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E, CRE
만 50세 초식남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컴퓨터 가게를 하던 순한 남자이다.
결혼 안 하고 가족은 누나와 엄마이다.
각자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2023년 5월 눈이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았고
진단은 당뇨병성 망막병증이었다.
이 남자는 당뇨를 진단받았으나 몇 년째 치료받고 있지 않다가 당뇨합병증이 다 온 상태였다.
우리 병원 내분비내과에서 당뇨진단을 받았고,
만성신부전 5단계로 신장내과인 나에게 협진이 왔다.
피검사는 전형적인 말기 신부전 환자의 랩이었다.
[ Hb 7.3 , BUN/Cr 46/4.52 , serum albumin 2.4 UA: protein 3+ ]로 만성신부전 5단계였다.
"투석전단계 만성신부전 5단계예요. 여기서 더 나빠지시면 투석을 하셔야 해요. 앞으로 당뇨 관리 잘해봅시다 "
갑작스레 중증 환자가 된 이 남자와
같이 온 보호자 엄마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환자는 급격히 나빠졌고
혈액투석도 시작하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급성 뇌경색도 와버려서
하지 위약감이 심해져서 전반적인 컨디션은 굉장히 많이 악화되었다.
당뇨병성 합병증으로 온몸의 큰 혈관, 작은 혈관들이 다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엄마는 온 힘을 다하여 아들을 치료하였다.
면담할 때면
"저도 일을 해야 해서 아들을 돌 볼 수 없어요 "하다가도
" 어쩌겠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남편 없이 혼자 키워서 저리 약한가 봐요. 4년제 대학까지 보내고, 직장을 못 구하길래 달세방 얻어서 컴퓨터 가게 차려줬더니
코로나 터지고 돈도 못 벌고 저리 되어버렸네요 " 하다가도
" 아들 간병하니 저도 돈을 못 벌어서 병원비가 없어요. 지원이 가능할지요? "
" 사회사업실에 병원비후원을 신청했더니 아들 앞으로 2500만 원 예금 들어놨는데 이것 때문에 지원이 안된다네요. 나 죽고 나면 저 못난 아들 살라고 들어 논 건데 참.. 원망스럽네요"
하다가도
" 이제 2500만 원 깨서 치료하기로 했네요..."
하다가
" 우리 과장님 제발 잘 부탁드립니다" 하다가...
매일매일의 회진 시간은 엄마의 새로운 하소연과 속사정을 알게 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아들에 대한 사랑도 느끼게 된다.
다행히 환자는 점점 걷는 힘도 좋아져 무사히 퇴원하고
통원하면서 외래 투석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치료한 지 10개월에 접어든
2024년 2월의 어느 날
환자는 좋아진 몸 상태를 과신하면서 목욕탕을 갔다.
발뒤꿈치에 상처가 나있는 상태로 말이다.
발뒤꿈치의 상처는 대중탕의 오만가지 잡균이 붙었는지 점점 심해졌고, 당뇨발의 진행으로 발 절단의 위기까지 와버렸다.
젊은 나이의 다리 절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환자와 보호자는
'고압산소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 가서 치료를 했고
그 병원에서 치료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소동이 벌어져서 다시 전원을 오게 되었다.
항생제 치료 및 수액 공급, 혈액투석 치료를 적절히 하면서 다행히 의식도 절단위기의 발상처도 극적으로 좋아져
잘 걷기만 하면 퇴원을 고민하게 되는 4월이 왔다.
그러나 당뇨발을 동반한 말기신부전 환자는 시한폭탄과 같다...
안심은 금물이었다.
일주일 전 이 환자는 자다가 갑자기 질식사의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옆에서 간병하던 엄마는 그날따라 느낌이 이상해서
벽에 기대서 졸고 있었는데
환자가 갑자기 꺽 하더니 숨을 쉬지 않더라고 했다.
놀랜 엄마는 이대로 아들을 보낼 수 없다고 울부짖었고
응급조치 (심폐소생술과 기관삽관술)로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다.
엄마는 놀랜 마음으로
" 내가 그날 잠을 깊이 잠들었다면, 아들도 그 길로 가버렸을 텐데..."라고 수차례 이야기하지만
다시 좋아진 아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다행히 인공호흡기 치료는 끝내고 자발호흡 및 의식은 완전히 돌아와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아들은 오랜 병원 생활로 VRE 균이 검출되어 VRE 격리방에 갇혀 치료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 사실이 엄마는 안쓰러워서인지 병실을 구석구석 직접 청소하신다.
오늘 아침도 이 환자의 병실은
입구부터 창문까지 민트 치약향이 솔솔 풍기며 반짝 인다.
민트향 치약으로 닦아낸다고 VRE균이 없어질리는 없지만
VRE 균을 없애려고, 병실바닥이 광이 나도록 다 닦아내고 간병 중인 엄마에게 속으로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