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다
감정에는 때로,
삶의 방향을 은근히 바꿔놓는
파동이 있다.
나에게 BTS는 그런 문을 열어준 존재였다. 처음엔 아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아이돌은 몰라도 아미는 알아야 한다더라.”
누군가 건넨 이 말에 난 왜 반응하게 되었을까.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팬덤’이 이름보다 먼저 회자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유튜브 검색창에 ‘BTS’를 적었고,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흐름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영상을 보고 또 다른 영상을 보았고,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길을 안내했다.
그들의 춤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서사처럼 보였고,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은 마음보다 먼저 감각을 흔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무언가 정확히 닿았다”는 순간에만 흐르는 눈물이었다.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은 건 음악보다도 그들의 ‘서사’였다.
BTS의 WINGS 앨범은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상징들을 품고 있었고, 청춘의 어둠과 그림자, 욕망과 성장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 『데미안』을 읽고 아브라삭사스라는 이름 앞에서 오래 멈춰 섰던 아이였다.
설명되지 않는 막막함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시절이 있었다.
BTS의 음악은 그 오래된 감정의 조각들을 다시 불러냈다.
마치 잊어버린 질문이 뒤늦게 깨어나는 것처럼, 또 다른 사춘기가 조용히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를 결정적으로 흔든 곡은 DNA였다.
눈동자 깊숙이 별빛이 스며드는 장면, 분자 구조와 우주적 이미지가 이어지는 화면을 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떨림이 지나갔다.
알고 보면 단순한 영상미가 아니라, 감정의 어떤 원형을 건드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알았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같은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2006년, 대한민국의 한 화가는 절망의 시간을 지나던 중 고양이의 눈 속에서 우주를 발견했고 그날 이후 ‘눈동자 속 우주’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로 연결될 이유가 없는 두 세계였지만, 나의 감정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별자리처럼 이어졌다.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미지들이 내 안에서 한 흐름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졌다.
내가 BTS에게 끌린 이유는 단순한 음악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방식,
상처를 숨기지 않고 마주하는 태도,
감정을 감추지 않고 통과시키는 용기를
음악이라는 형태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내 감정이 오르내리며 흔들리던 시절, 그들의 메시지는 조용한 등불처럼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 내 마음의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실제적 문장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이유를 따라가게 되고,
그 이유는 결국 자기 마음의 구조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BTS를 좋아하던 시간은 내 안의 언어를 넓혀준 시간이었고,
예술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자연스럽게 깊어지게 했다.
눈동자 속에서 우주를 발견했던 화가의 그림과,
BTS의 장면들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태어났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한 흐름을 이루었다.
우연 같지만 결국은
내 감정이 나를 데려간 세계들.
덕질은 그렇게
또 하나의 조용한 감정 인문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