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꿈꾸던 한때

소재 <복수>

by 박민진

허름한 동네였다. 컴컴할 때 보면 곧 철거라도 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며칠간 그 동네를 매일 걷고 있다. 골목이 실종된 서울에서 이 동네는 신기할 정도로 길이 곱이곱이 나 있었다. 두리번거리면서 계속 걷는데 바람에 휘날려온 전단에 눈길이 갔다. 녀석은 머리 위까지 날아오르더니 내 앞에 툭 떨어졌다. "오픈! 초대박 세일! 헬스 등록하면 요가 필라테스 복싱까지 무료!" 복싱을 배워야 하나.

두 시간째 동네를 부지런히 훑다가 어느 허름한 빌라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뭘 하면서 기다리지. 나는 무슨 탐정이라도 되는 양 호수별로 우편물을 살폈다. 나는 그놈 이름을 모르면서도 우편물에 남자 이름이 나오면 다 외워뒀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반지하 방에서 분홍색 민소매 티를 입은 여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나왔다. 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헐렁한 옷을 추슬렀다. 난 어색해지지 않으려고 보던 우편물을 도로 넣고 팔짱을 끼고 딴 척을 했다. "개새끼 잡히기만 해라." 학교가 끝나고 이 동네를 계속 찾았던 건 그놈을 잡기 위해서였다.


난 학교가 끝나면 난 정처 없이 걷는 버릇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배회했다. 그날도 그렇게 지칠 대로 걷다가 익숙한 거리를 발견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롤러브레이드를 타다가 미끄러져서 머리를 꿰맸던 기억이 떠올렸다. 가파른 내리막을 보니 아찔한 기억이 비어져 나왔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중앙병원 수술대에 누워서 엄마 손을 꼭 잡고 다섯 바늘을 꿰맸다. 마취를 했다는데 생살을 째는 것처럼 아팠다. 그때 병원에 갔던 기억이 뭐가 그렇게 인상적이라고 그날도 그렇게 추억에 잠겨서 근처를 둘러보다가 두세 시간을 흘려보냈다. 날은 어두워졌고 배가 고파졌다. 그렇게 괜찮은 식당을 찾다가 허름한 골목길에 다다랐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작은 슈퍼에서 보름달 빵이랑 딸기우유를 사서 먹고 그냥 집에 갈 참이었다. 집에 가면 밥만 대충 챙겨 먹고 자는 척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슈퍼를 나오는데 한 남자와 부딪쳤다. 죄송하다고 속삭이면서 돌아서는데 녀석이 날 불렀다. 어이 학생 어른하고 부딪쳤으면 더 공손하게 사과해야지. 어린놈이 왜 이렇게 예의가 없냐. 아니 지도 딴 데 보느라 부딪쳐놓고. 짜증이 확 났다. 삐딱한 자세에 팔뚝엔 이레즈미식 잉어 문신에 발목 통이 좁은 건달 바지. 딱 봐도 양아치라서 난 자존심은 살리는 선에서 대충 사과를 한 번 더 하고 뒤돌아섰다. 최대한 대충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포인트였다. 약간의 존심은 챙겨가야 하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아니꼬운 표정은 보너스였다. 그렇게 몇 걸음 걸어갔나 '어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녀석에게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살면서 당한 첫 주먹이었다. 그전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먹으로 맞은 적이 없었다. 난 길바닥에 쓰러져서 정신이 혼미해진 가운데 녀석이 걸어가는 걸 눈으로 좇았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녀석은 심지어 휘파람까지 불며 지금 내가 서 있는 빌라로 들어갔다. 몸이 놀랐는지 벌벌 떨렸다.


그날 이후로 난 학교만 끝나면 그 동네를 찾았다. 꼬박 한 시간은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음에도 난 복수를 위해 기꺼이 폭염을 견뎠다. 수업 시간 내내 그놈을 만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거의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권상우스러운 복수극이었는데, 점점 더 현실감을 찾아가면서 개싸움으로 제압하기로 했다. 완력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녀석을 코브라 트위스트로 비튼 후에 사과를 받아내리라. 사과하지 않으면 신고하는 방법도 생각해뒀다. 아무래도 난 학생이고 먼저 맞았으니까 경찰이 내 말을 믿어주겠지. 그렇게 난 모의 시뮬레이션을 다 마치고 양아치 소탕 작전을 기획했다. 킬빌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독기 어린 눈빛으로 동네를 배회했다. 근데 이놈이 며칠째 나타나질 않았다. 빌라 근처에서 교복을 입고 얼마나 배회했던지 길 가던 아줌마가 오늘 또 왔다고 말을 걸기까지 했다. 잉어문신 양아치 이사 갔나. 여기가 그냥 여자 친구 집이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여자 되게 야해 보이던데. 깡패의 애인으로 딱 어울렸다. 신창원을 수배하는 사건 프로그램에서 본 살인자를 비호하는 애인들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난 좀 더 기다리기도 하고 다시 작은 슈퍼에 들어가서 보름달 빵을 샀다. 배가 너무 고팠고 날씨는 열대야였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지금 내가 뭐하나 싶기도 했다. 방아깨비 독서실에서 에어컨 틀고 공부하는 척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양아치랑 한 판 붙어서 실컷 패주면 속이 시원할까. 아니 오히려 실컷 더 맞으면 누구라도 내 속내를 들어줄까.


당시 처음으로 글을 썼다. 공개할 수 없는 공책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온갖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었다. 위험한 나이였고 아직 인간이 되지 않은 게 다 드러나는 상태였다. 당시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치기 어린 유서도 적어놓았다. 나는 죽을 건데 그게 가족 탓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나 지금이나 소심해서 내 뜻을 곡해할까 봐 자세히도 적었다. 내가 죽고 이 공책이 발견되면 부모님은 얼마나 난감할까. 세상에 불을 지르고 싶은데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삼류 작가처럼 난 누군가를 의식하면서도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파괴적인 글을 적어나갔다. 자살을 어떻게 할지도 다 정했다. 영화에서 본 대로 방 문틈을 막고, 번개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12알 먹고 누우면 편안하게 죽지 않을까. 소설에서는 그러던데 나도 될까. 생각은 많았지만 도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여름이었다. 양아치 너 임자 만났다. 죽으려는 놈과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난 아예 빌라 현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을 펴고 뭐라도 읽었다.


유년시절에 이런 허름한 동네에서 몇 년 산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전이라서 한창 허리띠를 졸라매던 때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좋았다. 미래를 향한 막연한 희망이 있었던가. 어느 날엔가는 엄마와 밤늦게까지 계속 걸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명절 때 큰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대단히 추운 날씨였는데 배도 고팠고 옷도 얇았다. 덜덜 떨면서 있던 나를 보던 엄마는 근처에서 뭘 좀 먹으려다가, 평소 가끔 들렀던 갈비탕 집이 닫혀있자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떠올리며 꾹 참기로 했다. 엄마랑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벌벌 떨면서 빨간색 광역버스를 기다렸다. 종합운동장 앞이었는데 그 많던 비둘기도 밤이 되니 하나도 안보였다. 어디 가서 자고 있을까. 그때 엄마가 춥지 말라고 바바리코트 안에 날 감싸줬다. 엄마의 허리를 안고 있을 때 온기와 냄새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죽기 전에 한 가지 기억만 가져갈 수 있다면 아마 그 기억이면 족하지 않을까. 나머지는 다 사라져도 크게 슬플 것 같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 양아치 새끼 내일 두고 보자.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대리석에 엉덩이가 배겨서 저릿저릿했다. 아까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여자의 집 창문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새끼를 위한 것일까. 그런 양아치도 저 여자를 사랑한다고 돈을 벌어다 주고 어른 노릇 남편 노릇하며 사는 걸까. 꼴에 그래도 되는 건가. 나는 양아치 녀석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창문 틈으로 여섯 시 내 고향쯤으로 보이는 호들갑스러운 텔레비전 영상이 설핏 보였다. 그 옆으로 맥주회사에서 준 요란한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배가 고파서 근처 기사식당으로 향했다. 당연한 듯 생선 백반이 주문으로 들어갔다. 혼자 밥을 먹기 편한 식당이다. 다들 지쳐 보이고 밥을 뜨기 바빠 주위를 볼 여력이 없어 보였다. 칠천 원에 고등어와 장조림이 나왔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뉴스를 보며 식사했다. 뉴스에서는 고위층 인사의 비리와 향응에 대한 내용이 흘렀다. 그런데도 생선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릇을 치우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어찌나 재빠른지 손님이 나간 지 10초 만에 새 테이블이 생겼다. 기자들을 피해 급히 들어가는 유력 인사의 발걸음은 그보다 더 날랬다.

식당 대각선 테이블에 갈비탕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연인이 보였다. 메뉴에도 없는 갈비탕을 시켜 먹는 걸 보니 단골이었다. 여자는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했지만 주인이 응답하지 않자 남자는 자기가 참이슬을 한 병 더 가져왔다. 그러더니 냉큼 여자의 옆에 앉았다. 난 두 사람을 보면서 난 거의 마시듯이 백반을 먹어치웠다. 서로 위로할 말을 찾다가 상대의 아픔을 건드리는 말로 화를 돋우는 게 다 들렸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시시한 얘기들로 골머리를 앓느라 지쳐 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는 그 동네를 찾지 않았다. 뭣 때문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뭐가 됐든 복수에 실패한 것이다. 양아치 새끼 운 좋은 줄 알아라. 부풀었던 볼은 다 가라앉았다. 엄마는 어디서 맞고 다니냐고 화를 냈고, 형은 누군지 말하라고 했다. 난 그냥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그 후로 얼마 못 가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부러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에 원서를 썼다. 곧 성인이 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혼자 낯선 도시에서 살기로 했다.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었다. 새로운 환경이 절실했다. 그런 양아치를 힘껏 때려주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게 필요했다. 요즘도 종종 그때 주먹맛을 떠올리곤 한다. UFC나 종합격투기 경기를 볼 때 더 그렇다. 며칠 전 추성훈이 한 일본 선수를 집요하게 때리는 걸 볼 때 느닷없이 현기증이 일기도 했다. 힘껏 뻗은 훅이 상대 얼굴에 제대로 들어가면서 나 역시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 둔중한 통증을 기억해낸 것이다. 녀석은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기에 교복을 입은 날 때려눕혔을까. 그 여자는 여전히 그 동네에서 살고 있을까. 남은 건 오직 제스처뿐이라 이런저런 말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