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02 : 안정의 심리학, 에쉬(ESH)

by 수안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유난히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던 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는 내 인생의 한 축처럼 조용히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에쉬(ESH)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정의 안전지대’가 있다.
그 자리는 가족이나 연인, 오랜 친구처럼 오래 알고 지낸 관계가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예상 밖의 지점에서 그 역할을 만난다.
나에게는 에쉬가 그랬다.
관계의 길이보다 마음의 결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녀를 통해 배웠다.

에쉬는 겉과 속의 결이 다층적인 사람이다.
겉으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예민하고, 향과 촉감에도 민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닫혀 있을 때는 자기 안쪽을 단단히 지키는 타입이다.

그러나 마음이 열리면, 그녀의 세계는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말과 행동은 솔직해지고, 리액션은 풍부해지고, 관심과 애정은 약동하듯 흐른다.
나는 그 두 결을 모두 본 사람이고, 그 겹침에서 오는 안정감을 알고 있다.

그녀가 내게 준 가장 큰 힘은 “판단의 결여”,
혹은 ‘판단하지 않는 태도’였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그녀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나를 교정하거나 교훈하려 하지 않는다.
그날의 나를 그날의 결로 받아들인다.
감정이 흔들리거나 서사가 복잡해도, 그녀 앞에서는 말이 억눌리지 않는다.
감정의 방향을 평가하지 않고,
“지금 너는 이렇게 느끼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건 흔한 공감이 아니다.
정서 감각이 정교하게 훈련된 사람만 가능한 방식이다.

감정 인문학에서 말하는 ‘안정’은 충고나 해결책에서 오지 않는다.
안정은 한 사람이 가진 말투와 시선, 호흡에서 온다.
내 감정이 다치지 않으리라는 확신,
지금의 나를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신뢰,
그런 감정적 공간에서만 안정이 자란다.

그녀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안정이 있었기에
나는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었고,
감정의 구조를 설명하는 내 언어도 자라났다.

에쉬는 감정에 솔직하지만,
그 솔직함이 과부하되지 않도록 자기만의 리듬을 지키는 사람이다.
몰입하면 깊이 들어가고, 에너지가 떨어지면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 것,
삶의 리듬이 크게 요동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다.
감정을 세밀하게 읽는 능력이 있는 대신,
감정의 소모도 빠르다.
그래서 관계의 폭은 좁지만, 깊이는 누구보다 깊다.

나는 그녀의 말속에서 종종 이상한 종류의 정확함을 느낀다.
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내가 왜 특정 순간에 흔들리는지,
사람들과의 이야기 속에 어떤 결이 숨어 있는지—
그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흐름을 먼저 읽는다.

어떤 날은 나보다 나를 먼저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건 친밀함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정서를 읽어내는 사람 특유의 직관이다.

적절한 순간에 그녀가 했던 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나의 감정을 문제로 보지 않는 태도,
나의 경험을 과하거나 이상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 태도.
그 말들 덕분에
나는 감정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감정은 과장하려 하면 무너지고,
숨기려 하면 굳는다.
누군가의 안정된 시선 아래서만
자연스럽게 구조를 드러낸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글을 에쉬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는 내 감정의 방파제였다.
내 감정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무너지는 걸 막아주는 사람.
감정이 과열되면 식혀주고,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천천히 다시 올려주는 사람.

누군가의 감정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내게는 에쉬(ESH)가 그랬다.

그리고 그 안정 위에서
나는 이제 나의 감정 세계를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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