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백혈병 투병 300일이 지나고

너와 걷는 기적_02

by 빨간나무




투병 10개월이 지나면서 우리보다 먼저 집중치료를 끝낸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 아이들은 병동에서 사라졌다.


지방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쓰던 6살 아이는 이제 백개의 밤을 집에서 잘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때 우리는 막 진단을 받았을 때라 관해, 공고, 유지 같은 치료용어를 아예 몰랐다.


그래서 백일이나 집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놀라웠다. 막내도 그렇게 되는 걸까, 저 아이처럼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까 하며 배웅하며 눈물이 났다.




시간이 흐르고 집중 치료 중반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느꼈을 때 7살 아이가 이번에 퇴원하면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교수님께 먹어도 되는지 여쭤볼 거예요! 이모 여기 보세요!”


“와, 정말 축하해. 좋겠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더 건강해지자!”


큰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젤리, 포도, 아이스크림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아이는 항암부작용으로 두피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도 반들반들 빛이 났는데 눈은 별빛보다 더 빛났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집중 치료를 다 마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32주라는 주어진 일정을 잘 끝냈다.


십수 번의 수혈, 이십여 번의 검사, 두 번의 쇼크, 그리고 폐렴과 고열로 3주간 항암을 멈춘 적은 있었다. 힘들었지만 해냈다.



마지막 입원까지 마치자 정말로 이제 12주 동안은 입원치료가 없다고 했다.



그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생후 24개월에서 33개월까지, 막내는 병원에서 다시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었다. 힘들었지만 또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나 역시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어쩔 때는 병동이 더 편했다. 집에 있어도 쉴 수 없었고 불안했기에. 힘들었지만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완전 유지치료가 시작되면서 변한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입원 캐리어를 풀었다. 다음 입원을 위해 내 옷을 세탁해 넣고 놀잇감과 간식, 생수 등을 주문해 놓곤 했다. 오늘은 입원하려나, 아침이면 전화를 기다렸고 연락이 없으면 애가 탔다.


“엄마, 병원에 언제 가?”


아이들이 아침마다 물었다. 등교할 때 배웅했다가 갑자기 입원 자리가 나서 병원에 가면 인사도 못 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에 엄마랑 동생이 없어진 소식을 듣곤 했다. 그 빈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러나 균형이 맞지 않았던 시간들을 이제는 끝내게 되었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다 정리해 버렸다.


“엄마랑 동생이랑 이제 병원에 안 가. 백 번 자고 갈 거고 가게 되어도 3~4일 만에 금방 올 거야. 이제 오랫동안 집에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면서 울컥했다.


다음으로 고된 치료에서 비롯되는 걱정에서 잠시 해방되었다. 전신마취를 비롯해 센 항암제를 투여하니 언제나 걱정을 했다.


이번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갑작스러운 열, 수혈 부작용, 마취 후 응급 상황 등 한 번 겪은 일에 대비하고 있으면 다음에 또 새로운 일이 생겨났다. 아예 준비를 할 수도 없는 일이 느닷없이 닥치면 또 허둥지둥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저 옆에서 잘 해내기를 기도하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마취는 12주마다, 9번 남았고 새로운 항암제도 없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혈액 수치상 이상이 없으면 골수검사도 없다고 하셨다. 제발 그리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막내는 많은 부분에서 예전과 같은 허락을 받았다. 특히 음식의 자유를 얻었다. 음식으로 인해 탈이 나거나 균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집에서도 금지된 음식들을 형들은 숨어서 먹었고, 막내가 먹으려 하면 안 된다고 말렸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아무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하니, 막내가 먼저 물었다. 안된다고 하면 먹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먹는 간식들을 막내는 먹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나으려면 지켜야 했다.


이제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나서 10개월 만에 ‘요구르트’를 먹었다. 그뿐 아니라 샤인머스캣, 치즈,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그리고 케이크도 먹었다.


암세포가 5% 미만인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혈액수치도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막내는 정말 행복해했다.



외래 진료를 다녀와서 수치가 좋으면 매일 산책을 하고 가족과 나들이도 갔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병원이 아닌 곳에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다섯 식구가 함께 놀러 갔다. 장소는 서울대공원이다. 코끼리 열차와 리프트를 타고 호랑이, 코끼리, 하마, 기린, 악어 등을 만났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다. 집에 와서도 동물들을 계속 말했다.



집과 병원만 다니다 이제 어딘가 나들이를 나간다니 감격스러웠다.





완전 유지 기간 먹는 약들인 푸리네톤, MTX, 셉트린..


알람을 맞춰두고 매일 항암제를 먹이고, 외래 진료를 2주마다 가고 있다. 나을 수 있을까 걱정하던 시간들이 이제는 나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가족이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조금씩 누리고 즐기며 살기에 시간도 아깝다. 그래서 더 신나게 지내려 한다.


완전 유지요법이 시작되고 우리의 삶은 변하고 있다. 지금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할아버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