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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01. 2017

낯선 장소가 주는 뭉클함

영화 <경주>

누구에게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시가 있다. 물론 따사로운 햇살일 수도 있고, 암흑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어떤 도시를 특별하다고 꼽을 때는 이성과의 추억 때문일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의 제목 역시 굳이 <경주> 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나완 가깝지 않은 <경주>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간을 보시라.

중국에서 교수를 하는 남자 최현은 갑작스럽게 죽은 선배의 장례식 참석차 어느 도시를 찾게 되는데, 문득 그 주변의 경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는 몇 해 전 전통찻집에서 봤던 춘화 생각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아마도 옛 연인이었던 여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제 신경주 KTX역에 내린다.

영화 경주가 내 맘을 가져간 지점은 불명확하다. 그냥 편안한 차림의 교수 최현이 가방 하나 짊어지고, '신경주'역에 내릴 때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작년 부산영화제 때 부산역을 내릴 당시의 설레는 기분이 떠오르기도 했고, 뭔가 이상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흥분을 최현과 공유하는 느낌이 좋다. 역에 내려서 최현은 자전거 하나를 빌린다. 그리고 '보문호수'와, '고분능', '전통 찻집'을 여행한다. 딱 이대로가 좋아요, 다른 일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난 장률 감독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시점부터 최현 감독에 완전히 동화된 나는 그저 이 도시에서 딱 이 정도만 둘러보는 것이 좋을 것이란 바람을 가졌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최현은 이 도시에서 오래된 추억이 있음을 기억해낸다. 최현은 먼저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 지인들과 놀았던 찻집을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사실 영화 경주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모를 착란의 순간들이 가득한 영화다. 최현이 술 먹고 꿈을 꾸는 것인지, 그가 낯선 역에서 하는 상상인지 구분도 없다. 진짜 현실 같은 순간들도 있고, 참담한 비극을 종용하는 어느 단편소설처럼도 보인다. 어느 순간 심각해지고, 가끔은 웃기기도 한 이 영화는 굳이 현실과 그 밖의 관념에 대해 구분 짓지 않는다. 그런 점이 최현이라는 캐릭터의 엉뚱함과 닮아있어 이물감 없이 극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는 낯선 곳을 여행할 때면 낯선 여자와의 로맨스, 옛 연인과의 하룻밤을 꿈꾼다. 하지만 여행을 좀 하다 보면 안다, 결코 생길 리 없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현은 부지런히 여자들을 찾아 나선다. 춘화를 찾는다고? 그게 변태나 할 짓이지 목적은 여자임이 분명하다. 최현은 결국 찻집 주인을 꼬시는 데 성공한다. 최현은 자신이 북경대 교수라는 점을 본의 아니게 이용하고, 그가 교수라는 것을 안 이후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찻집 주인 '공윤희'는 도발적이다. 윤희는 자신의 집까지 본인을 짝사랑하는 동네 경찰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최현을 끌어들인다. 이름바 공권력에 저항한 욕망이다. 하지만 그 새벽 최현은 아내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헛힘만 쓰다가 집을 나선다. 이후 칼국수를 홀로 먹는 최현의 표정이 퍽 인상적이다. 

영화 경주

이 분명치 않은 영화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가 찻집에 들러 찾은 춘화는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내와 사이가 멀어져 예전 같지 않고, 친한 선배가 죽었으며,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 속물이 되어버린 친구들과 학문에 대한 애착마저 떨어져 괴로운 심정이다. 그 누구는 그를 보고 장군이라고 말할 만큼 학자로서 그를 존경하지만, 자기 자신의 속물성에 역겨운 맘이 든다. 인생이 너덜너덜해진 최현은 한 전통찻집에서 본 야한 그림에 의지해 현실의 형태를 가공한다. 춘화는 마치 그를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되고, 낯선 장소를 헤매는 최현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이건 마치 장률이 만든 인셉션은 아닐까. 그 증거로 장례식, 모녀의 자살, 젊은 폭주족들의 사고, 여정의 낙태와 찻집 주인 전남편의 죽음까지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상징이 지천에 깔려있다. 죽음과 폐허가 가득한 이 참혹한 세상에서 그가 의탁할 곳은 기억 한 구석의 춘화 하나뿐이라니. 과거에도 장률의 영화에서 가장 명징한 주제는 죽음이었다. <두만강>도 그랬고, <이리>도 그랬다. 죽음이 남긴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견디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경주는 좀 다르다. 박해일, 신민아라는 스타 배우의 캐스팅 때문이 아니다. 극은 시종일관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상이 가득해 이물감 없이 빠져들 수 있다. 그 누구의 오해처럼 영화로서 경주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박해일의 능수능란한 상황 연기는 극의 리듬감이 처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특히, 고분능에서 진행된 세 남녀의 산책길은 남녀 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노는 기대치 않은 웃음 포인트다. 혼자 칼국수를 먹다가 여정의 의처증이 심한 남편이 자신을 습격할 것을 예상해 피신하는 모습 역시 킥킥거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어쩌면 홍상수의 초기작들을 보는 재미를 가지게 한다.

영화 경주

장률은 장률의 언어 안에서 작동한다. 삶이 지루하고 반복될 때면 본의 아니게 하는 거친 상상들이 있다. 다시금 앳된 시절이 찾아오길 기대할 수 없기에 현재를 인정치 않는 심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난 최현처럼 낯선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어 졌다. 낯선 곳에 내려 국밥을 먹고, 숙박업소 여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모퉁이 치킨집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문득 난 시간이 지난 후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 낼지 무척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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