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최승자>
며칠 전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내 얘기가 나왔다. 나라는 사람의 평소 모습에 관해서. 서로 기억이 상충하는 가운데 난 우기기 바빴다. 누군가와 다툴 때 내 모습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녀석들은 내가 무게를 잡는다고 놀려댔다. 나는 나 자신의 객관화를 통하여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자신이 있었는데 영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녀석들은 나를 비웃기 바빴다. 장난인 줄 알지만 놀림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낯설었다. 다들 그렇다고 거드는 걸 보니 그게 내 모습이 맞긴 하는가 본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나를 분위기 있는, 뭔가 책과 잘 어울리는 소탈한, 가끔 재능을 보였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랐지만 다 틀려먹었다. 녀석들은 마치 내가 바라는 이미지의 반대말이라도 찾는 것처럼 날 묘사했다. 허세가 있고 좀 척을 하며 약간은 인위적으로 농담을 던지지만, 사실은 좀 냉소적인 구석이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난 계속 물어봤다. '정말 내가 그래? 그게 사실이야?' 수사에 숨어 있는 내 모습, 이미지, 그것을 둘러싼 어떤 풍경들에 관해 묻고 나를 재구성했다. 어쩐지 너무 뻔해 보이고 그럴싸하지만 지루해 보여서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원하는 건 유머러스하고 세심하며 다정한 남자인데, 현실의 나는 그것과는 완전히 멀어져 있는 건 아닌가 해서. 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살기란 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지금도 어디로든 변해갈 수 있지만, 어디를 가봤자 똑같을 거 같아서 걱정된다. 그래도 미세한 차이를 지닌 어떤 느낌으로, 오늘 해야 할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봤다. 뻔해지지 않기 위한 싸움처럼 느껴졌다.
좀 더 생각해보니 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내 이미지와 겹쳐서 보고 있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현실의 나를 외면했다. 그렇다면 그 존경의 이미지는 과연 누구일까. 잘 모르겠지만 시인인 것 같다. 시인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다정, 세심, 소탈, 책, 재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세상의 이면을 보고 두꺼운 구조를 해체해내는 사람이니까. 가령 시인 백석은 어떨까. 그는 잘생기기까지 했으니까. 내가 읽은 그의 평전에 따르면 시인 백석은 이름난 패션리더였다고 한다. 심지어 남들보다 10배가 넘는 명품 양말을 사서 신으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을 했단다. 배는 굶어도 구두는 닦고 집을 나서는 모던보이다운 태도다. 사진으로 접한 백석 시인의 외모는 누구나 한 번 보면 잠시나마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그냥 잘생긴 것과 다르게 시인답게 생겨서 더 좋다. 포마드를 잔뜩 바르고 무구한 표정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이런 미남자가 시까지 잘 쓰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1930년대 경성 시내를 활보하는 젊은 시인 백석의 모습은 영화 <모던보이>의 박해일을 떠올리면 적당할까. 이 영화의 감독 정지우는 "당대 최고의 모던 보이로 통하던 시인 백석의 헤어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마도 박해일이 캐스팅된 이유는 백석과 이미지가 닮아서일 것이다. 사진만 봐도 당시 뭇 여성들이 그를 얼마나 흠모했을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백석과 동시대에 활동한 여성 시인 노천명은 <사슴>이라는 시를 썼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백석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 관이 향기로운 너는 /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평소 수줍음이 타기로 유명했던 노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이 시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표현했다. 그런 풍문이 일견 당연해 보이는 건 백석 시인의 첫 시집명이 <사슴>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주변 문우들이 백석을 부를 때 사슴이라는 애칭을 사용했다니 이쯤 되면 너무 명확한 그린라이트가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잘생긴 시인이 되고 싶었던 거였나 보다. 화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뭇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차지하고팠던 거구나. 그러니 글은 잿밥이 되어버렸구나. 난 문학을 더럽히고 있네.
난 시인을 향한 이상한 존경의 마음이 있다. 내가 경외하나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자리한 그들을 무턱대고 우러른다. 백석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지만 내가 우러르는 시인이 한 명 더 있다. 스무 살 초입에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아는 시와는 완전히 다른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모습이 딱 예술가였다.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종종 시인의 산문을 읽고 그가 살던 청파동 골목을 걷기도 했다. 청파동은 도로가 헐고 굽이굽이 휘어져 올라가 있어 시인의 어휘처럼 곡절이 가팔랐다. 난 시인을 생각할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라는 시를 떠올린다. 시절은 살벌했어도 최승자는 들끓는 시구를 지닌 로맨티시스트였다. 하룻밤 사이에 열 번도 넘게 사랑을 쌓고 무너뜨렸다. 얼얼하고 매캐한 시구에 자주 책장을 덮고 멈춰 섰다. 작가는 청파동의 낡은 골목을 걸으며 스산한 감정을 그려놓길 즐겼다. 한때 연인이었던 이에게 짓이겨진 상태로 좁은 길에서 비틀거리는 몸짓을 듬성듬성 적었다. 치욕과 자괴가 군더더기처럼 매달려있어서인지 성긴 기분에 시달렸다. 떨치지 못해 버티고 서서는 다시 찾아올 낭만을 기대하며 기어코 집에 다다르는 시인의 굽은 등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난 그의 시를 읽고 청파동을 걸었다. 도회지의 휘황한 풍경이 보이는 지대가 높은 골목에 서서 고립을 만끽했다. 내 나름의 존경의 의식이었다.
나는 다음 수십 년 동안 성공이 불확실한 일에 매달려볼 생각이다. 슬픔과 괴로움 없이 늙기 위해서. 그리고 삶이 끝날 때, 좀 더 나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난 내 글이 지닌 패턴을 믿고, 그것이 쌓여 생각으로, 이야기로, 진실로 이어진다고 확신한다. 부끄럽지만 그것에 의지한다. 이런 느낌은 나 같이 평범한 이들에겐 드문 확신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