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18 : 욕(辱)이라는 언어를 감당하는 법

by 수안

나는 원래 욕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욕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부모님 역시 입에 거친 말을 담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한가운데서도 욕 한마디 따라 해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어머니도 약간의 험한 뉘앙스의 단어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욕이라는 언어는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거부하는 말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욕을 너무 자연스럽게 쓴다.
우리 집 두 아들도 그렇다. 부모가 욕을 하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일상 대화에서나 게임 플레이 도중 입에서 욕이 감탄사처럼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잘 적응되지 않았다. 아니, 굳이 적응하고 싶지도 않았다. 뜻이 문제가 아니라, 말이 놓이는 순간 공기의 결이 바뀌는 느낌이 먼저 왔다.

나는 늘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감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욕은 생각보다 쉽게 스며드는 언어였다.


직장에서 그 사실을 실감했다. 아주 강한 욕은 아니었지만, 상사의 거친 표현들이 말머리처럼 반복되던 환경. 거슬린다고 느끼면서도 어느 순간 그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걸 발견했을 때 꽤 당황했다. 그 공간을 벗어나고 나서야 그 말버릇이 사라졌다. 욕은 개인의 성향보다 환경과 관계 속에서 더 빠르게 전염되는 언어였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욕을 무조건 피하려 했다.
욕을 자주 쓰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고, 지역마다 욕의 수위와 결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유독 과도하게 느껴지는 표현 앞에서는 마음이 먼저 닫혔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감각이 조금 달라졌다.
모든 욕이 같은 결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욕은 타인을 낮추기 위해 사용되고, 어떤 욕은 무기력의 배출구처럼 흘러나온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욕이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가리킬 때가 있었다.
그 욕은 누군가를 향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구조와 답답한 현실을 향해 던져진 말이었다. 그럴 때의 욕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막혀 있던 감정을 뚫어주는 느낌을 주었다. 처음으로 욕이 카타르시스로 작동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나는 욕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게 되었다.
욕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욕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사람을 겨냥한 공격인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인지,
아니면 사회와 구조를 향한 분노의 메시지인지.
여전히 나는 욕을 즐겨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욕 알레르기만으로 반사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어떤 욕은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욕은 이해의 영역에 두며, 아주 일부의 욕은 감정의 해소로 인정한다.


돌아보면 나는 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욕이라는 언어 앞에서 내가 불편해졌던 이유는, 그 말이 내 감정 그릇의 크기를 시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는 넘치는지.


이제는 안다.
욕을 싫어하는 나도 나이고,
어떤 욕에서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던 나도 나다.
그 모순을 굳이 하나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 글은 욕에 대한 관대한 선언이 아니다.
욕을 통해 드러난 나의 감정 감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부에서 시작해, 전염을 거쳐, 구분으로 도달한 이 과정은 내 감정 그릇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확인하게 한 하나의 지점이다.
나는 아직 이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예전처럼 무조건 밀어내지는 않게 되었다.

의식 없이 옮겨간 줄 알았던 지점들도, 돌아보면 전부 이유 없는 이동은 아니었다.

이해는 늘 그 뒤에서, 조용히,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쪽이었다.


내가 느껴온 ‘욕(辱)’에 대한 감각은
소리가 세서 싫었던 게 아니라,
의미 없이 사람을 낮추는 말,
생각 없이 옮겨 붙는 언어,
존중 없이 던져지는 표현이란 걸
몸이 먼저 알아챘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고운 말이 오가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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