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편지

너와 걷는 기적_01

by 빨간나무



“하늘을 나는 것만이 기적인 줄 알았습니다.


구름 위를 떠다니고,

물 위를 걷는 것만이 기적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사실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뾰족한 주삿바늘의 공포 속에서

목 놓아 울다가 끝내 목이 쉬어버린

손자의 측은한 모습을 보면서도

감사할 수 있으니,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행복이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흩날리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적이 바로 내 곁에서, 내 앞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남에도

기적을 알지 못하는

우리네 삶이 참으로 어리석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 기적 같은 기적 속에서 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에서 가장 멀리 있고

땅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기적의 출발선입니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건너

이제 그동안 멀어졌던

일상으로부터 복귀를 해야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일상으로의 도피는 사실은

일상으로의 깊은 잠입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한 잔의 커피로 가슴을 데우고,

좋은 책을 보면서 말라버린 감성을 되찾겠습니다.


절망은 희망을 잉태하고,

불가능은 무한한 가능을 내포한다는

아이러니를 깊고 넓게 새기겠습니다.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결국은 범사에 감사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선물합니다.”


- 모모의 할아버지 -










아버님께서는 막내를 누구보다 사랑하셨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보고 싶어 하셨다. 자주 보러 오셨고 헌신적으로 놀아주셨다. 그래서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매우 좋아한다.


그렇기에 막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나서 아버님은 식사도 못 하셨다. 기력이 없으셨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특히 더 힘들어하셨다.


그 마음을 알기에 치료 사진 중 웃는 모습만 선별해 보여드렸었다.


집중치료 기간 동안 아버님은 매일 아침 기도하며 짧은 편지를 보내주셨고, 그 편지가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시간 속 큰 위로가 되었다.



60년이 넘게 차이가 나지만 영혼의 단짝...♡




긴 입원 기간 동안 시부모님께서 첫째와 둘째를 잘 돌봐주셨고, 덕분에 나도 막내를 잘 간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정성 어린 돌봄으로 아이들은 잘 컸다.



그리고,

드디어 집중 치료가 끝났다!!


최근에는 입원 짐을 모두 정리했고 부모님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아직 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작년 이맘때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10월 즈음부터 자주 열이 나고 아팠다. 12월에 진단을 받았고, 작년 크리스마스 날에는 쇼크로 의식을 잃는 긴급한 상황도 있었다.


좌절과 절망에 눈물이 마를 줄 몰랐다.


올해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면서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때와 비교해 오늘은 기적처럼 주어진 날이다.


집에서 자유롭게 안아줄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차려줄 수 있으며, 수혈을 받지 않아도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사함이 밀려온다.


요즘은 막내에게 양치를 하자, 영상 시청을 줄이자, 고 잔소리를 할 정도이다. 투병이 아닌 다른 걸로 아이와 실랑이를 하게 되다니.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진 않았는지 반성며 아버님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봤다.


아이들이 함께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바로 기적임을 마음에 새고 있다.




할아버지의 편지처럼

기적은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