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알못'도 반려식물을 키울 수 있을까

#1 반려식물

by 박민진

난 식알못이다. 원예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내가 일주일에 식물을 보는 순간은 출근길 가로수길의 나무들과 저녁에 삼겹살과 같이 먹는 쌈채소 정도다. 내가 식물을 키우는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식물에 대한 고정관념도 고루하다. 은퇴 후에 소일거리로 가꾸는 정원, 텅 빈 집에서 전업주부들과 교감하는 이파리들, 기껏해야 여자 친구에게 화 풀라고 내미는 꽃다발 정도다. 내가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집에 식물을 들였을 땐 무척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선물로 준 스투키 화분은 처치 곤란이었다. 스투키는 처음엔 끈질긴 생명력으로 꿋꿋하게 잘 자랐지만, 사랑과 교감이 없는 관계라는 게 늘 그렇듯 차차 시들어갔다. 가끔 커피를 끓이다가 남은 물을 끼얹는 정도로는 생존할 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임을 한 꼴이었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위탁된 거였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난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하며 화분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 이후로 더는 식물을 키우고 살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야근이 잦고 주말이면 술자리에 가느라고 집을 비우는 내 팔자에 원예는 안 어울렸다.

1 붓꽃의 고고하고 도도한 매력을 보라.jpeg

이런 전과를 가진 내가 최근에 '환경부' 산하의 <국립생물자원관>의 의뢰로 자생식물 키우기에 도전하게 됐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이메일을 무시했다. 재범이 될 순 없으니 거절 답장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유튜브에서 개그맨 박수홍 씨가 우연히 키우게 된 '다홍이'라는 반려묘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그가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위로해준 딸 같은 아이라며 닭똥 같은 아이라고 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난 다홍이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반백이 될 때까지 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독거남의 마음을 녹여낸 비결이 뭘까. 말 못 하는 검정고양이가 어떤 요술을 부린 걸까. 고양이 한 마리가 독거인의 텅 빈 집을 온기로 채워내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덩달아 나까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가 준 관사에 살아서 반려동물은 꿈도 못 꾸던 나로서는 너무 부러운 일이었다. 내 처지에 반려동물은 어렵고,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고 속은 굳건한 자생식물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 상상해봤다. 반려 식물과 교감하며 조금은 더 푸르게 변화시킬 일상이 그려졌다. 이번만큼은 가족처럼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운명처럼 내 메일함에 도착한 '자생식물 키우기 프로젝트'를 덜컥 받아들였다.

9 배양토를 불리기 위해 따듯한 물을 부었다.jpeg

승낙을 하고 독거 신세를 벗어난 것 같아 종일 기분이 좋았다. 잘해볼 수 있다는 의욕이 생겼다. 고삐를 늦추지 않고 우선 인터넷으로 화분에 심을만한 자생식물을 알아봤다. 장식용 꽃이 아닌, 내 집에서 함께 살아갈 식물이라서 더 신중히 골랐다. 씨앗 쇼핑몰에는 무수한 종자가 있었지만, '붓꽃' 사진을 보자마자 이 꽃이 내게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색빛으로 점철된 내 일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일 것만 같았다. 붓꽃은 백합목 붓꽃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장점은 창가나 베란다에서도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는 점이다. 내가 물만 부지런히 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붓꽃이란 이름은 꽃봉오리가 먹을 묻힌 붓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영어 이름인 '아이리스'는 그리스 신화의 무지개의 여신인 '이리스'에서 따온 것인데, 헤라 여신이 충복 이리스에게 내린 축복의 숨결이 땅으로 떨어져 핀 꽃이라고도 한다. 붓꽃은 이처럼 동서양을 망라해서 도도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 종자가 택배로 도착했다.jpeg

나도 내 붓꽃에 의미 있는 애칭이 붙여주고 싶었다. 처음엔 꽃말이 '기쁜 소식'이라고 해서 '낭보'라고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했다. 시인 랭보처럼 강렬하고 매혹적인 기운을 뿜어내라는 마음도 있었다. 근데 퍼뜩 랭보가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37의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이름을 고민하다가,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에 집중적으로 그린 보라색 붓꽃 그림이 떠올랐다. 고흐의 불안한 영혼을 보호해준 맑고 강직한 이미지였다. 그래서 내 반려 식물 붓꽃의 이름은 '고흐'로 정해졌다. 따듯한 아를에 고흐에게 물을 줄 생각을 하니 무척 신이 났다. 긴 기다림 끝에 고흐가 활짝 핀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5 종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종일 물에 담가뒀다.jpeg

붓꽃 씨앗 40알과 흙, 화분 등의 원예 도구를 샀다. 난 소비의 요정답게 신속하게 가격은 보지도 않고 예쁜 것 위주로 골랐다. 앞으로 매일 볼 친구들이니 우선 예뻐야 했다. 처음 열어본 씨앗은 커피 원두 같아서 귀여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매뉴얼대로 종자들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가 두기로 했다. 물에 불리는 이유는 씨앗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붓꽃은 다 자라도 키가 1m를 채 넘지 않지만, 우리 고흐는 물을 많이 먹어서 장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늠름하게 휘지 말고 곧게 자라서 내 베란다를 빛내줘. 지금이 4월이니 아마 6월이면 잎 사이에서 꽃자루가 나와 끝부분에서 꽃이 필 것이다. 그때까지 하루 2회씩 물을 주며 나와 같이 먹고살아야 한다. 양육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6 내 마음에 드는 화분 두 개를 구매했다.jpeg

씨앗이 마흔 개가 있으니 장소를 달리해서 스무 알씩 두 군데 심기로 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화분 두 개를 구매했다. 제품은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 잘 구워진 '테라코타' 화분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회색과 황토색으로 골랐다. 고흐에게 동생이 생겼으니 두 번째 화분은 '테오'라고 명명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데다가 가난했던 고흐를 늘 지지해줬던 테오라면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분에 물이 부족할지 몰라서 늘 보충해줄 수 있도록 화분 받침대도 샀다. 하나는 서랍형으로 물을 받아내고, 하나는 그냥 넘치는 물만 받아주는 작은 받침대였다. 둘 다 사용해보고 장단점을 비교해볼 것이다.


이제 파종을 할 차례다. 파종할 흙을 신중하게 골랐다. 아무래도 화분이 집이라면 흙은 먹거리이자 침대이자 화장실이자 부엌이니까. 뛰놀 수 있는 터전이자 햇볕을 쬘 마당이라서 흙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가 고른 제품은 '그린코코쏘일' 배양토다. 이 제품은 화분 전용으로 물 배분성과 통기성에 강점이 있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제품이다. 난 포장을 뜯고 흙에 따듯한 물을 부어서 부풀기를 기다렸다. 흙에 영양분이 많아서인지 걸쭉하고 구수한 냄새가 났다. 다 부푼 흙을 화분에 담고, 씨앗을 놓고 흙을 5mm로 덮었다.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쉴 수 있도록 놔줬다. 베란다 창문도 살짝 열어서 신선한 바람을 쐴 수 있게 해 줬다. 이제 파종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발아를 시작할 것이다.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흙이 마르지 않게 매일 고흐와 테오에게 제때 물을 줘야 할 것이다. 마음만 급해서 꽃이 필 즈음 놔줄 수 있는 식물 영양제도 사뒀다. 발아한 붓꽃이 한 달 후 큰 화분이나 화단으로 옮겨질 때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오늘부터 같이 산 지 1일이 되었으니 동거 식물과 규칙을 정했다. 우선, 하루 두 번 출근 전과 후로 관수를 충분히 해줄 것이다. 외출이 길어지고 아침에 너무 정신이 없으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꼭 챙기기로 했다.

10 고흐와 테오를 담은 화분을 창가에 내놓았다.jpeg

화분이 이제 베란다에 놓였다.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이다. 이 작은 식물을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우거진 나무의 시작도 잣은 씨앗이었듯이 내 뻑뻑한 일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기 위해서는 씨앗과 교감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여전히 내가 감당할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식물도 엄연한 생명이라는 점에서 겁도 난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고흐와 테오의 성장일기를 쓰며 텁텁한 일상을 적셔볼 생각이다. 늘 적막하기만 했던 내 집이 꽃내음이 나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말 못 하는 식물이지만 같이 먹고 자고 대화를 하며 내 짝처럼 아껴주고 싶다. 그러다 보면 차가운 일상의 온도도 점차 올라가지 않을까. 구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기대를 바란다.


커버사진 : 고흐가 말년에 그린 붓꽃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