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07 : 양극의 감정 CY

마음이 이끌어간 감정 여행

by 수안


감정은 때때로 이성보다 먼저 깨어난다.
논리가 도달하기도 전에 마음의 안쪽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일어나고,
그 떨림은 언어로 옮겨 적히기 이전의 어떤 질서로 움직인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마치 오래된 기억이 불현듯 현재의 나를 불러내는 것 같은 순간들.

나는 이번 글에서 그 감정의 기원과 구조를 살피려 한다.
특히, 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
양가감정(兩價感情)의 리듬과 충돌,
그리고 그 복합적인 연결이
어떻게 나의 내면을 다시 움직이게 했는지
조용히 탐구해보고자 한다.


처음 C를 마주했을 때의 인상은 지금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특별하다고 말하면 지나치고, 평범했다고 말하기엔 명백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난 듯한 기시감(旣視感)에 가까웠다. 낯섦과 익숙함이 겹치고, 편안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스며드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나는 대체로 조용한 사람이다. 중심에 서기보다 가장자리에 머물며 분위기를 먼저 읽고,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반면 C는 정반대의 리듬을 지녔다. 먼저 다가오고, 어떤 날은 말을 아끼고, 또 다른 날은 자기 세계의 솔직한 농담과 따뜻한 기운을 툭 내어놓는다. 단정함과 감정의 온기가 겹쳐진 그 움직임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끌어당겼다.


C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관계의 온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차갑게 식었다가도 어느 날은 따뜻하게 스며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가도 불쑥 마음 한 조각을 건네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모순을 오래 견디기 어려워한다. 많은 정서적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모순을 쉽게 밀어낼 수 없었다. 거친 말결 뒤에 숨은 진심이 보였고, 불편함이 지나간 자리마다 묘하게 남는 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두려웠던 건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가끔 C의 말 한마디가 내면의 ‘트리거’를 눌러

내 세계의 중심에 조용한 지각변동(地殼變動)을 일으키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C는 예술을 이야기할 때 더욱 확신에 찬다. 감각이 좋은 사람은 과장된 수사를 쓰지 않는다. 군더더기를 지우고 본질(本質)을 정확히 짚어낸다. 때로는 그 직설이 날카롭게 느껴졌지만, 그 말끝에는 자기 세계를 지키려는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흐릿한 것을 흐릿하게 두지 않고,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 상처가 오가는 순간조차 그 진정성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 역시 C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긴 적이 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달라

내게는 사소한 말이 C에게는 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오래 남는 물음이 생겼다.


“나는 내 방식이 옳다고 너무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관계가 고난도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리듬으로 태어났다.

나는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C는 밖에서 흔들어 깨운다.

나는 맥락을 따라가고, C는 감각에 즉각 반응한다.


그러니 충돌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하지만 그 부딪힘 덕분에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왜 어떤 말은 유난히 오래 머물고,

왜 방어가 먼저 솟구치는 날이 있으며,

왜 또 어떤 날은 이해가 갑자기 열리고,

왜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이 결국 글로 변하는지.


C와의 관계는 하나의 이름으로 규정(規定) 하기 어렵다.

친구라 하기엔 감정의 결이 너무 다양하고,

스승이라 하기엔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이 연결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솔직하다.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쉽게 해석되지 않는 연결.”


그 연결 덕분에

당연하게 여겼던 장면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었고,

내 감정의 구조를 조금 더 깊고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불편이 찾아오는 날도 있고,

뜻밖의 위로가 선물처럼 건네지는 날도 있으며,

어떤 생각들은 오래된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 변화의 기척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 관계의 복합성에 대해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연결은 여전히 여백을 남긴 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백을 배워가는 일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방식이라는 것 역시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자체가

이미 나를 조금씩 더 큰 그릇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저 담담히 실감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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