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21 : 나를 찾아가는 브랜딩 03

이걸 브랜딩이라고 불러도 되나?

by 수안


브랜딩이라는 말을 처음 입에 올리려던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멈칫했다. 마치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느낌이었다. 이 단어를 쓰는 순간, 나보다 앞서 도착해 있는 이미지들이 먼저 떠올랐다. 방향이 정해진 사람, 설계도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 이미 결과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 그 장면 속 어디에도 당시의 나는 없었다.


“아직 결과도 없는데, 이 말을 써도 되는 사람일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브랜딩이라는 단어는 무게가 있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설명해야 할 것 같았고, 설명을 시작하면 책임이 따라붙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그래서 뭐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 같았고,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떠올리면 괜히 숨이 가빠졌다. 그래서 그 말은 나를 자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도 편하지 않았다. 글은 계속 쌓이고 있었고 기록은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가리킬 언어가 없을 때 생기는 공허함이 있었다. 누군가 “요즘 뭐 하고 있어?”라고 물으면, “그냥 글 써”라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지나왔고, “브랜딩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기엔 아직 그 말이 나를 앞서 가는 느낌이었다. 붙이면 과장 같고, 붙이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상태. 그 사이에 오래 서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브랜딩’이라는 말이 나보다 먼저 완성된 모습으로 달려가 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 말을 쓰는 순간, 실제의 나는 보이지 않고 말만 앞서 나가는 것 같았다. 정리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설계가 끝난 사람인 척하게 될까 봐 불편했다. 실제의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느낌이었고, 매번 다시 생각하고, 다시 쓰고, 다시 지우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나를 설명해 주기보다 가면처럼 덮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말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를 포장하기 위한 언어라기보다, 나와 어울리는 자리에 잠시 놓아두기 위한 임시 표식에 가까웠다. 이미 정해진 지도라기보다는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 붙여둔 포스트잇, 선언이라기보다는 메모.

이건 정의가 아니라 유예일지도 모른다.


커다란 방향만 정해두고, 아직 세부적인 결정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걸 브랜딩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망설일 때가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 시간들을 스스로 부정하게 될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냥 지나가게 두기엔 너무 많은 생각과 기록이 쌓여 있었고, 그 시간을 외면하는 건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글이 지나온 흐름과 패턴을 가만히 돌아보며, 이 말을 조심스럽게 빌려 쓰기로 했다. 확정이 아니라 임시로, 완성이 아니라 과정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사실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

어떤 시기, 어떤 사람에게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용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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