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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싹 Oct 16. 2024

직장 상사 이야기

첫 직장 첫 부서에서 나는 팀 부적응자였다. 난생 처음 은따를 겪으며 수치심, 모멸감, 증오, 분노의 감정을 수시로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를 또 살아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웠다. 그렇게 1년 반을 견디고 있을 때 발령이 났다. 빡센 부서로 간다며 안쓰러워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나는 날아갈 것 같았다. 여기서만 벗어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가게 된 영업지원팀의 팀장님이셨다.


새 팀에서는 같은 월급이 억울할만큼 일이 많았지만 이제야 정상적인 조직과 팀원들을 만난 나는 편안해지고 밝아졌다. 직장은 원래 이런 곳이었던 것이다. 팀장님은 키가 크고 머리가 약간 벗겨지셨는데 표정변화가 거의 없으면서 냉철해보였다.(한 동기는 '소도둑' 같다고 했다) 오자마자 사수를 정해주고, 꽤 많은 일을 주셨는데 '아직 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일 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름 열심히 일했고 일과 팀에 잘 적응했다. 팀장님도 그런 나를 알아주고 시간이 지나며 많이 아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이 분이 소문대로 엄청난 사람임을 두 눈으로도 확인하게 되었다. 탁월한 업무능력과 책임감, 문제해결력, 융통성, 합리성, 냉철함... 당시에도 승진이 빨라 부장 직급이셨는데 임원 후보인 것은 당연했다. 이런 능력자 분이 덤으로 섬세한 성품에 공감능력도 뛰어나셨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의미있는 치유 경험(?)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마음 편한 곳이라 해도 일이 너무 많아 지치기도 하고 실수도 해서 먼 곳의 지점장님에게 전화로 큰 욕을 먹기도 하던, 그런 시기였다. 당시의 그런 나를 팀장님은 읽으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안쪽의 넓은 책상으로 나를 부르시더니 뜬금없이 화분을 심자는 것이었다. 흙이 담긴 쌀자루 비슷한 주머니와 삽, 화분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얼떨결에 흙을 퍼는 것부터 뒷정리까지 돕게 되었는데 심은 것이 씨앗이었는지 어린 식물이었는지, 심으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화분이 내 책상에 놓이자마자 화장실로 뛰쳐들어가 한 동안 펑펑 울었던 기억만 생생하다.


추측컨대, 이 화분은 앞으로 너의 화분이고 잘 길러보자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치유적이었던 순간이었다. 끔찍한 인간들을 안 만나는 팀에 왔다는 만족감에 묻혀있던 감정들이 터져나왔다. 잘 적응했더라면 안와도 되었을 빡센 부서로 온 것에 대한 서러움, 후회, 슬픔 등등. 그리고 그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팀장님에 대한 감사함. 나를 응원하는 것 같은 상징적인 화분. 그제서야 다른 팀원들 책상 위에 이미 있던 화분들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은 직원들의 성장도 바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곳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성상을 접하면서 중년 남성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도 차츰 완화된 것 같다. 억세고 거친 아버지의 성격이 무의식 속 중년 남성에 대한 표상이었는데, 이러한 표상이 결정적인 '교정적 정서체험'을 통해 녹았다고 할까. 상담심리대학원을 다녔어서인지 팀장님의 능력보다 치유적이었던 성품과 행동들이 가끔씩 떠오른다. 아주 가끔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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