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글 01 : 사소한 것들에 대한 단상

by 수안

고무줄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만났다.

쓰레기통 옆에 떨어져 있던 노란 고무줄 하나를 발견한 아이. 고무줄은 그 아이에게는 작지만 보물 같은 물건이 되었다. 그것은 오빠에게 물려받은 물건이 아닌 자신만의 것이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오빠의 눈에는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는 일상을 함께하고 엄청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책을 읽다가 그 아이처럼 고무줄을 직접 두 손가락으로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돌려보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고무줄 돌리기는 너무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 말랑하고 힘없어 보이는 작은 물건이 꽤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의외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나에게 고무줄은 어떤 용도였는지 떠올려보니 고무줄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책 속에선 미래에 연애편지를 묶을 거라는 상상 속 장면도 나오는데, 나의 현실에선 수업에 활용하는 카드를 묶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앞으로 고무줄로 묶을 정도의 손 편지를 받을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니 이런 감성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구나 싶었다.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장면같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쉽게 버려지거나 별 것 아니지만 나에겐 소중히 간직되는 작은 물건들을 찾아보았다. 내게도 노란 고무줄들이 여러 개 모아져 있었다. 빨간 철사끈, 예쁜 리본끈, 언젠가 쓰지 않을까 하고 모아둔 빵클립 등을 예쁘고 작은 초콜릿 상자에 담아서 아이들 앞에 섰다.


뚜껑 있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퀴즈를 내보았다. 의외로 아이들 반응은 흥미로왔다. 구슬, 반지, 목걸이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소리 나지 않는 것도 있다는 힌트에 역시나 "고무줄이요!""를 외치는 아이들.


고무줄 하나를 살짝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리고 나서

"이 고무줄은 누구의 것일까요?"

라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이 갈렸다.

자신 있고 당당한 목소리로 "제 거요!"라고 말하는 아이들. 갖고 싶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아이들 대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무줄 하나에 이렇게 즐거워질 수 있다니. 고무줄을 서너 개만 준비해 온 건 참 잘한 선택이었구나 싶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수업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다. 그래야 고무줄을 먼저 만져보거나 가질 기회가 생기리란 걸 아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아차린듯했다.


고무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고무줄총이었다. 그날의 고무줄은 단순히 장난하기용이 아닌, 이야기 속 생각거리가 되었다. 한 끗 차이로 자칫 위험해질 수 있기에 생각을 키워주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고무줄총도 아이들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양했다. 그 방법들을 안전하게 아이들이 직접 소개해보기도 하고, 공 만들기, 별모양 만들기, 손가락에 감아서 잠시 손가락 색깔 변하게 만들기, 손바닥에 자국 만들기 등 쓸데없는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재미가 있어서 웃게 되는 놀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고무줄 하나에 몰입하고 진심이 되어버린 특별한 날이었다. 고무줄 하나를 갖고 싶어서 한 시간 수업을 기다린 아이들이 그날따라 더욱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작은 게임구성물 하나를 갖고 싶다며 자신이 가져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예쁜 리본끈 하나를 가져도 되는지 진지하게 묻는 아이에게도 소중히 잘 간직하길 당부하며 나의 작지만 소중한 보물을 건네주었다.


큰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추억 한 조각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작은 물건 하나가 마음을 얼마나 밝고 환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된 날이었다. 고무줄에게 말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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