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걷는 기적_03
육아는 떼기의 연속이다.
모유 떼기, 이유식 떼기, 젖병 떼기, 쪽쪽이 떼기, 기저귀 떼기 등등... 가끔은 수월하고, 대부분은 힘들게, 떼고 떼어낸다.
이 과정은 '떼다'의 여러 가지 뜻 중에 [성장의 초기단계로서 일상적으로 하던 일을 그치다.]에 해당한다.
이렇게 유아기의 많은 것들을 떼고 나면, '떼다'의 다음 뜻으로 넘어간다.
한글 떼기, 구구단 떼기, 파닉스 떼기 등등.. 이제 [배우던 것을 끝내다.]는 뜻에 해당된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다양한 ‘떼기’를 경험했다.
그런데 소아암 투병 중인 아기의 기저귀 떼기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제를 맞닥뜨리고서는 일단 미래의 나에게 미뤄두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수액이 매우 빠르게, 많이, 밤새도록, 떨어진다. 소변량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빈 기저귀의 무게는 37g이다. 젖은 기저귀에서 37g을 빼서 계속 기록해야 했다.
소아암 환아에게 섭취량과 배설량, 몸무게의 증감은 중요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기저귀는 치료용품의 연장선처럼 여겨졌다. 떼는 시기는 다가왔지만 시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음 입원을 위해 왕창 기저귀만 주문해 두었다.
집에서 기저귀를 떼자고 신호를 보냈지만, 입원하고 돌아오면 다 헛수고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편했기 때문이다. 어수룩하게 떼는 중에 입원을 하면 그 뒤처리를 또 해야 하니 간병 중 늘어난 일만큼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소아암 병동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막내는 병원에서 24개월에서 36개월로 자랐다. 이제 조금씩 기저귀가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진작 떼었을 터였다.
그래서 드디어 진짜 시작해 보자 마음먹었다. 이제는 미룰 수 없었다.
첫 단계로 배변 팬티와 소변기를 주문했고, 기저귀를 벗겼다. 막내는 처음엔 변화를 두려워해 기저귀를 떼지 않으려 했고 팬티도 싫어했다.
하지만 ‘형들처럼 하자’고 제안하자 기분 좋을 때 소변기를 시도했고, 좋아하는 자동차 그림 팬티를 입혔다.
한 고비만 넘기자 예상보다 훨씬 빨리 적응했다!!! 며칠 만에 낮에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완벽한 조절을 해냈다.
잠잘 때와 대변을 누는 순간엔 아직 기저귀를 쓰지만, 자연스럽게 형들처럼 이별할 것이다. 막내 전용 소변기에 노란 오줌이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백혈병 진단으로 육아가 아닌 간병일기로 바뀌었지만, 나는 원래 아들 셋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였다.
육아가 힘들어 많이 지쳐 있었다.
기저귀 떼기도 쉽지 않았다. 첫째 똥기저귀, 둘째 밤기저귀 떼기 모두 오래 걸렸고 실수가 잦았다. 매일 밤 여러 번 깨서 젖은 옷과 이불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빨아 말리고, 가짜 변기를 이용해 훈련하며 아이를 달래고 협의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치면 화가 났고,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소리도 질렀다.
만약 셋째가 아프지 않았다면 세 번째 기저귀 떼기도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달라졌다. 기저귀 떼기를 시도할 수 있고, 발달단계 중 하나를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배변 팬티를 세탁할 때마다 감동하고, 소변기에 남은 노란 오줌을 보며 감격하고, 물개 박수가 절로 나온다. “셋째야, 잘하고 있어. 정말 대단해.” 진심으로 축하하고 칭찬해 준다.
셋째라서일까, 아픈 아이라서일까, 이유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하나하나가 눈물 날 만큼 기적 같은 순간이니까.
셋째가 내게 와서 많은 것을 알려줬다.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다시 육아의 시간이 길어짐에 감사하다.
이렇게 평범하게, 다시 육아'만'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