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청주파수로 들리는 하하호호

공간 <지하철 환승역>

by 박민진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헤아려보니 그를 마지막으로 본지가 무려 육 년이나 됐다. '용케 단번에 알아봤네.' 그는 단정한 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눈에 익은 차림이었다. 직장 선배 결혼식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가벼운 인사말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의 옷차림뿐만 아니라 눈웃음도 내겐 익숙한 것이었다. 우린 둘 다 당황하기보다는 꽤 능숙했고 헤어질 때까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몸에 밴 말투와 제스처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안전하게 확보해냈다. 서로의 속내를 추측할만한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헤어졌다. '그래 다음에 기회 되면 보자.' 깔끔한 조우였다.


나는 기억을 되감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은 채 45도쯤 위를 보며 걷는 뒷모습이다. 평소 그는 목이 안 좋아서 늘 고개를 젖히며 앓는 소리를 냈다. 모두가 권하는 무난한 학교에 가기 위해 독서실에서 거북목이 되는 걸 감수했다. 늦은 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는 게 낙이었던 시절, 편의점 의자에 앉아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스카이 대학에 들어간 자신의 모습이 꿈꿨다. 하지만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 없는 서생들이 다니는 대학을 가고도 그의 목 통증은 계속됐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바랐기에 할게 많았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업했고 혼삿길도 챙겨야 했다. 그가 열심히 살수록 목은 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 삶이 늘 텅 비어있던 나는 뭐가 그렇게 할게 많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 건강한 목이 그 게으름의 영향인지도 몰랐다. 그는 기억하는 모습처럼 통증을 줄이기 위한 4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결혼식에서 5만 원짜리 봉투를 내고 뷔페에서 연어나 탕수육 따위를 집어먹으며 내 생각을 하려나.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그런 하루일까. 내 귀에선 비가청 주파수로 그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게 평화롭고 무난했던 일요일 오후의 소란이었다.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서로 부담 갖지 말자고 한 자리였다. 별생각 없이 그날이 다가왔다. 그제야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부담 없다는 것과 신경이 쓰이는 건 별개였다. 전화를 걸었다. 옷은 뭘 입지. 흰 셔츠에 면바지면 됐지. 무슨 말을 하지. 너 말 잘하잖아. 이게 무슨 면접이냐. 주의할 건 있나. 아니 그런 건 없고 그냥 싹싹하게 굴면 되지 않을까. 네 특기잖아. 마지막에야 퍼뜩 생각난 건 선물이었다. 처음인데 들고 갈 게 있어야 했다. 이건 묻지 않고 고민했다. 백화점을 갈까 하니 비가 왔고, 검색창에 '집 방문 선물'을 쳐봤지만 가당찮았다. 신경을 쓴다는 것과 시간을 쏟는 건 또 별개라서 결국 '무난함'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의 집 근처에서 화사한 꽃다발을 사고, 보관 중이던 값비싼 양주를 가져가면 딱 맞겠다. 누구처럼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누구처럼 양주 한잔을 하며 잠을 청하는 아버지를 둔 그가 고마웠다.


일요일에 역에 도착하니 한 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갑자기 수업 종이 울리는 것처럼 긴장됐다. 당최 무슨 연유인지 정체 모를 불안이 감돌았다. 주문처럼 외우던 말을 떠올렸다. '최대한 웃으면서 듣기만 하자' 과묵하고 듬직한 미스터 서글서글 역을 맡기로 했다. 그가 마중을 나오겠다는 걸 마다하고 미리 검색해둔 꽃집으로 향했다. 역에서 오 분 거리라던 아파트 단지는 거의 십오 분 가까이 돼서야 도착했다. 셔츠에는 벌써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데오드란트를 바른 게 신의 한 수였다. 개천 주위로 늘어선 벚나무가 흐드러졌다. 단지 주변으로 초중고교가 다 있었고, 소담한 공원과 회색 상가건물이 가지런했다. 전국 어디나 똑같이 생긴 아파트 단지였다. 익숙하고 뻔한 공간에 오니 불안이 사그라들었다. 그가 가족이 평생을 살아온 곳이라고 귀띔해줬던 게 생각났다.


누군가는 도시의 일률적인 면모에 질색하지만, 획일화된 환경은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내가 살던 동네랑 거의 똑같았다. 단지 앞에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만 봐도 기시감이 들었다. 복도식 아파트를 층마다 뛰어다니고, 단지 공원에서 뒤로 걷는 아주머니를 구경하며 주호랑 킥킥거렸던 기억. 상가건물 2층에 놓인 오락기를 하려고 동전을 잔뜩 가져왔다가 동네 일진 형한테 털린 기억. 문방구라기엔 거의 다이소에 가까운 다채로운 품목들. 샤프나 지우개 따위를 주인 몰래 훔쳐 쓰던 기억. 새삼스레 내가 그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보편적인 인식의 공간에 사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때 하나쯤 딸려 나오기 좋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난 적 없었고, 나도 못지않게 비슷한 환경을 거쳐왔기에 느낄 수 있는 유대가 있었다. 우린 둘 다 구김 없고 적당히 요즘 애들처럼 굴었다. 돌출부를 최대한 마모시키고 평탄한 관계를 구축하는 걸 미덕으로 삼았다. 그에게 유별난 건 오직 연애뿐이었다. 그는 마치 삶의 지루함을 연애로 풀기로 작정한 것처럼 분방한 연애 편력을 자랑했다. 그걸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아파트 상가에서 미리 검색해둔 꽃집을 찾아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사장님이 추천해준 꽃을 들고 나왔다. 요즘 제일 잘 팔리는 종이라고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이름도 묻지 않았다. 희고 우아하게 생긴 이 꽃 이름이 뭐더라. 사실 나는 꽃에 관심이 없다. 내게 중요한 건 '꽃'이라는 기호였다. 꽃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선물일 뿐이었다. 꽃을 보고 환히 웃는 그의 미소를 좋아했지, 꽃의 속성은 나와 무관했다. 꽃을 향한 미적 감각이 왜 죽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심코 문자메시지로 꽃 가격을 확인하니 삼만 삼천 원이나 찍혀있었다. 이 꽃이 그만큼의 값을 해줄까.


양손에 준비한 선물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 속의 매무새를 점검했다. 아무리 봐도 모든 게 평범한 남자였다. 무난함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숨고 있었다. 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여자가 내 앞에 서서 거울을 앗아갔다. 여자도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눈치였다. 색깔을 맞춘 핸드백과 웨지힐, 땡땡이 셔츠에 은색 펜던트가 달린 귀걸이를 매고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됐을까. 단정하고 무난한 차림이었다. '부담 없는 자리에 가시나 봐.' 여성분도 나처럼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같은 포장지라서 내가 방금 들른 꽃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3층. 초인종을 누르고 '저 왔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모니터에 잘 꾸며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년간의 회사 생활로 다져진 표정이었다. 이 미소라 하면 매일 아침 회의 시간마다 방패막이가 되어준 은신처이자, 커피를 한 잔 넘기면서 따분함을 이겨내는 가면이었다. 문을 열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4인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긴장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부터는 아주 쉬웠다. 아침에 잔뜩 마신 커피가 약간의 각성을 불러왔고, 묘하게 멍한 상태로 능숙하게 잘 해냈다. 꽤 건실한 청년 역할을 너끈히 소화했다. 인간이라는 종의 적응력이란 바로 이런 걸 이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할 말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이 나는 쉴 새 없이 말하고 화답했다. 어디서 봄 직한 이십 대 후반의 샐러리맨이 되어 그 나이 때의 남자라면 의례 할만한 말을 골랐다. 적당히 쑥스러워하고, 부장님 기쁨조로 활약할 때 익힌 음담패설도 써먹고, 음식이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들 하하 호호 재미나게들 웃었다. 여자 친구의 남동생이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 같은 풋내기가 나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아? 빨리 군대나 가라.' 여자 친구도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입을 살짝 벌린 얼굴로 신기한 듯 쳐다봤다. 어쩌면 좀 우스웠거나 살짝 안쓰러웠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나는 애쓰고 있었다.


잠깐 그의 방을 구경할 때 둘만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길게 키스했다. 귀여워서 그냥 둘 수가 없네, 라고 했다. 뭐가 귀여운 거지. 내가 애쓰는 게 보였나. 내가 연기하는 게 느껴졌나. 야마하 피아노 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이 놓여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습작 차 모조한 것들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내 복잡한 속내를 알아본 것 같아서 안심했고,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자연스럽지 못한 내가 되어가는 게 스스로 거슬렸다.


모든 게 예측과 다른 게 없었다. 뻔한 이야기와 함께 감상적이고 진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오갔다. 고리타분한 상투어가 난무하는 식사였다. 그의 가족들도 나 못지않게 진부했다. 사람 좋은 미소의 달인인 어머니와 인자한 미소를 지을 줄 아시는 아버님은 선을 지키는데 능통했다. 내 예상을 넘어서는 질문은 없었다. 서로가 불편해질 모든 가능성을 벗어난 대화였다. 거기엔 모종의 합의 같은 게 깔려 있었다. 당신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겠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린 품위를 지킬 것이다. 설사 내가 돌아간 후에 어떤 얘기가 나올지라도 지금 이 자리만큼은 예의를 차려야 한다. 이럴 때 인습이란 얼마나 편한 것인가. 인습은 어색한 사이에 가장 좋은 무기가 되어준다. 오늘 이 평범한 30평 아파트 거실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일반적인 의도 이상의 다른 의도는 담지 않는 조화로운 세계였다. 칼 세이건이 봤으면 찬탄을 금치 못했을 우주의 질서가 작동하는 시간이었다.


두 분은 등산을 즐기시는지 산에 찍은 사진들이 액자로 놓여있었다. 어쩜 이렇게 모든 게 다 전형적인지.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엔 어디서 봄직한 행복이 있었다. 어쩐지 두 사람은 이런 좋은 시절이란 금방 지나가고야 만다는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환히 웃고 있었다. 그 일요일은 그들의 사진처럼 화목한 가정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휴일 같았다. 끝까지 성실하고 도덕적이었다. 하도 미소를 지었더니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았지만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나는 시간이 늦어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나왔다. 여자 친구도 옷을 챙겨 입고 같이 나섰다.


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했다. 오후 내내 잘하려고 노력한 탓에 쌓인 피로가 극심했다. 옆자리의 그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의식이 요란한 나와 달리 모든 게 평온해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피로에 걸맞은 침묵이 우리를 맴돌았다. 같이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을 텐데 별 기억이 없다. 이후에 우린 얼마 못가 헤어졌다. 그날이 어떤 여파를 끼쳤는지 알 수는 없다. 근데 서걱거리던 이물감 속에 그 날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한 가정의 평범한 딸과 그리고 그의 번듯한 가족들. 거기에 적당히 어울렸던 나. 그날 우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느슨한 주색잡기에 탐닉하던 우리 데이트도 전과 같지 않았다. 별말 없이도 풍성했던 스탠드 불빛 곁도 더는 아늑해질 수 없었다. 어쩌면 그날은 우리 사이와 무관할지도 모른다.


그와 우연히 마주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인생이 얼마나 쉽게 전혀 다른 것이 되는지. 운명은 우연의 산물일 뿐인지. 이렇게 될 거였다면 인연이란 얼마나 우연에 불과한지. 많은 일이 반복되는 인생에 있어서 내가 겪은 우연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글로 늘어놓아도 끝내 알 수 없었다. 그와 겪었던 하루의 시간을 엮어서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늦잠을 잔 탓에 밤새 생각이 많아서 자꾸만 쓸데없는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 졌다. 침대에 누워 카톡에서 그를 살폈다. 어느 식당에서 환히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봄에 걸맞게 환한 카페 테이블에 그가 좋아하는 밀크티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