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20 : 나를 찾아가는 브랜딩 02

이미 글은 쓰고 있었는데, 왜 불안했는가

by 수안

글은 계속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을 꽤 자주 했다. 부족한 문장도, 매끄럽지 않은 표현도 그대로 둔 채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다. 어떤 글은 낭독해 두었고, 그 목소리를 다시 재생해 보기도 했다.


그때의 말투와 호흡, 중간에 머뭇거리던 순간들이 지금의 나와는 달라서, 그 만남은 늘 새로운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잘해 보이려는 기록이라기보다, 그 시점에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안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없었다.


다시 보고, 다시 듣고, 그때의 나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끔씩 되돌아보며 과거의 나와 조우하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잔상이 계속 남아 있었다. 글을 쓰고, 기록하고, 다시 돌아와 살펴보는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없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가 나만의 고유한 톤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각각의 글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날의 생각과 질문, 감정들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들이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편의 글이 다음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고, 어떤 기록도 이후의 선택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흩어진 조각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나 자신을 계속 만나고 있었지만, 그 만남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불안은 바로 그 틈에서 생겨났다.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쌓인 시간들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그 당시의 나는 분명히 존재했는데, 그 흔적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을 헤매게 했다. 그 불안은 크지 않았지만 쉽게 가시지도 않았다. 조용히 반복될 뿐이었다.


이 감정은 일상 속에서 작은 모습으로 드러났다. 글을 쓰고 나서, 다음 글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메모로만 남겨두는 습관.


기록은 계속 이어지는데, 선택은 번번이 미뤄졌다. 띄엄띄엄 여러 시도를 해오면서, 정체된 것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간 것도 아닌 채 어중간하게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모호함은 글을 그만두라는 신호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기록들을 이대로 두고 지나가기에는, 내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감각에 가까웠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오래 이어가기 어렵다는 조용한 경고. 나를 지우지 않기 위해, 이 시간들을 설명할 말이 필요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쌓여온 기록과 시간들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리고 이 과정을, 정말 아무 이름 없이 계속 지나가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방향을 의식하게 만든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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