 발로로 집 앞에 쉘터(방공호)를 파기 시작한다. 멸망의 전조를 느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가족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다. 쉘터 안에 캠벨 통조림도 가져다 놓고, 야전 침대도 만든다. 정신적인 문제가 통제 불가능한 첫 번째 원인이라면 그건 의학에 맡기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자구책은 동굴에 숨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지금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행동의 대가는 크다. 불안 증세가 뜻 모르게 돌출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다. 이로 인해 어렵게 얻은 딸의 치료 기회도 무산된다. 누가 봐도 커티스는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아내 사만다는 창문 너머로 방공호를 짓는 남편을 바라본다. 그는 주택담보대출로 가계 상황을 마비시켰고, 어제는 공공장소에서 울부짖는 통에 혼을 뺐다. 그녀는 근심 어린 눈으로 이제 어째야 하나 고민한다.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은 그녀뿐이다. 사만다는 가족을 위한답시고 땅을 파대는 광기에 현실적인 대처로 응수한다. 몰래 모아둔 돈으로 가계를 메꾸고, 남편에게는 방공호를 계속 파게 해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다. 그녀는 이성적인 판단이 서지 않는 남편을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전문의에게로 이끈다. 그리고 커티스가 지은 방공호 안에서 같이 잠을 자고, 그가 스스로 문을 열고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사만다의 현명함이 커티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다. 점차 불안은 걷히고, 커티스는 스스로 굴 밖에 선다.


 불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밀접한 개념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우리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망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망상이 왜 생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망상의 내용과 그 사람의 관계는 이해할 수 있다" 커티스의 꿈처럼 망상엔 그가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뭔가가 그려진다. 그는 가족의 안온한 삶을 뺏기고 싶지 않았고, 실패한 부모 밑에서 자란 트라우마를 떨쳐내야만 했다. 하지만 <테이크 쉘터>의 결말은 다소 아리송하다. 거대한 폭풍우가 집 앞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단순히 망상으로 치부했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걸까. 그의 증상이 다시 발현한 것일까. 커티스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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