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화덕피자보다 감칠맛 나는 이야기

내 눈부신 친구를 위한 엘레지

by 박민진

내가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을 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가득 찬 배낭이 화근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탈리아 남자들 사이에서 거지꼴로 근처 식당을 찾았다. 역사 내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파스타가 아주 저렴했다. 물론 맛도 저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운을 내서 현지인 맛집을 찾아보는 건데. 식사를 마치고도 더 눌러앉고 싶어서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설탕을 잔뜩 넣어 마셨다. 배낭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태리 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었다. 2,300페이지가 넘는 네 권짜리 세트를 배낭에 넣고 열흘을 걸어 다녔다. 다 읽을 때마다 한 권씩 버리면서 다닌 끝에 오늘에야 나폴리 중앙역에 있는 이 식당이 종착지로 정해졌다. 다 읽을 때까지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서른 번은 나눠 마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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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은 나폴리 빈민 지역 출신 레누와 릴라가 1950년부터 대략 60년간 겪은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굴곡진 현대사와 나폴리라는 지역성이 포개진 장대한 드라마로 최근에 HBO에서 시리즈로 제작했다. 사실 이 소설을 몇 문장에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길기도 긴 이 소설인데 그 안에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그것도 한 번 읽으면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찔하게 재밌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여행 내내 읽은 탓인지 나폴리의 작은 마을이 KBS 생생정보통 수준으로 구석구석까지 내게 전해졌다. 덕분에 혼자인 여행이었음에도 릴라와 레누가 늘 동행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텅 빈 호스텔의 침대 위에서도 그들은 말다툼을 벌였고, 관광지를 피해 달아난 한적한 공원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렇게 애틋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깜깜하다. 화자인 레누와 함께한 60년이 무색할 만큼 기억나는 게 적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들의 추억을 앗아갔다. 여행사진은 아이클라우드가 챙겨줬는데 독서에 대한 기억은 망각으로 사라졌다. 하긴 어렵사리 읽은 책을 떠올리지 못하는 건 이 책뿐만의 일은 아니다. 내 배낭을 스쳐간 수많은 책들은 왓챠피디아에 별점으로만 기억되었을 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잊었다는 말 대신 세포 안에 새겨졌다고 우긴다. 일종의 불수의적 기억으로 어떤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불쑥 떠오를 거라고 믿는다. 내가 글을 쓸 때도 의식하지 못한 틈에 튀어나올 거이며, 대화를 하다가도 밑줄을 쳤던 문장이 생생히 되살아날 것이다. 이 정도 정신승리 없이 어떻게 매일 독서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쓰며 <나폴리 4부작>의 몇몇 장면을 떠올렸다. 특히 레누가 릴라에게 느꼈던 열등감의 감정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었던 걸 기억한다. 릴라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사춘기 이후로는 누구보다 아름다워 온 동네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에 반해 레누는 지독한 노력파에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밖에도 잘 못 나가는 처지다. 레누는 늘 릴라의 몇 걸음 뒤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레누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싸움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솔직할 수 없고, 항상 서로를 도우면서도 말할 수 없는 긴장이 감돈다. 결정적으로 릴라가 레누의 첫사랑과 사랑에 빠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좁혀질 것 같지 않았던 격차는 레누가 대학을 가면서 사라진다. 레누는 릴라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작가가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레누가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쓰면서 관계를 전복시킨다. 레누는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만용으로 늘 패배하기만 했던 제 삶을 승리자의 회고로 둔갑시킨다.


나 역시 레누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책을 읽는다. 여행을 가서도, 퇴근하고 카페에서도 배낭에 꼭 책을 갖고 다닌다. 지적인 허영을 메우려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용을 쓴다. 대문호들의 자서전을 읽고 그들과 비슷한 음식을 먹고 그들의 루틴을 흉내 낸다.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날 추동한다. 내 눈앞에는 가상의 릴라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셈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난 깊게 파려고 넓게만 파고 있는데, 그 얇기가 만두피보다 얇아서 보이는 게 없는 수준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처럼 문화 자본은 계급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질이다. 미적 취향은 단순히 돈만으로는 거머쥘 수 없는 계급적 이데올로기의 조건과 같다. 나는 더 나은 생각을 쓰고 싶고, 더 나은 책을 만들고 싶다. 누구보다 고급진 취향을 습득해서 넉넉한 소양을 갖추고 싶다. 어떤 얘기가 나오든 팔짱을 끼고 한 소리 보태고 싶고, 어느 분야든 고개를 쳐들고 아는 척을 하고 싶다. 독서는 내게 여가지만 지적인 고양감이 없다면 진즉에 때려치웠을만한 노동이다.


레스토랑을 나와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실 나폴리는 여행하기 좋은 도시는 아니었다. 낙후된 데다 전체적으로 더럽고 굉음이 들끓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말은 누가 꺼낸 건지. 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낯빛도 어두웠다. 중심가는 번지르르했지만, 골목 하나만 들어가도 극심한 빈부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여행보다는 <나폴리 4부작>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를 복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릴라가 웨딩드레스를 맞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 젤라토 가게가 즐비했던 이스키아 항구, 늘 겁을 먹으며 지나쳤던 가리발디 광장까지. 무엇보다 엘레나 페란테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카페와 서점이 있는 도시라는 점이 끌렸다. 나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런 장대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도시를 마치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처럼 오장육부까지 다 묘사해낼 수 있을까. 내가 나폴리 시장이라면 엘레나 페란테에게 매년 감사패를 줬을 것이다.


자정 즈음에 다다르자 나폴리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시끄러운 술집들로 소란스러워졌다.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파티가 열렸다. 겁 많은 나는 역 근처 가리발디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카프리섬으로 갈 예정이라 항구 근처에 숙소를 잡아놓은 참이었다. 숙소 근처 주택가를 걷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네 청년들이 파티에 한창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 스무 살도 안 돼 보이는 여자애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환히 웃으면서 내가 맨 배낭을 가리키며 쉬고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위엔 비슷한 나이 때의 친구들이 샹그릴라처럼 붉은색이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들어갔다면 나폴리의 <비포 선라이즈>가 되었을까. 어쩌면 내 눈으로 실존하는 릴라와 레누의 삶을 목격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우선 나는 에단 호크가 아니고 할 줄 아는 이태리어가 본 조르노뿐이니 밤엔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